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윤석열정부 국정 쇄신은 규제 혁파

2024.05.29 16:28:12 호수 0호

암참 “규제 혁파로 글로벌 본부 한국으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가 최근 <다국적기업들의 아·태(아시아·태평양) 본부를 한국으로 유치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실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돼 주목된다. 미국 기업들이 저렴한 노동력과 풍부한 내수시장을 보고 중국에 진출했지만, 중국 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에 미·중 갈등이 겹치면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됐다.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을 떠나는 과정서 한국과 싱가포르·일본 등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데다 전력·정보기술(IT) 등 산업 인프라가 뛰어나 ‘차이나 대탈출’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암참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싱가포르와 한국의 기업 유치 성과도 비교했다. 싱가포르에 아태 본부를 둔 기업은 5000개에 달하지만, 한국은 100개도 안 된다. 수많은 기업이 떠난 홍콩(1400여개)에도 못 미친다.

암참은 뛰어난 기반과 생활 여건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해외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규제’를 꼽았다. 규제 혁파란 ‘규제나 제도를 획기적으로 없앤다’는 말인데, 이를 실행하게 될 경우 긍정적인 효과는 자연스레 따라오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수도권 규제를 없앨 경우, 민간기업의 경영활동이 자유화되면서 투자와 경제성장이 활성화되고 고용도 늘어난다. 또 해외서 들어오는 투자도 활성화되게 된다.

물론 부정적인 효과도 없지는 않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경우에는 수도권의 과밀을 막음으로써 지방경제의 발전을 촉진하자는 게 목적이므로 규제 혁파 시 수도권의 과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규제에 따른 득실을 따져 이득이 손실보다 크다면 규제하되, 반대로 이득이 손실보다 작을 경우 철폐해야 한다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대원칙임이 틀림없다.

왜 필요한가?

문제는 규제의 득실을 과연 ‘누가 계산하느냐’는 것이다. 모든 법률적 규제의 주체는 의회가 계산해 입법해 왔고, 모든 시행령은 정부가 경정해 왔다. 의회나 정부가 계산하는 손익계산이 때에 따라서는 국가나 국민의 손익계산과 부합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경우, 사실상 수도권 과밀화도 막지 못하면서 지방경제 활성화에도 실질적으로 이바지하지 못했다면 국가적 이익도 없이 쓸데없는 기업의 경영 자율성만 제약하면서 비효율성을 높인 꼴이 되고 만다.

정부나 의회가 전지전능하지도 못하거나 이익단체들의 요구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면, 그들 주도의 입법이나 정부 시행령의 규제는 정상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예컨대 대기나 환경오염과 관련한 정부 규제가 아닌, 당사자 간의 자율적 협상을 통해 최적의 상황이 보장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따라서 정부가 개입해 규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해서 부정했다.

노사관계도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의 자율적인 협상에 따라 가장 최적의 협약이 이뤄질 수 있으므로 사용자와 피사용자 간의 자율적인 합의를 존중하는 원칙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규제를 만들기만 하던 정부나 의회가 규제 혁파에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경제가 악화하면서부터다. 1970년대 오래 지속된 인플레이션과 저성장, 즉 고물가 경기침체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정부 및 입법부 규제를 철폐하는 것임을 정부와 국회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하면서부터 규제 혁파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2022년 7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밝힌 110대 국정과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정 제16과제가 규제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경제활력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윤정부는 규제혁신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이 주재하는 ‘규제혁신 전략회의’를 신설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민관합동 ‘규제혁신추진단’을 꾸리기도 했다. 지난 1월 신년사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비상식적 규제를 지속해서 혁파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같은 달 4일 발표된 2024년 경제정책 방향서도 규제 개선책이 넘쳐나고 있다. 3대 입지규제(개발제한구역, 농지 및 산지)를 완화해 자율 규제혁신 지구를 조성한다든지, 킬러 규제혁신 TF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다.

윤석열정부 정책의 방향

윤정부의 규제혁신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원칙과 핵처럼 결합돼있다. 문제는 그동안의 규제혁신 정책이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0인 이상 근무하는 1019개 기업 대상으로 진행한 ‘2023년 기업규제 전망 조사’에서 응답한 기업의 60.2%는 기업규제 환경이 전년과 유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주52시간제 유연화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개선이나 서비스산업 규제 등은 달라진 게 아직 별로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성과를 챙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면 정부 해당 각 부처에서는 주기별로 정책 추진의 성과를 집계해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 집계가 형식적인 외형적 조사에 그칠 경우, 내실 있는 평가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규제혁신 정책의 성과 평가는 정부 부처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민간 단체에 맡겨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의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면서 규제혁신 회의의 추동력이 떨어져 왔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2022년 8월 대구 성서공단서 열린 1차 전략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이후 2차 인천 회의(같은 해 11월)와 3차 회의(지난해 3월)는 총리가 대신 주재했을 뿐이다.

5개월 만인 지난해 8월, 4차 전략회의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해 ‘아주 심각한 규제’라는 용어를 만들면서까지 규제혁신의 의지를 내보였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9개월 동안 전략회의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이외에도 윤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1차에 걸쳐 거의 매월마다 ‘비상 경제 민생회의’를 개최하면서 경제 현안과 규제 혁파 방안들을 내놨다. 올해 들어서서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직접 개최해 24회에 걸쳐서 셀 수도 없는 규제 혁파 방안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빈번하고 세세한 내용을 강조하다 보니 규제 혁파의 큰 숲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은 임기 동안 규제 혁파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혁파 대상 규제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 규제나 부동산 규제, 지방 균형발전 등 국가정책의 근간이 되는 부문은 더더욱 그렇다.

가장 시급한 정도에 따라 흑색 규제, 적색 규제, 황색 규제 등의 순서로 설정한 다음, 그 시급성에 따라 푸는 것은 어떨까?

지금처럼 체계적인 우선순위도 없이 수시로 발표될 수도 없는 규제 혁파 지시는 열심히 노력한다는 인상은 심어줄지언정, 실체적이고 효과적인 규제 혁파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또 규제 혁파의 성과를 평가하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민간단체에 평가를 지속해서 위임할 필요가 있다. 정부 부처 주도의 평가는 객관성 및 공감성이 결여돼있을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정권 차원의 홍보를 위한 정책평가에 그치지 않고 내실 있는 규제 혁파를 통해 국가경제가 전진하려면, 공정하고 객관적이면서 전문적인 규제 혁파 평가가 필수적이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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