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귀 간지러운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

법조인이 인권이 뭔지 알기나 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내정했다. 현직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한 데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했다는 지적과 후보 자격 검증 논란이 일 전망이다. 

 
“선배 법관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시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이 된 이씨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평화와 행복을 찾기 바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인 ‘아람회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일로부터 29년, 재심 청구 9년 만인 2009년에 전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이성호(58·12기) 국가인권위원회 내정자도 주목을 받았다.
 
원칙주의자 정평
다양한 사건 다뤄 
 
이 내정자는 판결문을 통해 “법관에게는 소수자 보호라는 핵심 과제가 있어 절대권력자가 진실에 반하는 요구를 해도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극심한 불이익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의무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며 선배 판사들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 판결은 이 내정자가 30년을 판사로 재직하면서 ‘원칙주의자’로서 소신 있게 판결을 내려온 그의 모습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이 내정자는 충북 영동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0년 사법시험 제22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2기로 법조계 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고법 판사, 서울고법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을 거쳐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임명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법관이다. 지난해는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이예림(31·사법연수원 40기) 울산지법 판사가 딸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자상하고 균형감각을 갖춘 선배’ ‘사회적 약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소통에 뛰어난 법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행정·입법·사법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관으로 핵심가치인 인권을 수호하는 인권위원회의 수장으로는 적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다뤘던 사건의 스펙트럼도 넓다. 서울고등법원 형사부장으로 있을 때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과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 등 굵직하고 까다로운 항소심 재판을 원만하게 진행했다. 
 
미국 대학 연수로 쌓은 해외 법령 지식을 바탕으로 재판연구관 시설 비교법연구회 간사로 활동했다. 특히 지적 재산권 분쟁의 국제법적 문제에 관해 전문가로 꼽히며, 지적재산권을 주제로 4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로 있을 때는 로스쿨 실무수습생과 재판연구원의 첫 선발을 무난히 지휘해 사법행정 능력도 인정받았다. 
 
지난 20일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국가인권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내정자는 서울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와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을 역임하는 등 약 3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정의, 원칙에 충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고했고, 합리적 성품과 업무 능력으로 신망이 높다”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 내정자는 인권 보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인권위원회를 이끌 적임자로서 인권위원회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위상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평판 나쁘지 않지만
인권전문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이번 인선에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을 하면서 인권위원장 후보 자격을 검증할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인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인권위원장 인선절차 및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인권위원장 인선절차와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국제민주연대, 인권정책연구소, 성소수자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 등 10여개 시민단체들이 구성한 조직이다. 연석회의는 “그동안 인권위원장 인선절차를 마련하라는 국내외 인권단체 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갑자기 위원장을 내정했다”고 비판했다. 
 
다수의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인권위원 선출의 독립성에서 온다’며, 그간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 선출 절차 마련을 요구해왔다. 지난 4월에는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청와대, 국회, 대법원에 ‘신임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 선출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인권위원 선출 절차를 마련하라는 요구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경고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ICC는 2015년 3월 인권위원회 등급을 보류하며, 한국 정부가 인권위원장을 선임할 때 △공석을 널리 공고할 것 △다양한 사회계층 및 교육 배경을 지닌 지원자의 수를 최대화 할 것 △지원, 심사 및 선출 과정에 있어서 광범위한 협의 및 참여를 도모할 것 △사전에 결정된 객관적이며 공개된 기준으로 지원자들을 평가할 것 등을 이행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또 그쪽에서…” 시민단체들 비판 목소리
청와대 밀실 인선·후보 자격 검증 논란
 
ICC는 지난 2014년 3월, 10월도 등급심사를 보류했다. 위원 선출 기준을 정립하지 않고, 심사 및 선출 과정에 광범위한 협의와 참여를 증진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3회 연속 등급 보류는 사실상 강등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인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을 한 것은, 인권위원회 위상을 더 이상 추락하지 않게 하기 위한 시민 사회와 국제기구의 노력을 수포로 돌린 것이라는 지적이다. 연석회의 관계자는 “청와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시민사회와 함께 후보자를 정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날 인선이 있기까지 연락 한 통 받지 못했다”며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내정자가 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이 충분한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립 기관이지만,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다. 하지만 현직 법원장을 차출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직속기관인 감사원장에 현직인 황찬현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차출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삼권 분립 훼손 논란이 일었다. 대통령이 지명한 이 내정자가 바로 황찬현 원장의 후임이었다.
 
“인선절차 없다”
입맛대로 내정
 
이 내정자가 인선된 것에 대해 법원공무원들까지 들고 일어났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청와대가 현직법관에게 인사권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어, 삼권분립의 헌법정신 훼손을 우려한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 발표를 요구했다. 
 

법원본부는 이명박정부 이례로 고위법관의 행정부 고위관료 임용이 하나의 패턴처럼 굳어져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고위법관들이 행정부 고위관료로 간 사례를 보면, 2008년 김황식 대법관 감사원장 지명, 2013년 황찬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감사원장 지명, 2014년 최성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 임명 등이 있다.
 
법원본부는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 인사의 독립과 판결의 독립이 그 핵심이라 말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현 정부는 2013년부터 해마다 현직법관을 행정부 고위 관료로 임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청와대가 현직법관에게 인사권을 행사한 것과 다름없다. 사법부 독립을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위원회가 제3의 사법기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인권위원회에 법조인이 너무 많아서다. 현재 인권위원회의 위원 11명 가운데 법조 출신이 8명이다. 상임위원 4명 중 3명이 법조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회적 다양성을 대표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내정자의 전문성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중략)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판검사 출신 가득한 인권위
추락한 위상 되찾을지 의문
 

하지만 이 내정자는 법률 전문가지 인권전문가는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로써 인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지도 알려진 게 없다. 청와대가 이 내정자를 인권위원장으로 인선했을 때 어떤 근거로 추천했는지 의문이다. 이 내정자는 수락한 근거가 무엇인지도 의뭉스럽다며 입 모아 말한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명숙 집행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권은 법을 뛰어넘어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더 옹호하는 가치를 잣대로 명가해야 한다”며 “실정법에 한정해서 평가하는 그런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야 하는 게 중요하다”며 법조인 인선에 대해 비판했다.
 
박 대통령의 법조인 사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꾸릴 때부터 나타났다. 김용준(77·고시9회) 전 헌법재판소장을 위원장으로, 안대희(60·7기)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위원장으로, 판사 출신인 진영(65·7기)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기용했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김기춘(76·고시 12회) 전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검찰 출신인 정홍원(71·4기)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지난해 4월에는 법원장을 마치고 재판업무에 복귀한 최성준(58·13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방송과 통신·미디어 정책을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고, 지난달에는 정부의 첫 법무부장관으로 2년3개월간 장수한 황교안(58·13기) 장관을 국무총리에 발탁했다.

또 법조인 사랑
인사청문회 고비
 
현 정부 들어 법조인 중용이 계속되는 이유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잘 부합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또 판·검사 등 오랜 공직 경험과 법조인으로서의 절제된 삶으로 다른 직역에 비해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수월하다는 점도 대통령이 법조인을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한편 국가인권위원장 임기는 3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한다. 장관직에 준하기 때문에 국회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여야는 오는 8월11일 이 내정자의 후보 인사청문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min1330@ilyosisa.co.kr>
 
 
[이성호 내정자는?]
 
▲충북 영동
▲서울 신일고
▲서울대 법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원장
▲서울중앙지법원장
 

<기사 속 기사> 추락한 인권위 '어제와 오늘'
 
전 세계에 100개가 넘는 나라에 국가인권기구가 있다. 1993년 채택된 파리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기구로서 해당 국가의 인권증진을 도모하고,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했다. 인권위는 그간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 노무현정부 시절이던 2003년엔 이라크전 파병에 대해 반대 견해를 밝히며 정부에 신중히 판단할 것을 권고했다. 비록 실현되지 못했지만 인권위가 독립기구로서 역할을 다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후로도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2004)와 사형제 폐지(2005),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인정과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2005) 등 때마다 제 목소리를 냈다. 덕분에 2007년엔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도 소개됐다. 
 
하지만 2008년 보수 정권의 등장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권력의 인권침해에 대해 침묵하고 방조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급격하게 인권위원회 위상이 추락했다. 특히 2009년 현병철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가 만신창이가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 위원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도마 위에 올랐다. 또 스스로 “인권에 대해 잘 모른다”고 실토했을 만큼 인권 경력이 전무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인사를 강행했다. 
 
그동안 현병철 인권위원회 체제는 이명박정부 때 ‘피디수첩 사건’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 등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인권 침해 문제에 눈을 감았다.
 
또 온 국민을 비통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와 헌정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 채증 등 정부에 불리한 인권 사안을 의도적으로 보고서에서 누락시킨 인권위원회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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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