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교수의 대중 범죄학> 범죄 문제가 빠진 선거 공약

2026.06.08 14:48:16 호수 1587호

세계 어느 나라이건, 어떤 선거이건,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후보자의 개인적 능력이나 인품이나 경력도 있지만 앞으로 자신이 펼칠 정책을 약속하는 선거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선거가 아니라도 각 정당은 정당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정책을 담은 정강 정책이 있기 마련이다.

선거에서 이런 공약이나 정책 제안이 당락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것 또한 역사를 통해서 목격하기도 한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보면 각 후보자와 그 후보자가 속한 정당에서는 다양한 공약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를 토대로 자신과 당을 홍보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된다. 정책과 공약에는 당연히 대통령선거라면 경제, 외교, 국방 등 국가적 정책 대안이 제시될 것이고, 지역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라면 그 지역에 맞는 각종 공약이 제시된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는 범죄와 안전이라는 치안 문제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으며, 때로는 당락을 좌우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초반부터 월등하게 앞서가던 민주당의 마이클 두카키스가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후보에게 완패했던 사실이 치안의 중요성을 확인해줬다. 물론 그의 패배에는 다양한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유권자인 일반 시민들에게는 공화당이 그에게 씌운 치안 프레임이 결정타였다고 입을 모은다.

두카키스 후보는 자신이 매사추세츠주의 주지사 시절 시행했던 ‘귀휴(furlough)’가 그의 대선 가도에 발목이 잡혔다는 것이다.

‘귀휴’는 다른 말로는 ‘휴가’라고 하는 것으로, 사회와의 격리를 완화하고, 출소 후 사회 복귀를 원활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대체로 주말을 이용해 휴가를 내보내는 것이다. 두카키스는 상대적으로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이 ‘귀휴’ 제도를 지지했다.

공화당 부시 후보는 그의 이런 점을 공격했다. 선거 참패의 결정타는 두카키스 주지사가 이렇게 ‘귀휴’를 허가했던 1급 살인범 윌리 호튼이 귀휴 중 매릴랜드 주에서 강간 폭행을 저질렀고, 이점을 놓칠 리 없는 상대 부시 후보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비판했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주지사인 주의 치안 문제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무고한 시민이 강간과 폭행을 당하게 하는 그에게 미국 국민 여러분은 자신의 안전을 그에게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선거운동을 벌였다. 이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서 초기 불리했던 부시가 선거에서 완승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사례가 극단적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으로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과거에는 갤럽과 같은 여론 조사에서 시민들은 전쟁이나 빈곤 등을 가장 우려되는 사회문제로 꼽았다. 냉전이 끝나고 적어도 절대적 빈곤은 어느 정도 해소되자, 범죄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유명한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단계설에서도 안전의 욕구는 2단계로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인간 욕구의 기본 중 기본이다. 안전은 2단계 인간 욕구가 아니라 인간 욕구, 아니 인간 존재의 기본 전제여야 한다. 이유는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전하지 못하면 그 어떤 욕구도 가능하지 않으며, 가능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안전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해방’이다. 범죄 안전은 ‘범죄 두려움, 공포로부터의 해방이요 자유’다. 두카키스가 귀휴 보낸 살인범이 무고한 시민을 강간 폭행해 무고한 시민을 공포에 두려움에 떨게 했을 것이고, 이런 범죄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은 시간에 못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없다면 시민의 삶의 질은 추락하고 말 것은 불보듯 뻔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토록 중요한 사안임에도 대선이건 총선이건 지방선거이건 그 어디서도 안전과 치안 공약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스토킹이 빈번하고, 온갖 피싱범죄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유권자의 신체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겠다고, 이를 위해서 어떤 정책을 어떻게 펼치겠노라고 약속한다면, 이념에 매몰된 ‘묻지마식’ 선택지 없는 선택의 강요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시민이 안전하고, 그래서 삶의 질이 높아지고, 그래서 더 행복한 세상을 왜 약속하지 않는가? 

<yhl@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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