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정성 담긴 ‘삼순이 호두파이’ 김이경 대표


 
제과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전업주부가 창업한 호두파이 전문점이 큰 인기를 끌고 있어 화제다. 알이 굵은 통호두를 넣어 씹히는 맛이 좋고 설탕 대신 현미와 검은깨 분말 가루를 넣어 담백함을 살린 ‘삼순이 호두파이’. 하지만 맛난 삼순이 호두파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호두파이에 담긴 김이경(52) 대표의 ‘사랑과 정성’이다. 김 대표는 이 같은 호두파이 하나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의 꿈을 키우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승부 걸어라”

보통 주부들과 다를 것이 없었던 김이경 대표는 평소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만든 호두파이를 만들어 줬더니 맛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서초구 명물 1호로 지정
왜 삼순이 호두파이지?
그는 40대에 관절염으로 몸이 여기저기 아프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그의 인생에 전환기가 찾아 온 것은 바로 2003년 1월, 동네 동사무소에서 컴퓨터를 배우면서였다. 컴퓨터 선생님이 준 과제로 만든 게 ‘삼순이 빵집’이었다. 그 당시 제과 자격증이 없었던 김 대표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 동네 서점에서 <기초 빵 만들기>라는 책을 사서 빵과 파이를 만들어 보던 터였다. 자신이 만든 빵을 꽃 돼지가 들고 배달하는 상상 속의 빵집을 컴퓨터 화면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집에서 빵과 파이를 5백~6백개씩 만들어 보았던 것 같아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수차례 파이 맛을 선보이면서 맛을 꾸준히 향상시켜 오면서 맛난 파이를 만들게 됐어요. 하루는 집에서 만들어 먹던 호두파이를 남편(장진갑씨) 거래처 사람들에게 인사 차 선물을 했었는데 모두들 ‘어느 호텔에서 사왔느냐’고 물어 보더래요. 그래서 저도 사업을 시작해볼 결심을 하게 됐죠.”
김 대표가 직접 만든 파이를 맛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김 대표는 2003년 11월1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안에 작은 점포를 빌려 삼순이 호두파이의 문을 열게 되었다.
“벌써 11월 11일이면 올해로 5년이 되는군요. 처음 집 앞 아파트 상가에 점포를 차리면서  집에서 쓰던 전화기, 오븐, 선풍기, 냉장고 등 모조리 가지고 왔어요. 돈도 없어서 많은 돈을 투자할 수도 없었어요.”

반복된 실험 통해 얻어낸 ‘삼순이 호두파이’
삼순이 호두파이 맛의 비결은 ‘사랑과 정성’

그 당시 김 대표는 ‘과연 내가 만든 호두파이를 몇 개나 사갈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오픈을 하고 하루 종일 호두파이를 팔았는데 7판하고 반을 팔았어요. 참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더군요.”  
그런데 팔리는 양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거래처에 선물하겠다”며 다음날 아침까지 만들어 달라고 88박스를 한꺼번에 주문해 밤을 새워 만든 적도 있다고 했다.
삼순이 호두파이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도 들어가 있다. 서초구 내에서 그 명성이 자자해 신세계 측에서 직접 러브콜을 받은 것. 다른 백화점에서도 입점해 달라는 제의가 많지만, 공급을 댈 수 없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다.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들어와 택배로도 배달을 한다. 더욱이 삼순이 호두파이는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맛이 소문이 나 ‘서초구 명물 1호’로 지정됐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삼순이 호두파이’.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이름이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한국적 이름의 호두파이 전문점이다.
호두파이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름인 삼순이 호두파이. 호두파이 사가는 손님들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왜 삼순이예요” 라는 말을 꼭 듣는다고 한다.
“저희 집에서 1남3녀 중 제가 셋째 딸이고 어릴 적 별명이 삼순이였어요. 처음 점포이름을 짓는데 남편과 정말 많이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삼순이라는 이름이 정말 촌스럽고 어떻게 보면 정감이 가고 해서 고민 끝에 그냥 삼순이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이 먹힌 거예요.”
이름을 짓고 난 후 주위 사람들과 동네 아이들이 ‘삼순이~ 삼순이~’ 하며 부르고 다니는 것이 간접 홍보가 되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삼순이 호두파이가 결정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삼순이 호두파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호두파이를 굽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1월11일부터인데  2006년도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어요. 정말 유명했었죠. 그러면서 동네 사람들이 제가 그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더욱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드라마 하는 동안 삼순이 호두파이 먹으면서 TV를 본다며 주변에서 많이 사가지고 갔어요.”

내가 ‘원조 삼순이’
호두파이 맛의 비결?
김 대표는 비록 드라마 실제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 계기로 <내 이름은 김삼순> 제작진으로부터 연락이 오게 되었다. 제작진들에게 창업에 관한 얘기를 드려주면서 드라마에 김 대표의 얘기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삼순이 호두파이는 다른 보통 호두파이들과 달리 특별한 것이 들어 있다고 한다. 삼순이 호두파이 맛의 비결은 ‘삼순이’ 김 대표와 남편만의 비밀. 두 사람은 몇가지 비법을 공개했다.
“보통 호두파이는 도우(껍질)가 두꺼워 맛이 없어요. 그걸 어떻게 하면 파삭파삭하게 만들까 고민했었죠. 도를 하루정도 냉장고에 숙성을 시킵니다. 반죽을 손으로 최대한 얇게 밀고, 가정용 오븐에서 2시간 30분 동안 위치를 바꿔 가며 굽습니다. 오븐 온도는 20분마다 조절해요.”
보통 40~50분 굽는 것에 비하면 굽는 시간이 무척 긴 편이다. 그리고 삼순이 호두파이에는 설탕이나 첨가제, 광택제(방부제)를 넣지 않다.
“보통 제과점에서 파는 호두파이는 설탕을 넣어 달지만 저희는 설탕을 넣지 않아요. 반죽에는 현미가루와 검은깨 분말을 넣어 부드럽고 아삭아삭한 맛을 더했어요. 녹차가루를 넣으면 담백하죠. 통호두를 빽빽하게 올리고, 속을 촉촉하고 달지 않게 만들다 보니 다른 곳보다 돋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삼순이 호두파이 맛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료들도 중요하지만 더욱이 중요한 것은 바로 저의 정성이 들어간다는 거죠. 파이를 하나하나 만들 때 최고의 원료를 가지고 정성스럽게 파이를 만들다 보니 먹는 사람들이 맛있다고 다시 찾는 것 같아요. 모든 음식에는 정성과 사랑이 들어가야 맛있듯이 파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삼순이 호두파이는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호두파이를 홈메이드의 따스함과 핸드메이드의 정성을 담아 즉석에서 만들어 내며 최상의 재료로써, 달지 않고 고급스러움이 담긴 정말로 맛있는 호두파이의 차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주원료인 호두의 경우 신선한 캘리포니아산 호두를 정말 놀랄 만큼 듬뿍 넣어 씹을수록 아삭하고 고소한 맛이 배어난다.

사랑과 정성을 담은 파이
가수가 되고 싶었던 아이
김 대표는 학창시절 서울예고를 나와 이화여대 성악과에 진학할 정도로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여대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다가 국립합창단에 합격해 79년~87년까지 활동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을 모아놓고 앞에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이미자처럼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1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립합창단 단원이 된 후에도 훌륭한 솔리스트가 되기 위해 정말 그 순간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나 그는 7년 동안 준공무원으로 단원 활동을 하다가 남편이 해외로 발령이 나면서 이민을 가게 됐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아요. 가게 벽에 좋아하는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의 사진을 붙여 놓고, 칼라스 노래를 틀면서 노래 공부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일이 바쁘다 보니 목소리를 다듬을 시간이 없더군요.”
김 대표가 질 좋고 맛있는 호두파이를 만드는 데 주력하면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온 남편은 사업전략을 짠다. 비싼 재료를 쓰는데다 공을 많이 들여 만드니 가격을 높이자는 남편의 의사에 김 대표의 대답은 “노”라며 “내 호두파이는 누구나 쉽게 사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것을 많이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묻어 있다. 돈을 많이 벌면 좋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맛난 것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이곳 아니면 어디가서 먹어 보겠어요”라고 인사를 하고 갈 때면 정말 보람을 느끼면서 더더욱 맛있게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장애인복지관 찾아 따스한 사랑의 손길 전해
‘나만의 명품’ 호두파이로 세계 입맛에 도전

김 대표 부부는 호두파이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 사랑을 전한다. 김 대표 부부는 몇 년 전부터 경기도에 위치한 ‘성분도 장애인 복지관’ 봉사를 하고 있다.
“성분도 복지관은 장애아들이 있는 곳이예요. 매년 1번씩 바자회를 여는데 장애아이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백원짜리부터 만원짜리까지 파는데 그곳에 파이를 후원해주고 있어요. 간혹 아이들이 만든 것을 저희 부부에게 가지고 와서 선물을 주면 참 고맙더군요.”
김 대표 부부는 성분도 장애인 복지관과 인연을 맺은 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엔 지역구인 서초구에서 장애인 단체를 연결해줘서 매달 지역으로 봉사를 다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회 어두운 곳과 사랑이 필요한 곳에 봉사를 하고 싶어요. 저희 부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사랑과 정성이 담긴 삼순이 호두파이를 들고 어디든지 달려갈게요.”
 
사랑을 나누는 김 대표 부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삼순이 호두파이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제의도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지금 정도의 신뢰라면 당연히 프랜차이즈 사업에 손을 댈 만한데도 프랜차이즈 얘기를 꺼내자 김 대표는 고개를 흔들었다.
“호두파이 전문점을 내고 싶다며 또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조차 기술을 배우기 위해 몇 천만원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삼순이’처럼 이름값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거절한 이유는 딱 한가지예요. 저 하나 믿고 창업에 도전했다가 혹 잘못이라도 되면 그분들 인생은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대신 김 대표는 창업으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 보면 경험도 없이 퇴직금 가지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창업이라는 것은 많은 돈을 들인 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에요. 저는 처음 시작할 때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인 자리였어요. 적은 돈을 들이던 많은 돈을 들이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승부를 거는 것이죠.”
40대에 찾아온 성인병으로 한의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어도 낫지 않았던 관절염이 김 대표가 하고 싶었던 호두파이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병까지 말끔히 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몸도 좋아지더라고요. 참 고마운 일이죠.”
마지막으로 ‘왜 호두파이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호두파이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며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맛있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김 대표는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삼순이 호두파이’ 4가지 차별화된 특징>

1. 업소용 오븐이 아닌 집에서 쓰는 가정용 오븐으로 구워낸 정성이 깃든 제품을 만들어 낸다.  
2. 일반제과점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방부제와 설탕, 광택제 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진정한 웰빙상품이다.  
3. 도우를 만들 밀가루 반죽을 하루 냉장고에 숙성시킨다. 파이 만들기의 전과정을 1백% 손으로 하는 진정한 수제파이이다.  
4. 여기에 최고의 원료로 파이 하나 하나 ‘사랑과 정성’을 담아 만든다.
삼순이 호두파이에 관한 문의는 전화 02-536-7743,인터넷 홈페이지www. samsuni.co.kr.

글 구명석·사진 송원제 기자/gms7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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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