‘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 말은 짧지만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현실을 꿰뚫는 명언이다. 잠든 사람은 몰라서 반응하지 못하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전자는 깨울 수 있지만 후자는 깨우기 어렵다.
문제는 사회를 흔드는 큰 위기는 무지보다 외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알면서도 침묵하는 순간 공동체는 조금씩 병들기 시작한다.
지난 6일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 해제 국회 표결에 왜 참석하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김 전 총리는 당시 감기약을 먹고 잠들어 뒤늦게 국회로 갔다고 해명했다. 이때 이 의원이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의원의 이 한마디가 정치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본다.
사실 이 말은 우리 사회 전체를 돌아볼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문제를 보면서도 못 본 척할 때가 있다. 잘못된 제도를 알면서도 침묵하고, 불공정을 목격하면서도 내 일이 아니라며 지나친다. 부당한 일을 발견해도 괜히 나섰다가 손해를 볼까 걱정하며 외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한 사람의 침묵은 또 다른 사람의 침묵을 만들고, 결국 사회 전체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자는 척하는 사회’일지 모른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는 제도이지만, 진실 앞에서는 침묵보다 소신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당이라고 무조건 감싸고 야당이라고 무조건 공격하는 정치는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아니다. 잘한 것은 인정하고 잘못한 것은 바로잡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실보다 진영이 먼저고, 원칙보다 이해관계가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순간 정치인은 잠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는 척하기 시작한다.
공직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책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상부의 눈치만 보는 공무원, 조직의 비효율을 알면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하는 관리자, 국민보다 자신의 자리와 승진을 먼저 생각하는 조직문화는 결국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한 사람의 침묵은 작은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수많은 침묵이 쌓이면 국가 전체가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공직자의 가장 큰 덕목은 충성이 아니라 양심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책이 있다. 최근 출간된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의 <소신>이다. 그는 소신이란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고집하는 독선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앞에서 옳다고 믿는 가치를 끝까지 지키는 책임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때로는 권력의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가 진정한 소신이라는 것이다. 결국 소신은 거창한 영웅심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하지 않는 양심의 실천이다.
그런 점에서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과 <소신>이 던지는 메시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공직사회가 더 건강한 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알고 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소신이다.
진실을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모를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의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거짓을 방조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침묵은 때로 거짓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언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전달하는 사회의 눈과 귀다. 그런데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거나, 진영에 따라 같은 사안을 다르게 해석한다면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론이 잠들면 국민이 깨우면 된다. 하지만 언론이 스스로 자는 척하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가 어둠 속으로 들어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언론의 자유만큼 중요한 것이 언론의 책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우리는 정치를 비판하고 공직사회를 질책하며 언론을 평가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어떤가. 불법을 보면서도 신고하지 않고, 거짓을 알면서도 침묵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여긴 적은 없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회는 정치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선택과 행동으로 만들어진다. 국민까지 자는 척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AI 시대에는 ‘모르는 것보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이 더 큰 위험이 된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인간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데이터를 외면하는 사람은 거짓을 선택할 수 있다.
결국 미래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책임감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위기의 순간마다 깨어 있었고, 잘못된 길이라고 판단되면 용기를 내어 소신 있게 행동했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알면서도 침묵하는 문화’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침묵은 때로 지혜일 수 있지만, 공동체를 위한 침묵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위한 침묵이라면 결국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최근 정치권 논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을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안이라면 누구든 성실하게 설명하고, 의문이 있다면 사실에 근거해 검증받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정치인은 질문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질문하는 사람도 사실과 책임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진영의 전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이 한마디는 정치권만을 향한 경고가 아니다. 공직사회에도, 기업에도, 언론에도,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순간 사회는 비로소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제도, 정치도, 과학기술도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거창한 정책이나 제도가 아니라 진실 앞에서 눈을 감지 않는 용기다. 잠든 사람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깨어난다. 하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스스로 일어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끝내 깨어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흔들어 깨우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자는 척하지 않겠다는 공동의 결심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더욱 건강하고 성숙한 나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