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포퓰리즘 공약에 망가지는 한국경제

2024.04.24 09:33:38 호수 0호

정치적 이익 위해 경제활동 위축

올해는 전 세계 76개 국가서 42억명이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로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는 포퓰리즘 망령이 지구 전체를 파고들고 있다. 한국도 4월 총선이 끝난 시점에 여·야, 좌·우,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민심을 사고 표심을 잡기 위해 대중 영합적 공약을 앞다퉈 내놨던 바 있다.



각 정당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리고 후보들이 일단 당선되기 위해 내놓는 포퓰리스트적 선거 헛공약은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정치적 이익 위해 경제활동 위축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혜택 제공, 공공 서비스스의 즉각적 확대, 사회적 문제의 해결 정책 등을 제시한다. 근로자에게는 과도한 임금인상, 고용 창출을 위한 정부 지원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소득 증대와 복지 향상을 약속한다.

대다수의 국민에게 직접적 혜택이 제공되는 국민연금, 의료보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혜택을 확대하는 사회복지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공약도 내놓는다. 여기에 중산층 표심을 잡기 위한 감세 정책이나 주택 공급 확대 및 전세금 지원 등의 주거 문제 해결, 교통시설 등 생활 환경개선도 자주 등장한다.

가계에 인기 있는 학비 지원이나 교육 품질 향상을 위한 정책 등 교육 지원 강화,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부 조치나 소비자 보호법의 강화 등도 단골메뉴다.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현실성과 결여돼있어 한국경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대중영합주의자 정책은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단기적 경제 성과를 추구하며 경제의 수요 측면을 강화한다. 단기적 혜택 제공은 소비를 촉진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으나 공급 측면을 고려하지 않아 투자와 생산에 제약을 가해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대중 선동가적 임금인상은 장기적으로는 실업률을 높이며 고용 창출이나 소득 재분배 정책은 경제구조에 부담을 주는 만큼, 경제의 효율성과 성장을 해친다. 또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투자 환경의 악화로 기업들은 투자를 늦추거나 산업계획을 변경한다.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어 경제 성장에 제약이 된다.

이밖에 친서민 정책이라고 포장된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은 종종 정치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사회분열 및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효율성 저해나 정책의 실행을 방해할 수도 있다.

이는 특히 정치적 안정성이 경제성장과 긴밀한 관련이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에는 큰 부담이 된다. 포퓰리스트 정책 시행은 통상 과도한 지출과 세제 인하를 포함해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며 국가의 경제적 안정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공공 서비스 확대, 사회복지 프로그램 강화, 고용증대 등을 위한 예산 증액으로 대규모 예산 지출이 뒤따른다. 이같은 예산 지출이 정부의 수입을 초과할 경우, 결과적으로 재정적자가 초래된다.

특히 포퓰리스트 정책으로 포함되는 세제 인하는 직접적으로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킨다. 재정적 영향 및 경제적 효율성과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대중의 인기 위주로 계획한 지출은 더욱 재정건전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포퓰리스트 정책이 초래한 재정적자를 과도한 통화 발행으로 메우게 되면 장기적인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물가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을 초래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등 퍼주기로 국가 부도

단기적으로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나 장기적으로 경제적 문제와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한 해외 사례는 많다. 한때 세계 경제 7위에 올랐던 아르헨티나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페론주의 정권이 시행한 각종 퍼주기식 정책으로 국가 부도 사태가 반복됐다.


최근에도 고용 창출과 소비 촉진을 위한 과도한 예산 지출과 막대한 양의 통화발행으로 물가가 뛰자 가격 상한제 등 반시장 정책으로 잡으려 했으나 실패해 또다시 인플레이션과 실업률·빈곤율 상승으로 허덕이고 있다.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인근 남미 국가들도 공공 서비스의 확대,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강화, 고용 창출을 위한 정부 지출 등을 포함하는 다양한 포퓰리스트 정책을 시행해 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고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빈곤과 불안정성에 직면하게 됐으며, 몇몇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다.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스트적 경제 정책은 초인플레이션과 경제 붕괴를 초래해 국가를 파탄시켰다.

한때 전 세계 1위 원유 수출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원유, 철강 등 기간산업의 국유화를 통해 확보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빈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상의료, 무상교육, 저가 주택, 연중 반값 생필품 제공 등 일련의 사회복지프로그램을 확대해 하층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부 성과를 거두며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2013년 이후 국유화 기업의 비효율성으로 생산성 감소와 제조 및 유통 기반이 붕괴한 상태서 재정 수입의 원천인 석유의 국제가격 하락, 미국의 석유 수출 금지 조치 등으로 외환 수입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복지를 줄이지 못하고 화폐 발행으로 돈을 풀어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살인적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해 경제활동은 마비됐다. 남유럽국가(PIIGS)들도 세입 기반이 취약한 상황서 방만한 사회보장 지출과 공공 부문 임금 등의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다가 2009년 말부터 금융위기와 재정위기에 허덕였다.

그리스는 채무 위기가 고조되던 2015년 국제채권단의 긴축 요구에도 포퓰리즘 중독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권자들은 이를 거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우를 범했다.

아시아에선 태국이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에 농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쌀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여 재정을 낭비하는가 하면, 이로 인한 쌀 공급과잉으로 쌀 산업은 국제시장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

이후 정부가 막대한 비축미를 풀면서 쌀가격이 떨어졌고, 공급량을 줄이기 위해 이모작 제한책을 내놔 농민들로부터 불만을 샀다. 이렇듯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며 장기적으로는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독일 킬(Kiel) 세계 경제연구소의 포퓰리즘 연구 대가인 푼케(Funke) 박사는 포퓰리즘을 한번 경험하면 재감염될 우려가 있으며 포퓰리스트 정책이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가 어렵다고 경고했다.

한국경제가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에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책 결정자들이 대중의 요구에 반응하면서도 재정건전성과 경제적 안정성을 고려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국가 및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매니페스토 공약 절실

포퓰리스트 선거공약은 종종 자유, 민주, 민족, 평등, 공정 등의 가치를 내세워 그럴듯하게 포장돼 알아채기 쉽지 않다. 이를 사전에 방지하고 균형 잡힌 정책 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정책 결정 단계에선 구체적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하도록 하고 국가 재정건전성 유지, 국가채무 등의 재정지표를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기 위한 재정 준칙(fiscal rules) 법제화를 실시해야 한다. 이는 현재 해외 주요국 대부분이 운용하는 방식이다.

이때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의견과 조언을 충분히 듣고 이를 반영해야 한다. 스웨덴은 정부가 정책 결정과 예산 편성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 광범위한 토론과 협의를 거쳐 의견 수렴, 가능성 검토 과정을 거치며 포퓰리스트 정책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나 정책 재정기관에 중립적·독립적인 평가 및 감독기구를 두고 정책의 이행 상황과 효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정한 결과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칠레는 국가기록 관리체계를 통해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정부의 행동을 관찰해 국민이 포퓰리스트적인 제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일본은 공공정보를 광범위하게 공개해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공론화를 촉진함으로써 유권자들이 포퓰리스트적 제안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 기간 중 허위 정보나 과장된 공약에 대한 관련 규제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 영국에선 선거나 국정운영 중 과장된 정보나 거짓 정보를 방지하기 위한 사실 확인 서비스 운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유권자들의합리적 판단을 돕는다.

유권자들이 포퓰리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비영리단체들이 정책에 대한 분석과 설명 및 재원 조달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즉,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예산 확보와 추진 일정을 포함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세운 매니페스토(manifesto) 선거공약을 내놔야 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정책의 실제적인 효과와 장단점을 검토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이행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유권자들도 망국적 포퓰리스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나중에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하고 포퓰리스트적 선거공약을 세밀히 따져야 한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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