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깊은 시간’ 김명희

2026.05.14 05:18:57 호수 1583호

칠판에 그린 삶과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갤러리현대가 작가 김명희의 개인전 ‘깊은 시간 Deep Time’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2003년과 2012년에 이어 갤러리현대와 김명희가 손잡은 세 번째 개인전이다. 갤러리현대는 반세기 넘게 이어진 김명희의 독보적인 회화 세계를 조명했다.

김명희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여성 미술가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온 작가다. 회고전으로 기획된 ‘깊은 시간 Deep Time’에서는 1970년대 캔버스 유화 작업, 1980년대 목탄 드로잉, 1990년부터 시작된 칠판화 대표작과 신작 등 총 40여점이 공개된다.

뉴욕과

김명희는 한국 현대미술의 페미니즘 서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역사적 위치에 있다.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를 직설적으로 표출했던 동 세대의 페미니스트 작가와는 다르게 그의 작품에서 공격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도발적인 여성 주체나 성적 대상화에 대한 좌절, 절망의 관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김명희는 부계 중심 사회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온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적 장면과 인물, 사물, 행위, 자연을 다뤘다. 이러한 요소는 대서사보다는 소서사로, 직설적 표현보다는 묵시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구성됐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환기하고 자의식을 공동체적 감각으로 확장하는 김명희의 작업에는 타인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여성 미술가로 미술사 영향
직설적 표현보다 은유, 상징

그의 작업은 삶과 예술이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총체로 작동하며 기존 한국 현대미술 페미니즘이 제시해 온 주체와는 다른 결의 여성적 창작 주체를 제시한다. 동시에 남성 중심의 역사와 서사 바깥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형성한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욕으로 이주한 김명희는 이방인으로서 겪은 존재론적 성찰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근원과 인류의 보편적 삶을 사유하는 인류학적 시선을 형성했다. 전환점이 된 때는 1990년 춘천 내평리의 폐교에서 칠판을 발견하면서부터다.

작가는 칠판을 회화의 주요 구조로 가져와 소거와 축적이 반복되는 상징적 지지체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모더니즘 회화의 제한된 인식적 지평을 넓혔다. 폐기된 칠판에 남은 분필 자국 위로 문자를 병치하거나 오일 파스텔을 중첩해 다층 구조의 서사적 회화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칠판화는 칠판 교육에 익숙한 특정 세대의 경험을 환기하는 데서 더 나아가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적 회화로 진화했다.

춘천에서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김명희에게 칠판은 기억과 사유가 축적되는 하나의 표면이자 사유의 흔적이 새겨지는 양피지에 비유할 수 있다. 쓰기와 지우기가 반복되는 칠판 위에서 그는 교실이라는 익숙한 리얼리티를 유지하는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회화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장으로 옮긴 칠판 회화는 작가가 실제로 이동해 온 시간과 공간의 축적을 반영하고, 그의 그림과 삶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며 “칠판은 그림 속 그림이 중첩되는 회화적 장으로 확장되며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유가 교차하는, 묵직한 울림을 전하는 대화의 장이 된다”고 덧붙였다. ⓒ자료·사진= 갤러리현대 

<jsjang@ilyosisa.co.kr>

 

[김명희는?]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2년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프랫인스티튜트를 다니던 중 김차섭 화가를 만나 결혼했다. 1990년 춘천에 있는 폐교를 개조해 작업실을 꾸렸다. 현재 뉴욕의 소호와 춘천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던 해인 1972년 여성으로선 드물게 독일문화원 괴테연구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에서도 작업을 지속해 아트프로젝트인터네셔널, 갤러리현대, AD& A 갤러리, 갤러리원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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