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대학생 강씨는 평소 뉴발란스 신발과 만다리나덕 백팩을 즐겨 착용한다. 조만간 스파오 매장에서 니트와 점퍼를 구입할 생각이다. 얼마 전 집 근처에 ‘이랜드복합관’이 생기면서 쇼핑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어졌다. 어차피 오후에 동네 친구와 같은 건물에 있는 피자몰에서 점심 먹기로 약속했다. 값싸게 옷을 사고 9900원에 배터지도록 피자를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어릴 적부터 줄곧 들렀던 재래시장 귀퉁이 분식점은 안 가본 지 꽤 된 듯하다.
1980년 이화여대 앞 옷가게에서 출발한 이랜드그룹은 공격적인 마케팅전략을 앞세워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 사이 의류사업에서 유통업과 식품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해외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더했다. 지금은 약 5000개에 이르는 매장 및 유통망을 갖춘 거대 기업으로 우뚝 섰다.
쇼핑·식사 해결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따르는 법. 외형이 커진 만큼 이랜드를 둘러싼 잡음도 한층 빈번해지고 있다. ‘이랜드복합관’을 바라보는 소상공인들의 싸늘한 시선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전국 주요상권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랜드복합관은 의류(스파오), 잡화(슈펜), 생활용품(버터) 쇼핑과 먹거리(자연별곡, 로운, 피자몰)를 한 공간에서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본사 직영으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이랜드를 대표하는 의류·잡화·요식업종 브랜드가 다수 입점해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 건물에서 점심을 먹고 옷, 신발, 생활용품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다. 메뉴를 달리한다면 저녁식사까지 해결 가능하다.
순기능도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장한 이랜드복합관 신촌점의 경우 근 20년 간 신촌상권의 터줏대감이었던 옛 그랜드마트 자리에 입점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2012년 경영난으로 그랜드마트가 폐점한 이후 유동인구가 크게 감소하면서 경직된 인근 상권마저 이랜드복합관에 힘입어 덩달아 살아나는 분위기다.
이랜드 관계자는 “죽어가던 인근 상권이 이랜드복합관 개장과 함께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며 “패션·외식 업종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현재는 일일 평균 1만명이 매장에 다녀갈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이랜드복합관의 단면에 불과하다. 문제는 대다수 인근 소상공인들은 이랜드복합관을 커다란 위협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소형 의류점포 상인들의 피해도 우려스럽지만 특히 요식업 종사자들의 불안감은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안된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지금껏 주력인 의류사업에서 다브랜드, 다점포, 저가정책을 추구해온 이랜드는 요식업종에서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자사 브랜드의 인지도를 넓혀 왔다. 마진을 적게 남기는 대신 많이 팔아 이윤 극대화를 추구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샤브샤브 부페 ‘로운’이 대표적이다.
샤브샤브용 고기 무제한 리필이 가능한 로운은 평일 저녁과 공휴일에 1만5900원, 평일 낮 시간대에 9900원이라는 가격대로 인기몰이에 성공한 모습이다. 메뉴 종류와 서비스를 감안하면 가성비가 단연 돋보인다. 한 쪽에는 샐러드바가 마련돼 있어 다양한 음식을 맛보기에도 용이하다.
이랜드복합관에 입점한 다른 요식업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한식부페(자연별곡), 피자부페(피자몰) 등 취급 품목에 따라 조금씩 다를 뿐 가성비를 앞세운 기본 전략은 동일하다. 당연히 대기업과 전면전이 힘든 인근 소상공인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랜드복합관 홍대점 인근 한 상인은 “일반인들은 맛있다면 장사가 잘될 거라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경쟁업체가 대기업이라면 말이 달라진다”며 “대기업과 동등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데 넓고 쾌적한데다 가격마저 저렴한 곳을 등지고 누가 소형 점포에 오겠나”라고 반문했다.
즉, 이랜드복합관에 자리 잡은 요식업 브랜드와 인근 소점포의 업종이 그리 겹치지 않기 때문에 주변상인들의 피해가 미미할 것이라고 언급했던 이랜드측 주장과 사뭇 다른 셈이다. 실제로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등장이 인근 소점포에 가하는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미 수차례 입증된 사안이다.
상생은 뒷전…인근상권 죽이기
소점포 입는 피해 심각한 수준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서울·경기 지역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한식뷔페가 개장한 이후 한식당들의 폐업과 매출 감소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대기업 한식뷔페 5km 이내 음식점 45.2%의 매출이 줄었고 이들의 매출 감소율은 평균 15.7%에 달했다.
1km 이내 음식점은 52.2%, 1∼5km 이내 음식점은 39.3%의 매출이 감소했다. 한식뷔페와 고객이 겹치는 한식당의 타격이 가장 컸고 일식, 양식, 중식 역시 후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식당 밀집 지역이나 동네 골목에 위치한 중소규모 음식점들이 대기업들의 한식뷔페로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역세권, 대형 식당가에 진입한 대기업 산하 요식업종이라면 이들의 영업력은 갈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소점포 상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랜드복합점과 유사한 사례가 계속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대기업의 요식업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CJ푸드빌의 경우 이랜드에 앞서 런칭한 한식부페 브랜드 ‘계절밥상’으로 경쟁력을 입증했다. 전국에 백화점 32곳과 대형마트 113곳의 유통망을 보유한 롯데그룹 역시 본격적인 요식업 진출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외에도 이미 요식업에 진출했거나 진출시기를 저울질하는 대기업이 부지기수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요식업 진출을 막을 만한 장치가 마련된 것도 아니다. 대형마트의 경우 골목 상권 침해를 막는 법안이 마련되고 한 달에 두 차례 의무 공휴일 제도가 정착됐으나 아직까지 골목 식당 보호를 위한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랜드는 불과 몇 해 전까지 자사 브랜드의 일요일 영업 제한 방침을 고수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유명무실해졌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적합업종’ 제도를 앞세워 규제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대기업 산하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은 이마저도 예외조항을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다. 본사 또는 계열사 건물을 통한 복합다중시설, 신상권 출점을 예외조항으로 묶어버린 게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요식업에 대한 적합업종 권고기간(3년)이 2016년 5월31일부로 끝나기 때문에 대기업의 요식업 진출은 의지의 차이일 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상생은 어디로
정부는 효율적·체계적 동반성장 정책 추진을 위해 3년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1차 기본계획을 세웠고 2011년 5월 2차, 2014년 11월 3차 기본계획을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까지 동반성장이라는 단어에 상생의 의미가 제대로 부합됐는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따른다. 일단 대기업이 소점포를 아사 일보직전까지 몰고 간다는 것은 상생의 의미를 떠나 상도덕을 한참 벗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