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정국 정치권 7인3색 동상이몽

위기일발 박근혜·이병호, 이환위리 안철수·원유철·이종걸, 천재일우 김무성·문재인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국정원 해킹사태’가 점입가경이다. 민간을 대상으로 해킹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됨은 물론, 느닷없이 국정원 직원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정치권은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쁘다. 관계가 얽혀있는 이들의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 큰 7인의 제각각 속내를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국정원 불법 해킹 의혹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다. 지난 13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육군 5163부대가 이탈리아 해킹업체로부터 국내 유력 메신저인 카카오톡 해킹 기술 등을 문의한 내용의 문서가 인터넷에 나돌면서 민간에 대한 사찰 의혹에 휩싸였다. 이후 해킹 소프트웨어 ‘리모트콘트롤시스템(이하 RCS)’을 구입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국가정보원
민간 사찰?

하루가 지난 14일 이병호 국정원장이 RCS구입 및 문의사실을 시인하면서 공론화됐다. 이 원장은 북한의 해킹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량 구매했으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해킹은 일절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을 대상으로 해킹했다면 어떠한 처벌도 받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RCS 불법 구매 및 운영 의혹을 제기하며 지난 15일 안철수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치권의 본격적 움직임이었다.

안 위원장은 진상조사위원회 명칭을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이하 국정위)로 변경하고 국정원에 RCS 사용내역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안 위원장은 “정쟁을 위해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국정원은 로그(RCS 사용기록)를 제출해야 한다. 떳떳하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국정원을 압박했다.


이에 국정원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내며 반박했다. 핵심은 현재 보유한 20대의 해킹장비로는 민간인 사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기밀자료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없애기 위해 야당이 요구한 자료를 공개하고 방문조사도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도 가만있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안 위원장이 보안업체의 대주주라는 점을 들어 국정위 위원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새정치연합을 압박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안 위원장에게 “(국정원 사태를 조사하는 위원회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백지신탁과 주식을 팔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여·야의 단순 공방으로 끝날 것 같던 이번 사태는 그러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뇌관이 터져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박근혜정부
이병호 원장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한 야산에서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마티즈 승용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차량에서는 시신과 함께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돼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하루가 지난 19일 가족의 동의하에 유서가 공개됐다. 유서에는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며 “대테러·대북공작활동 자료를 삭제했다”고 나와 있다. 또한 자신이 오해를 살 만한 자료를 삭제한 것은 ‘실수’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살사건은 국정원 직원의 공동 성명서 발표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성명 발표가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성명에는 임모씨의 자살 책임을 야당과 언론에게 돌리는 듯한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국정원 일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직원이 모두 회람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이 직접 결재해 발표된 것으로 알려져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국정원 바라보는 여의도, 제각각 속내
박근혜정부 위기, 이병호 기름 붓나?

소위 ‘해킹정국’ 속에서 이 원장과 박근혜정부는 위기를 맞게 됐다. 그 중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사상 초유의 국정원 성명 발표를 승인한 이 원장은 자격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 법률전문가들이 이번 성명 발표를 두고 국가공무원법 66조(집단 행위의 금지), 국가정보원법, 국가정보원직원법 등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이 원장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다. RCS 구입과 직원 자살, 국정원 성명 발표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외신까지 관심을 보이며 이번 사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사태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개입 의혹 건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박근혜정부는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9일 국정원 직원 자살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 “2012년 대선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상대 후보에 대해 비밀 온라인 비방 캠페인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국영방송인 BBC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과거 납치와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등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을 언급하면서 대선개입 의혹도 같이 다뤘다. BBC는 더 나아가 최근 원 전 원장이 증거불충분으로 파기환송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위기일발’이 아닐 수 없다.


안·원·이
반등 기회

반면 위기이자 기회를 맞은 사람들이 있다. 국정위 장을 맡고 있는 안 위원장은 물론 새누리당 원유철·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에게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는 ‘이환위리’ 전략이다.

안 위원장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알려진 바대로 국내 최고의 보안전문가인 안 위원장은 19대 국회 입성 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과거 유력 대선주자였음에도 좀처럼 힘을 못 쓰는 모습에 야권 일각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이하 복지위)라는 맞지 않은 옷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안 위원장은 복지위 소속 위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인 바 있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 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가진데 반해 안 위원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등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위기는 기회, 기회는 위기? 안·원·이
하늘이 준 기회, 리더십 다잡아 GO~


해킹정국이 도래하자 안 위원장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7일 안 위원장은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해킹 시연회 및 악성코드 감염검사를 실시해 화제가 됐다. 안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카카오톡 메시지 감시, 스마트폰 카메라를 통한 도촬 등 해킹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점쳤다. 이후 안 위원장은 중앙당에 검사센터를 설치, 일반 국민들의 휴대폰도 검사해 주겠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광폭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안 위원장이 시연회를 하던 날 현안브리핑을 통해 “수권정당임을 자부하는 제1야당이 뜬금없이 국회에서 해킹 시연회까지 하는 것은 국민의 불안감만을 조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여겨진다”며 “새정치연합의 이번 시연회는 의혹 해소를 위한다기보다는 정쟁용 이벤트에 가까운 퍼포먼스에 그쳤다”고 평가절하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역풍을 얘기하기도 한다. 만약 전문분야에서 안 위원장이 확실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의 말처럼 정치적 쇼에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더군다나 ‘해킹’에 ‘인권’ 프레임을 씌운 상황이라 자칫 큰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과연 해킹정국이 안 위원장의 지지율로 이어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원유철·이종걸 원내대표의 협상력 또한 주목받는 대목이다. 그 중 원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로부터 자리를 이어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협상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 내지는 자질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유 전 원내대표가 불명예 사퇴한 이후 당 내에서 원 원내대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이 원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종걸 원내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당내에서 친노-비노 간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이 원내대표가 국정원 사태, 나아가 추경을 유리하게 이끌어 낸다면 자신의 입지뿐만 아니라 향후 친노 및 혁신위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밀리지 않을 수 있다. 이 원내대표는 원 원내대표와의 협상에 있어서 ‘소득세·법인세 정비’ 문구를 이끌어내는 등 수완을 발휘했다. 그러나 해킹정국과 관련해서는 청문회를 두고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김무성·문재인
박근혜 탈출구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해킹정국이 박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게 정치평론가들의 분석이다. 당직 개편으로 수족이 묶였던 김 대표에게는 다시 본인의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전환점이, 문 대표에게는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국정원에 대한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됨은 물론 계파 갈등을 일시적으로나마 잠재울 수 있는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 대표 입장에서는 최근 탈당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해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에게는 이번 해킹정국이 흔들렸던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침묵하는 박근혜, 소리치는 국정원
침묵이 금? 무언의 압박에 국정원 갈팡질팡

국정원 해킹사태가 터진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어 화제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는 반면, 음지에서 움직인다는 국정원은 오히려 전면에 나서 자신을 두둔하고 있다.

임모씨가 자살한 이후 국정원 직원들이 낸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성명서에는 “(숨진 직원은) 본인이 실무자로서 도입한 프로그램이 민간인 사찰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무차별적 매도에 분노하고 있었다”며 임모씨가 극단적 선택을 했던 이유를 나름 분석했다. 또한 “자국의 정보기관을 나쁜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반면 박 대통령 및 청와대는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의 말에 따르면 국정원에 대해 “청와대 의견은 없냐”는 질문을 받으면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만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국정원에게 자체적으로 해결하라고 던지는 무언의 압박”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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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