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호르무즈 이후 열린 카스피해

2026.05.14 09:22:32 호수 0호

이란 새 생명선 세계 최대 내륙해, 유라시아 질서 바꾸다

카스피해는 바다가 아니지만 바다처럼 움직인다. 이름에는 ‘해’가 붙어 있지만, 대양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세계 최대 내륙 수역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놓여 있고,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동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으로는 이란, 서쪽으로는 아제르바이잔이 둘러싸고 있다.

지도 위에서 보면 카스피해가 닫힌 호수처럼 보이지만, 국제정치의 눈으로 보면 닫힌 호수가 아니라 열린 통로다.

카스피해의 중요성은 바로 이 모순에서 나온다. 바깥 바다와 직접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세력의 군사 진입은 제한된다. 반대로 연안국들끼리는 선박과 항만,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자신들만의 물류 질서를 만들 수 있다. 2018년 카스피해 법적 지위 협약은 카스피해 문제를 연안 5개국의 배타적 권한으로 규정했고, 외부 군대의 주둔을 금지하는 원칙도 담았다.

이 구조가 지금 이란에 새로운 의미를 주고 있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세계와 연결돼 왔다. 그러나 호르무즈가 막히거나 위험해지는 순간, 이란 경제는 남쪽 바다에서 병목을 맞는다. 그때 북쪽의 카스피해가 등장한다.

러시아 남부와 볼가강 유역에서 출발한 물자가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 북부 항구로 들어오고, 다시 철도와 도로를 통해 테헤란과 남부 지역으로 내려간다. 이것이 바로 국제남북교통회랑, 즉 INSTC의 핵심 구도다. 이 회랑은 인도양·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을 거쳐 카스피해로 올라가고, 다시 러시아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북유럽으로 연결되는 복합 물류망이다.

특히 최근 카스피해는 미국의 해상 봉쇄와 군사 압박을 받는 이란의 군수·전략 물자 우회 통로로까지 부각되고 있다. 지난 9일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최근 이란 북부 반다르안잘리 항구 인근 해군사령부를 공습해 해군 함정 여러 척을 파괴했다고 보도했다.

공습 지점은 카스피해 연안이었다. NYT는 카스피해가 러시아와 이란을 연결하는 새로운 핵심 교역·보급로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전투 과정에서 드론 전력의 상당 부분을 잃은 이란에 드론 부품을 카스피해 경로로 공급하고 있으며, 이란 역시 식량과 필수 물자 수입을 북방 항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란 국영방송 IRIB는 이란 식품산업협회장이 “카스피해 연안 이란 항구 4곳이 밀·옥수수·사료·해바라기유 수입을 위해 24시간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카스피해 주변 5개국의 이해관계는 각기 다르다. 러시아는 북쪽 출구를 쥐고 있다. 볼가강과 볼가-돈 운하를 통해 카스피해를 흑해·러시아 내륙과 연결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카자흐스탄은 광대한 자원과 곡물, 카스피해 동북부 항만을 통해 중앙아시아 물류의 거점 역할을 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동쪽 해안을 통해 가스와 중앙아시아 교통로의 잠재력을 가진다. 아제르바이잔은 서쪽에서 카스피해와 코카서스, 튀르키예·유럽을 잇는 연결 국가다. 이란은 남쪽에서 카스피해를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으로 이어주는 관문이다.

이 말은 곧 카스피해가 단순한 내륙해가 아니라는 뜻이다. 러시아에는 남하의 통로이고, 이란에는 북방 생명선이며,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에는 자원 수출의 바다고, 아제르바이잔에는 코카서스 물류의 출입문이다. 그래서 카스피해는 ‘세계 최대 내륙해’라는 지리 용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카스피해는 유라시아 내륙 질서가 바다처럼 작동하는 장소다.

운영 방식도 독특하다. 일반 바다처럼 완전한 공해가 아니며 그렇다고 하나의 호수처럼 단순히 나눠 갖는 구조도 아니다. 2018년 협약은 카스피해에 내수, 영해, 어업 수역, 공동 해역이라는 구분을 두고, 해저와 지하자원은 인접국 간 합의로 구획하도록 했다.

선박 운항은 연안국 국기를 단 선박에 한정되고, 각국 항구는 협약과 국내법에 따라 개방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외부 군사력 배제’다. 카스피해에서는 연안 5개국이 아닌 국가의 군대가 들어올 수 없도록 돼있다. 이는 이란과 러시아에 특히 유리하다. 미국이나 나토가 직접 카스피해에 군함을 들여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카자흐스탄처럼 서방과도 협력하려는 국가는 카스피해 안에서는 러시아와 이란의 전략적 민감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란 입장에서 카스피해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를 우회하는 북방 물류로다. 둘째, 러시아와 직접 연결되는 전략 회랑이다. 셋째, 서방 제재를 완화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내륙형 교역 공간이다. <알자지라>도 러시아-이란 교역의 중심축을 INSTC로 설명하면서, 러시아 남부 항구에서 카스피해를 건너 이란 북부 반다르안잘리 항구 등으로 물자가 이동한 뒤 철도나 트럭으로 이어진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반다르안잘리, 아미라바드, 노샤르 같은 이란 북부 항구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 항구들은 이란의 남쪽 항구들과 성격이 다르다. 남쪽 항구가 원유·가스·중동 해상교역의 관문이라면, 북쪽 항구는 러시아·중앙아시아·코카서스와 연결되는 입구다.

이란이 남쪽에서는 압박을 받더라도 북쪽에서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통해 숨통을 틀 수 있다. 카스피해가 이란의 ‘두 번째 바다’가 되는 이유다.

하지만 카스피해가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수심 저하다. 카스피해 수위 하락은 항만 운영과 선박 적재량에 직접 영향을 준다. <로이터>는 카스피해의 얕아짐 때문에 곡물 수출업자들이 더 작은 선박이나 적은 적재량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대형 벌크선이 아니라 3000~6000톤급 강·바다 겸용 선박이 주로 쓰인다고 전했다.

환경 문제도 심각하다. 카스피해는 폐쇄성 수역이기 때문에 오염이 한번 쌓이면 빠져나가기 어렵다. 그래서 2003년 체결된 테헤란 협약은 카스피해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기본 협력 틀로 작동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도 카스피해 해양 쓰레기, 플라스틱, 오염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카스피해 수위 하락 대응 협력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결국 카스피해의 운영은 세 층으로 봐야 한다. 첫째는 법적 운영이다. 연안 5개국이 협약을 통해 영해·어업·공동 수역·항행·환경·안보 원칙을 정한다. 둘째는 경제 운영이다. 각국이 항만, 철도, 에너지 시설, 곡물 터미널을 연결해 물류망을 만든다. 셋째는 군사·안보 운영이다. 외부 군사력은 배제하고, 연안국끼리 균형을 유지한다. 이 세 층이 겹치면서 카스피해는 단순한 자연 지형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장치가 된다.

이란이 카스피해를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란은 남쪽으로는 호르무즈라는 세계적 병목을 안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라크·시리아·레바논 축이 불안정하다. 동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변수가 있다. 이때 북쪽 카스피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향이다. 러시아와 직접 맞닿고, 중앙아시아와 연결되며, 제재와 전쟁 상황에서도 일정한 물자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물류는 단순히 상품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물류는 국가의 혈관이다. 식량이 들어오고, 원자재가 움직이고, 군수품과 산업재가 이동하며, 외화와 계약이 흐른다. 그래서 카스피해를 장악하거나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항구 하나를 운영한다는 뜻이 아니다. 국가 생존의 우회로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역시 카스피해를 통해 얻는 것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남쪽과 동쪽 시장이 필요하다. 흑해가 위험해지고 유럽 시장이 막힐수록 러시아는 이란, 인도, 중동, 중앙아시아로 눈을 돌린다. 이때 카스피해는 러시아 곡물과 에너지, 공업 제품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된다. 러시아와 이란이 카스피해에서 가까워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도 계산이 복잡하다. 두 나라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동시에 서방과도 에너지·물류 협력을 원한다. 카스피해는 이들에게 러시아 의존을 줄일 수 있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러시아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두 나라는 카스피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되, 군사·안보 문제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아제르바이잔은 또 다른 축이다. 카스피해 서쪽의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 튀르키예, 유럽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바쿠는 에너지와 물류를 통해 자신의 전략적 가치를 키워왔다. 카스피해 동쪽의 중앙아시아 자원과 서쪽의 유럽 시장을 연결하려는 구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빠질 수 없다. 따라서 카스피해는 북남축만이 아니라 동서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카스피해는 다섯 나라가 함께 쓰지만, 완전히 함께 믿지는 못하는 공간이다. 협약은 있지만 경쟁도 있다. 공동 해역은 있지만 자원 구획 다툼도 있다. 환경 협력은 하지만 에너지 개발도 계속된다. 외부 군사력은 막지만 각국 해군력은 존재한다. 그래서 카스피해 질서는 ‘공동 관리’와 ‘조용한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한국 입장에서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스피해는 멀리 있는 내륙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에너지 가격, 곡물 가격, 중동 리스크, 러시아 제재, 인도-유럽 물류, 중국 일대일로, 중앙아시아 자원 전략과 모두 연결돼있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유가가 움직이고, 유가가 움직이면 한국 경제가 흔들린다. 그런데 이란과 러시아가 카스피해를 통해 물류 우회로를 확보하면, 중동 위기의 양상도 달라진다.

앞으로 카스피해의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 수위 하락과 환경 악화다. 물이 줄어들면 항만 기능과 어업, 생태계가 모두 흔들린다. 둘째, 러시아-이란 협력의 심화다. 두 나라가 제재 속에서 더 가까워질수록 카스피해는 서방 견제의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 셋째, INSTC의 완성도다. 철도와 항만, 도로가 얼마나 촘촘히 이어지느냐에 따라 카스피해의 전략 가치는 달라진다.

결국 카스피해는 이란의 새 물자 수송로이자 러시아의 남방 통로이며, 중앙아시아의 숨은 바다다. 세계 최대 내륙해라는 지리적 이름 뒤에는 훨씬 더 큰 정치적 의미가 숨어 있다. 바다는 열려 있어야만 강한 것이 아니다. 때로는 닫혀 있기 때문에 더 전략적일 수 있는데, 카스피해가 바로 이 경우다.

이란은 남쪽 바다에서 압박을 받을수록 북쪽 내륙해를 바라볼 것이고, 러시아는 서쪽이 막힐수록 남쪽 카스피해를 활용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그 사이에서 자국의 항만과 철도를 키우려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카스피해는 지도 안쪽의 조용한 호수가 아니라, 유라시아 질서가 다시 짜이는 거대한 물류의 심장이라는 사실을.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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