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얘, 넌 쟤 먹어!”일방적 기업 짝짓기 봇물
1970∼80년대 중동아시아의 오일달러를 쫓아 앞뒤 안 가리고 진출했던 건설업체들은 신이 났다. 순식간에 오일달러가 들어오고 기업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여러 개의 신생 건설그룹도 생겨났다. 경남기업그룹, 삼익주택그룹, 삼호주택그룹, 라이프주택그룹, 한양주택그룹 등이다
건설업체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덩달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국내보다 월급이 4배나 많은 해외건설현장에 3년만 취업하면 귀국해서 집도 사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니 너도 나도 해외건설현장에 기능공으로 나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고 꿈이었다.
해외기능공 부인 탈선 중도 귀국 등 악순환
각 해외건설업체에는 해외 기능공으로 나가고자 하는 수많은 인력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노다지를 캐러 먼 길을 떠나는 광부의 심정과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는 해외인력부라는 부서가 건설업체에 큰 비중을 가진 조직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이 ‘신데렐라의 꿈’은 신기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처·자식을 위해 대박을 꿈꾸며, 사막의 열기를 온 몸에 덮으며, 불철주야 위험을 무릅쓰고 떠났던 해외기능공의 거친 손에는 고향의 동생으로부터 형수님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알리는 편지가 쥐어지곤 했다.
“형님, 형수님이 요새 이상해졌습니다. 형님의 통장에 많은 돈이 꽂히자 나들이가 심해지고, 심지어는 밤늦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들도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형님이 벌어 오신 귀중한 돈을 탕진하는 것 같아 저의 심정도 무겁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남자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형님이 형수님에게 잘 타일러 보십시오.”
이역만리에서 이런 편지를 받아 본 사나이의 가슴에는 피 눈물이 솟구친다. 당시 가난하게 집에 얽매어 살던 서민층의 아낙들이 갑자기 일확천금으로 남편이 벌어다 준 돈 때문에 이성이 마비되고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카타르시스에 빠졌던 것이다. 이른바 그 유명한 ‘춤바람’이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현란한 조명과 춤이 난무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반드시 있듯이 이 조명과 춤에는 도처에 눈을 두리번거리며 자기의 먹이를 찾고자 헤매는 ‘제비족’이 기생해 살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낮과 밤, 양과 음, 성공과 실패, 선과 악,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천사와 악마, 원심력과 구심력 등 반대 방향의 극과 극에서 양단(兩端)을 구성해 팽팽하게 댕겨주고 느슨하게 해주는 동인(動因)이 반드시 존재해 왔다. 이 양단의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자연법칙은 무너지고 우주가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양단의 동인은 동전의 양면이요, 손바닥의 앞과 뒤인 것이다.
제비족들은 춤바람 난 여자를 사냥했고, 이는 육체의 탈선과 가정의 탈선을 불러왔다. 탈선은 탈선에 그치지 않고 남편의 중도 귀국과 이에 따른 가정파탄, 혹은 현지에서의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해외건설업체나 언론에 상당히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이런 고정(苦情)처리가 건설업체의 주요사항으로 여겨졌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오로지 수출만의 대박을 향해 달음질치던 건설업체의 발이 땅 위의 돌에 걸린 셈이다. ‘무리하게 경쟁해서라도 수주부터 따야겠다’는 경영자의 좁은 안목으로 공사하면 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덤핑수주가 유행했고, 이는 낙찰금액이 실행예산금액의 반에도 못 미치는 공사수주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중동아시아 국가는 공사결제를 현금으로 하지 않고 현물로 대신했다. 원유였다. 가공해서 팔아야 하나 이의 가공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코스트가 대단했고 특히 저장할 탱크도 없었다. 심지어 현물도 주지 않고 기성 확인을 어렵게 해 공사대금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를 계속했다. 한번 정부의 눈 밖에 나면 앞으로 공사는 끝이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업체들은 곧 눈앞에 닥칠 사태를 청와대에 읍소했다. 달리 호소할 데가 없는 기업은 그래도 기댈 곳이 청와대라 생각했다. 국가차원에서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상수라 생각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기업경영자의 오판에 불과했다. 청와대는 중동국가들에 대한 외교상의 채널 대신 읍소한 건설업체를 인수해 정상화시킬 새로운 경영자를 찾고 있었다. 중동국가들과는 별 친목관계를 갖지 않았던 전두환 정부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겠지만, 정부를 믿고 정상화 지원을 요청했던 기업들로선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그렇게 해외건설업체의 줄도산이 눈앞에 다가 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대통령은 여러 해외건설업체의 매각을 발표했다. 또 인수 적격 업체도 밝혔다. 이런 경우 입찰에 붙이거나 아니면 인수자의 의향을 들어보고 적의 조정해야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정해버렸다.
해외건설업체의 부실이 예상보다 엄청나 교과서대로 인수자를 물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도 이들 부실업체를 인수하려고 자원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신문지상에 큼직한 기사가 떴다.
‘K기업은 대우, 삼호주택은 D산업, 삼익주택은 K기업, 라이프주택은 T기업, 한양주택은 A기업 등으로 매각업체와 인수업체를 결정했습니다.’
“정부에 말도 못하고…”‘울며 겨자 먹기’공사
각 인수기업은 실사팀을 구성, 전격적인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의 일방적인 매도자와 매수자의 짝꿍을 만들었으니 짝꿍끼리 잘 맞춰 잘 살아야지 마음이 안 맞아 헤어지면 어떤 불이익이 초래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대우의 경우 엄청난 기업실사단이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편성됐다. 사우디아라비아 해외현장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현장, 국내현장 등 많은 현장들이 공사를 제대로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K기업은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대주주인 S씨의 주식을 차압하고 은행관리상태로 있었다. 재미교포인 S씨는 당시 적은 돈으로 K기업을 인수해 해외건설 붐에 편승,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으나 합리적인 경영보다 자의적이고 불투명한 경영으로 순식간에 기업을 도탄지경에 빠트린 것이었다.
필자가 실사하면서 느꼈던 점은 기업 CEO는 절대 ‘GAG MAN’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GAG MAN은 웃기는 개그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CEO가 조심해야 할 룰을 가리키는 것이다.
‘G=GAMBLING(도박), A=ALCOHOL (술), G=GIRL(여자)’
이 세 가지 요소가 CEO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인자다. K기업의 대주주이며 CEO인 S씨는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욕심이 많았던 자였던 같았다. 싱글인 그는 ‘여자 사냥’을 밥 먹듯이 하면서 회사 돈을 축내기 시작했고, 실제로 영화배우인 T씨를 자기의 부인인양 데리고 있으면서 해외 P에 많은 회사 돈을 송금해 기업의 자금을 부도덕하게 손실내고 있었다.
여기에는 해외에서의 도박이 빠질 수 없었고, 또한 술이 약방의 감초로 작용되어 더욱 더 명석해야 할 CEO의 정신을 혼미에 빠트리고 정상적인 판단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즉 이 GAG는 기업 CEO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결국은 기업을 깡통으로 만드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CEO = GAG MAN’도박·술·여자 ‘3불’
외로이 정상을 지키며 수많은 종업원의 생계와 사회경제를 책임져야 될 CEO는 무엇보다 심신이 청결하고 순수해져야 한다. 이 순수함이 국내외로 끊임없이 변하는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 무엇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고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판단인지 구분할 수 있는 예지력을 주기 때문이다.
예지력이라 함은 깨끗한 심신의 순수함과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어울려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PREDICT’를 의미하지 GAG로 얼룩진 심신의 불결 속에 점쟁이가 하듯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마구 해대는 ‘FORETELL’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험상 적당을 벗어난 GAG를 즐기는 CEO 치고 기업을 망가뜨리지 않은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작금에 이르러 상장기업중 부도에 이르는 대부분의 이유가 CEO의 횡령 등 부도덕과 판단미스에 따른 것임을 보면 얼마나 CEO 역할이 중요한지 알 수가 있다. 각 인수기업들이 실사를 끝내고 엄청난 부실의 재무구조를 보며 인수가 불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 내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대통령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항명하느냐….’
각 인수기업 총수들은 인수를 할 수 없는 막막함에 속을 앓았다.
정리=김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