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vs 친박 장관 ‘정면충돌’ 내막

어차피 2년 후면 끝인데 4년 쉬라고?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박근혜 대통령과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장관들에게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내년 총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경고음도 들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모든 개인 일정은 내려놓고 국가 경제와 개혁을 위해 매진해 달라”며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에게 개인적 행보를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벌써 이번이 두 번째다. 박 대통령은 불과 2주 전인 지난 7일에도 “경제를 살리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행로는 있을 수 없다”며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경고 메시지
미지근한 반응

청와대 측은 “몇몇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정작 부처 업무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같은 사안에 대해 2주 간격으로 두 번씩이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하지만 장관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심지어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은 박 대통령의 첫 번째 경고가 있은 후 1주일 만에 보란 듯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총선 출마는 당연하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정치권에서는 이러다 제2의 유승민 사태가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자기정치 하지 말라”고 했던 당시 발언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해당 발언 이후 유 전 원내대표는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겨났다.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박 대통령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총선 출마를 강행할 경우 대대적인 찍어내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박 대통령은 자기 정치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니 장관들이 총선 출마와 관련해 대통령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자기 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찍힐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번에 내년 총선은 꿈도 꾸지 말라며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장관들도 대통령의 의중을 이번에 처음 안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장관들이 당연히 자신과 국가를 위해 희생해줄 것으로 믿었는데 장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들이 내각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현재 정치인 출신 장관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 유일호 국토부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장관 등 5명이나 된다. 내각의 3분의1 가까이가 국회의원 출신 장관이다. 이들이 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내년 1월14일(선거일 90일)까지 장관직을 사퇴해야 한다. 내각의 30%가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나면 국정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희생 해라!
희생 못해!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세월호 사고,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성완종 파문, 메르스 사태,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까지 줄줄이 터져 나온 대형악재들로 집권 3년 차까지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장관에 임명되면 업무파악에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해 최소 2년 이상 재직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떠나고 나면 박근혜정부의 남은 임기 역시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

이미 공무원사회에서는 곧 떠날 장관들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공무원은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시한부장관 밑에서 개혁은 언감생심이다. 장관들도 내년 총선을 의식해야 하는데 표만 깎이는 개혁작업에 힘을 실어주겠나?”라며 “공무원들도 지금 괜히 나섰다가 잘못되면 책임져줄 사람도 없는데 차라리 새로운 장관이 오길 기다리자며 복지부동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내년 총선 포기하면 정계 은퇴 수순
이번만큼은 대통령 시키는 대로 못해


올해만 버티면 바뀔 장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관료들도 느슨해진다. 장관들의 지시가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또 이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박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지긋지긋한 인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특히 장관들의 사퇴 러쉬가 내년 1월14일을 앞두고 집중된다면 가뜩이나 예산안 통과 등으로 바쁜 연말에 장관을 교체하느라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내년 총선 불출마를 염두에 두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을 임명했는데, 대통령과 장관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부족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입장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의 임기는 겨우 2년 정도 남았는데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고 나면 4년 가까이를 정치낭인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4년이나 중앙정치에서 떠나 있은 후 다시 정계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장관들에게는 내년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것은 정계은퇴까지 각오해야 할 중대한 일이다.

게다가 여당은 내년 총선 지역구 후보자를 오픈 프라이머리(※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로 뽑기로 했기 때문에 지역구관리가 매우 중요해졌다. 박 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이 지역구관리에 한눈을 팔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음은 콩밭에
멈춰버린 개혁

지역구관리에 가장 열심인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다. 황 부총리는 현재 세종시에서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지역구인 인천 연수구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거의 매주 세종시에서 인천까지 올라와 지역구에 있는 교회 예배에 참여할 정도라고 한다.

또 박 대통령은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총선을 의식해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정부는 정원 감축을 통해 대학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황 부총리는 지방대 살리기, 유학생 유치 확대 방안, 재외동포 전용 학과 정원 외 개설 등 대학 구조 개혁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의도 어느새 뒷전으로 밀렸다. 사실상 표가 되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황 부총리가 자기정치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황 부총리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황 부총리의 지역구에 거물급 인사들이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 정가에서는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연수구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둥이 아빠로 유명한 탤런트 송일국의 출마설도 들린다. 송일국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인기가 대단해 인천에선 ‘박 대통령이 직접 출마해도 송일국은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황 부총리로서는 벌써부터 지역구관리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 부총리는 지난 15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제2의 유승민 사태 터질까?
대통령-친박 장관 갈등 조마조마

최경환 경제부총리 역시 지역구 행보로 인해 비판을 받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5월 초 이미 “나는 본래 정치인이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경고 이후에는 “일단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며 뉘앙스가 바뀌었지만 총선 불출마 선언만큼은 하지 않고 있다. 최 부총리는 경제 살리기라는 중책을 맡고 있지만 어떤 정책을 내놔도 이제 곧 그만둘 사람인데 약발이 먹힐 리가 없다.

경제정책은 연속성이 가장 중요하다. 장관이 바뀐 후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리면 떠난 장관이 책임져 주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도, 최저임금위원회도 잇달아 파행을 겪는 이면에는 ‘시한부장관’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최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를 맡고 있는 동안에 지역구인 경북 경산·청도에 예산 밀어주기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난해 예산안 심사에서 경산 ‘글로벌 코즈메틱 비즈니스센터’ 건립비용은 보건복지부가 낸 예산안엔 없었으나 기재부가 신규로 10억원 예산을 편성해 국회를 통과했다. 청도 세계코미디 예술제도 예산 심의 때 4억원이 증액됐다. 야권은 ‘초이 예산’이라며 최 부총리를 비판했다.


찍어낼까?
반기들까?

다른 국회의원 출신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특히 유일호, 유기준 장관은 올해 3월에 임명됐는데 내년 1월까지 재직해도 재직 기간이 10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장관 취임 후 부처업무 파악하는 데만 몇 달이 걸렸을 텐데 남은 기간 동안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 해수부장관의 경우는 내년 1월 전에 사퇴한다면 세월호특위 활동의 마무리도 못하고 떠나게 된다.

일각에선 장관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조기 교체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친박 의원들이 총선에서 최대한 많이 살아 돌아와야 후반기 국정 운영이 원활해진다. 빠르면 추석을 전후에 핵심 친박 장관들이 당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어찌됐든 청와대와 장관들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양측이 정면충돌하게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기환 정무수석, 총선 불출마

“대통령 위해 결단 내렸다”

친박 장관들이 총선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현기환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은 총선 불출마를 결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무수석은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친박 용퇴론에 밀려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이후 현 정무수석은 ‘총선 공천헌금 의혹’에 연루돼 당에서 제명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지난 2013년 복당한 현 정무수석은 그동안 자신의 옛 지역구인 부산 사하갑에서 총선 출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박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또 한 번 총선 출마를 포기하고 청와대에 입성하게 됐다. <일>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