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 살생부’ 계파별 손익계산서

여의도 칼바람에 떠는 비박 뜨는 친박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결국 올 것이 왔다.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얘기가 새누리당을 강타했다. ‘찌라시(증권가 정보지)’도 대서특필되는 민감한 시기에 유력 정치인의 입을 통해 나왔으니, 당이 발칵 뒤집힌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사태는 당 대표의 백기투항으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지도부가 의원들 입단속에 들어갔음에도 계파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당내 분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 ‘공천극장’의 막이 올랐다. 제1막 ‘살생부’는 김무성 대표의 사과로 끝났다. 지난달 29일 최고위원회의(이하 최고위)의 의결사항을 전달받은 그는 “당 대표로서 국민과 당원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전하고, 클린공천지원단에서 진행하는 진상조사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최고위는 사태의 진원지 중 하나인 정두언 의원을 불러 조사를 실시, 재발을 막기 위한 사항들을 의결했다.

흥미진진…
새누리 공천극장

의결사항은 크게 두 가지다.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의 공정성이 저해되는 언행 금지 ▲이를 어길 시 클린공천지원단이 즉각 조사해 엄중 처리한다가 그것이다. 엄중 처리는 공천 배제까지 염두에 둔 말일 가능성이 높다.

사태는 숨 가쁘게 진행됐다. 지난달 26일 언론에 처음 공개됐고 27일 공천면접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의원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알려졌다. 이날 정 의원은 자신을 포함해 40여명의 이름이 적힌 물갈이 명단이 친박계 핵심인사에 의해 김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즉 휴대폰으로 나도는 찌라시가 아니라 명단이 있고 이것을 친박계 인사가 비박계 수장이자 당 대표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그동안 우리 당에서 진박 마케팅이니 정말 웃기는 일이 많았는데 이런 일도 그 일환이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40인 살생부’라는 뇌관이 터졌다.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4일 정 의원은 김 대표와 평소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K교수로부터 40인 살생부 얘기를 듣게 된다. 앞서 그 교수는 김 대표에게서 존재 여부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평소 K교수는 김 대표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김 대표 측은 K교수에 대해 이미 김 대표와 멀어진 사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정 의원은 같은 내용을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서울시당위원장인 김용태 의원으로부터 재차 듣게 된다.

이틀이 지난 26일 정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공천배제 인사 40명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천장에 도장을 안 찍고 버티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정 의원에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의원의 표현에 따르면 당시 김 대표는 그야말로 ‘비분강개’했다. 정 의원은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답했다.

1막 살생부
김무성 사과

정 의원은 한 번 더 확인을 받았다. “대표실로부터 살생부 이야기를 들었다”는 말을 한 언론사 기자를 통해 듣게 된 것. 40인 살생부는 그날 저녁 모 일간지를 통해 기사화됐다. 이후 김 대표 측에선 기사 내용 중 ‘대표에게 들었다’를 ‘대표 측에게 들었다’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고 정 의원이 직접 해당 기자에게 수정 내용을 전달했다.
 

27일 면접장에 모습을 드러낸 정 의원에게 이한구 공관위원장은 사실 여부를 물었고 정 의원은 이 위원장을 따로 만나 “대표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튿날인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의 공식 기구에서 철저하게 조사할 것을 요청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이 자리에서 이 위원장은 ‘찌라시 작가’ ‘찌라시 전달자’라는 말을 했다. 시중에는 4, 5개 유형의 소위 살생부라는 찌라시가 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단발마의 총성은 대대적인 포격의 신호탄이었다. 29일 최고위에 참석한 김 대표는 “내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공천 관련 문건이나 살생부 얘기를 한 바 없다”며 정 의원의 말을 전면 반박했다. 이 자리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은 정 의원의 출석을 요구했다.

엇갈리는 말, 진실한 사람은 누구?
“리스트 없다” 무대 백기 들었지만…


사태는 의원총회(이하 의총)로 넘어갔다. 의총이 비공개로 전환되자 모든 것을 밝히라는 성토가 의원들 사이에서 거셌다는 전언이다. 첫 주자로 단상에 선 김 대표는 “살생부는 없다”고 말했고 이어서 의원들 앞에 선 정 의원은 “(대표가) 앞에서 그렇게 얘기했는데 더 뭘 말하겠나”라며 “최고위에서 모든 걸 말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진다.

의총 중간에 김을동 최고위원은 “둘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A∼Z까지 다 말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는 의총장에 남고 정 의원은 긴급 최고위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살생부의 진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 의원은 “‘당 대표가 찌라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김 대표가 나한테 ‘청와대 관계자가 자기한테 살생부 명단을 언급했다’고 말했다”며 청와대를 언급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같은 날 “청와대에 물어볼 일이 아니다”라며 “얘기를 꺼낸 당사자들이 설명할 일”이라고 논평을 자제했다.

의총이 끝나고 정 의원은 기자들에게 “이제는 빨리 수습해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라며 “다행히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천 과정에 외부의 부당한 개입은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최고위 의결사항을 전달받은 김 대표는 앞서 내용처럼 사과했다.
 

4일간의 진실게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계파 손익을 따진다면, 향후 4년의 주도권이 결정될 만한 사건이었다. 한 비박계 인사는 29일 “무게추가 친박계로 많이 기울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당초 유출자로 낙인 찍혔던 친박계는 파상 공세를 펼쳤다. 대표직까지 거론하며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그(살생부 사태) 중심에 당 대표 있다는 거 자체가 심각한 일이다”라며 “그럼에도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한 건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한구·이인제 의원은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특히 이인제 최고위원은 “공관위가 공천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도 거기 나가서 면접을 봤다”며 “공관위는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다. 공관위원들은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을 대신해 우리 당의 당헌·당규 정신을 받들어서 공명정대하게 민주적인 경선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손을 들어줬다.

2막 입단속
불똥 주의보

실세 최경환 의원은 자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문화일보>와의 대화에서 “지금 파악된 상황으로만 본다면 김 대표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했다. 당시 시점은 의총이 열리기 전이었다. 김태흠 의원은 “만약 정 의원의 주장처럼 당 대표가 친박 핵심 인사로부터 물갈이 명단을 받았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이건 김 대표가 거짓말까지 한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할 문제”라며 “지금부터 공천이든 뭐든 당 대표로서의 권한을 내려놔야 한다는 뜻”이라고 몰아세웠다.

반면 비박계는 이번 사태로 가장 득을 본 게 누군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애초에 살생부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 비박계 인사는 지난달 29일 “살생부는 없을 것”이라며 “당장 어떤 사람이 써서 돌려도 살생부라는 이름이 붙는 상황에서 관리하는 살생부가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즉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정가에서 흘러나오던 소문들의 종합이 이번 살생부 사태 전말이라는 것이다.

친박 의원들이 진상 규명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것도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란 게 비박계의 시선이다. 또 다른 비박계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공천이 투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었다고 내다본다. 즉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살생부를 조사해봤자 결국 실체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 위원장의 공천이 깨끗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가는 비박 “힘 받는 사람이 범인”
논란 이후…공관위 현역 컷오프 시사


해당 사태로 가장 힘이 실리게 된 쪽은 누가 뭐래도 공관위다.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번 논란이 결과적으로 공관위 입지 확대로 연결될 것으로 보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렇다. (김 대표가) 공관위의 공정성을 저해하지 않는다고 최고위에서 발표했지 않았느냐”며 “(앞으로) 이 위원장이 상당한 권한을 발휘해서 공천에 임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당성을 확보한 이 위원장은 사태가 진정된 지 하루 만에 현역 컷오프를 시사했다. 지난 2일 공관위는 구체적 기준안을 제시했다. 현역의 지지율이 당 지지도보다 낮다든지 몇 가지 기준에 미달할 경우, 집중심사에 나설 방침이라고 알렸다. 공관위 전체회의가 끝난 후 이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그런 경우(현역이 당 지지도가 낮을 경우)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 볼 것”이라며 “무조건 자르는 것(컷오프)이 아니라 일단 집중적으로 심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근 공관위는 내부적으로 단수·우선추천을 적용할 지역과 부적격 현역 등 공천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잡아놓은 상황이라고 한다. 일례로 공관위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클린공천지원단이 투서 등을 종합하고 있는데, 실질적인 컷오프의 기준이 될 것이란 예상이 있다.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공멸’이다. 사태를 빠르게 진화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공감대가 계파를 넘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당 관계자 표현을 빌리자면 선거전 계파 갈등은 자칫 국민에게 오만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2막 ‘입단속’은 확전 자제를 원하는 두 계파의 이해관계가 맞아 시작됐고 현재 진행 중이다. 대표의 사과로 이번 사태는 사실상 종결됐다는 게 최고위의 시선이다.

3막 컷오프
경선 레이스

그러나 갈등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 미봉(彌縫)에 그쳐 더 큰 갈등으로 번질 여지가 충분하다. 복수의 당 관계자는 이한구 위원장을 두고 ‘확실’한 친박이라고 말하고 있고,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이르면 오는 10일, 새누리당 경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제3막 ‘컷오프’가 막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필리버스터 후일담
새누리당 프레임에 화들짝해 중단?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을 포함한 야당이 테러방지법 표결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지난 2일 중단했다. 당초 2월 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10일까지 계속 진행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급선회를 결정했다.

필리버스터는 9일간 지속됐다. 지난달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한 후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릴레이 반대토론을 시작한 것. 더민주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38번째인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그 중 몇몇 의원들은 여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3번째 주자로 나선 더민주 은수미 의원은 10시간 18분이라는 당시 기준으로 헌정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우고 내려왔다. 동료 의원들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는 사진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후 최장 기록은 17번째로 나선 정청래 의원에 의해 깨졌다가, 38번째로 나선 이 원내대표가 12시간 31분을 기록하면서 경신됐다.

8 번째로 나선 신경민 의원은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약 중 필리버스터가 있었다며 “(새누리당) 홈페이지에서 공약집을 확인해보라”고 말해 한때 접속자가 폭주,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컷오프 명단에 이름을 올린 강기정 의원은 필리버스터 도중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 눈길을 모았다.

국회법상 본회의장에서 주제와 관련 없는 발언이 금지돼 있지만, 당시 사회를 보던 정갑윤 국회 부의장은 제지하지 않았다. 노래를 다 부른 강 의원이 단상을 내려가자 정 부의장은 “(필리버스터에) 나와줘서 고맙다. 사랑한다”고 배웅했다. 강 의원은 단상에 오르기 전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으로부터 당이 자신의 지역구인 광주 북갑에 전략공천을 할 것이란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10일까지 진행하려다 급선회
38명 의원 단상 올라 열변

필 리버스터 중단이 알려진 지난 1일 34번째로 단상에 오른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은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소식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계시다는 것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박 비대위원의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이 ‘선거용’이라며 비판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박 비대위원은 “여러분이 분노하신 만큼 4월13일 총선에서 야당에게 표를 주시라”며 “야당이 이겨야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야당에게 과반의석을 주셔야 한다. 더민주에 힘을 주시고 야당을 키워주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2일에 있었던 의원총회에서 “어제 더민주의 박모 의원께서 필리버스터 도중에 눈물을 쏟으면서 총선에서 표를 모아달라고 하는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며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총선을 위한 선거버스터였음을 확인시켜주는 장면이었다”고 날을 세웠다.

한 야당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달 29일을 전후로 더민주 내에서는 필리버스터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꽤 나왔다고 한다. 같은 날 저녁 김종인 대표의 입에서 “(이종걸) 원내대표가 이 선거판을 책임질 것이냐”고 한 발언도 이의 연장선이란 게 정가의 관측이다. 2월을 넘길 경우 여론이 악화돼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의원들 사이에 빠르게 번졌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그 이면에 새누리당의 프레임이 있었다고 본다. 익명의 정가 관계자는 “최근 새누리당에서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는 이유가 필리버스터 때문이라는 프레임을 짜고 있었다”라며 “더민주 내에는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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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