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통합은 말보다 어렵다. 선거 때는 누구나 통합을 외친다. 국민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상대 진영까지 포용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정권이 출범한 뒤 진짜 통합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가 통합의 수준을 결정한다.
통합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 출범 당시 가장 상징적인 인사 가운데 한 명이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이었다. 그는 이명박정부 법제처장을 지낸 대표적인 보수 원로였다. 그런 그가 민주당 선거 캠프에 합류했고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이는 단순한 인사 영입이 아니라 진영을 넘어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처럼 받아들여졌다. 많은 국민들도 그렇게 해석했다.
실제로 이석연 위원장은 정권 출범 이후 정부를 무조건 비판하지도 않았고 무조건 옹호하지도 않았다. 필요한 부분은 지원했고 우려되는 부분은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보수 인사라는 이유로 정부를 공격하지 않았고 정부 사람이라는 이유로 침묵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국민통합위원장이라는 직책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통합은 침묵이 아니라 소통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와 이 위원장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추진한 사법개혁 입법 과정에서 그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법왜곡죄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고 심지어 “문명국의 수치”라는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정권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국민통합위원장이 정부와 똑같은 말만 한다면 그 존재 이유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갈등이 조직 운영 문제로까지 번졌다. 이석연 위원장은 대통령에게 친전을 보내 국민통합비서관실의 운영 방식과 일부 행태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민통합비서관실 측도 위원회의 활동 방식과 공개 발언에 불편함을 느껴온 것으로 전해진다.
역할과 권한, 소통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쌓이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문제는 이 갈등의 당사자가 다름 아닌 국민통합을 담당하는 두 조직이라는 점이다.
국민통합위원회는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조직이 아니다. 정부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조직이다.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기관이라면 국민통합위원회라는 이름보다 정부홍보위원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통합의 첫 번째 조건은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석연 위원장이 영입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정부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도 공정한 평가는 아니다. 이석연 위원장의 행보 역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국민통합위원장은 야당 정치인이 아니라 대통령 직속 기구의 수장이다. 쓴소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모든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특히 청와대와의 내부 갈등과 갑질 논란을 언론을 통해 공개한 것은 보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통합은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갈등을 조정하고 대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국민통합위원장의 역할은 조정자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위원장 역시 직언과 통합 사이에서 좀 더 세심한 균형 감각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쓴소리도 중요하지만 그 방식 또한 통합의 정신을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문제 제기 자체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직언의 방식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직언의 내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성숙하려면 메신저보다 메시지를 먼저 봐야 한다. 이번 논란 역시 이석연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왜 국민통합위원장과 국민통합비서관실이 이런 충돌까지 가게 됐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갈등의 당사자가 국민통합위원회와 국민통합비서관실이라는 점이다. 국민 통합을 담당하는 조직끼리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부에서도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통합은 구호가 아니라 과정이다. 조직 내부에서부터 다른 의견을 인정할 수 있어야 국민에게도 통합을 요구할 수 있다.
이석연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친전을 보내고 비공개 회의에서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경고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대통령이 특정 진영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정권 비판으로 해석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정권 성공을 바라는 충정이 담긴 조언으로 본다. 권력 내부에서 나오는 경고는 반대보다 더 소중할 수 있다. 그것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아군의 우려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성공한 지도자 곁에는 늘 직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중국 당나라의 명군으로 평가받는 당태종에게는 위징이 있었다. 위징은 황제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때로는 황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이 세상을 떠나자 “나는 거울을 잃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비춰주던 거울을 잃었다는 뜻이었다.
조선의 세종대왕도 마찬가지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집현전 학자들과 대신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종은 반대 의견 자체를 제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책의 완성도를 높였다. 강한 지도자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을 활용한다. 그것이 국가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갈등으로 끝난다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민통합위원회는 단순한 자문기구가 아니라 이정부 통합 정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보수 원로를 영입하고 중도와 보수를 포용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상징이 내부 갈등 속에서 흔들린다면 통합의 진정성 역시 의심받게 된다.
특히 이석연 위원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정치적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보수 원로를 삼고초려해 영입했지만 결국 쓴소리 때문에 떠나게 됐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중도층과 보수층에는 부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 국민통합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상처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정권 입장에서도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후의 분위기다. 이석연 위원장이 떠난 뒤 남는 사람들이 과연 직언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학습한다. 쓴소리를 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조직은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조직의 침묵은 정권에 가장 위험한 신호가 될 수 있다.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은 적의 공격보다 내부의 침묵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석연 위원장의 직언을 포용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국정 운영에 반영한다면 오히려 국민통합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불편한 목소리를 제거하는 것보다 함께 가는 것이 더 어렵지만 더 큰 정치다. 진짜 통합은 같은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필자는 이석연 위원장을 ‘Mr. 쓴소리’라고 부르고 싶다. 칭찬만 하는 사람은 많지만 불이익을 감수하며 직언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석연 위원장 역시 국민통합위원장답게 좀 더 신중하고 조정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통합은 정부만의 책임도 아니고 특정 개인만의 책임도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이석연 개인의 거취가 아니다. 국민통합위원회와 국민통합비서관실의 갈등을 통해 이정부가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국민통합을 담당하는 조직조차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통합을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은 이번 선택을 통해 이정부가 말하는 통합이 구호인지 철학인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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