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깃발 꽂는' 중국자본 대침공 막전막후

‘못 먹어도 고’ 왕서방 전대 열었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중국자본의 한국기업 인수합병(M&A) 작업이 한창이다. 금융산업에서부터 아기용품산업까지 영역을 불문하고 거침없이 사들이고 있다. 숨가쁘게 우리기업을 집어삼키고 있는 중국의 막강한 자본의 힘을 조명했다.
 

 
지난주 중국자본이 금융산업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지난 10일 금융위원회가 안방보험이 동양생명 대주주가 되는 것을 승인한 것. 이제 중국자본이 도전하지 못할 M&A 영역은 없는 셈이다.
 
금융업 최초 개방
이제부터 물밀듯?
 
그동안 국내 업계에서는 중국 금융사가 우리나라 금융사를 인수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중국 금융당국에서 우리금융사의 중국금융사 인수를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상호주의’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안방보험이 우리은행 경영권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을 때 이같은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가 ‘상호주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검토한 결과 국내법과 국제조약상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중국기업의 국내 금융산업 진출에 빗장을 풀었다.
 
안방보험의 동양생명 인수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지난 2월 보고펀드가 보유한 지분과 유안타증권,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의 지분 총 6777만9432주(63.01%)를 인수하기로 계약했다. 매각 가격은 주당 1만6700원으로 총 매각 대금은 1조1319억원이다.
 
이후 안방보험은 지난 3월25일 금융위원회에 동양생명 경영권 인수를 위한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서를 접수했다. 우리 금융당국은 중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안방보험이 최근 3년간 제재 받은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확인하고 심사를 마무리하면서 안방보험의 대주주 자격을 승인했다. 2004년 설립된 안방(安邦)보험은 총 자산 자국내 약 10위권에 포함된 대형 보험사다.
 
안방보험, 동양생명 인수…금융업 처음 진출
‘영역 불문’한국기업 눈독 “M&A 작업 한창” 
 
동양생명의 인수로 자신감을 얻은 안방보험은 우리은행 인수에 다시 한 번 도전할지 눈길이 쏠린다. 안방보험은 지난해 12월 우리은행 경영권 예비입찰 마감에서 유일하게 예비입찰제안서를 제출하며 우리은행 인수에 열을 올렸으나 당시 2곳 이상이 유효경쟁을 해야한다는 조건에 위배돼 인수가 무산된 바 있다.
 
금융당국의 태도도 안방보험의 우리은행 인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자본에 대한 우려에 금융당국이 소극적인 태도로 법리적인 해석을 해왔는데, 이번 동양생명 대주주 변경 승인건으로 중국자본에 대한 제재 근거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주채권자인 정부의 우리은행 매각 의지도 안방보험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매각과 관련해 빠르고 안전하게 그리고, 제값을 받고 파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현재 매각가격에 비해 자산가치가 높지 않아 국내 기업 가운데 적극적으로 입찰 경쟁에 참여할 기업이 마땅히 없는 분위기다. 따라서 국내 은행업계에 진출을 노리는 안방보험의 강한 M&A 의지와 맞물린다면 우리은행도 중국자본에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자본에 대한 우리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는 KDB생명 매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KDB생명은 2013년부터 여러차례 M&A 시장에 나왔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 자본과 가격협상을 진행했지만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유찰됐고, 이후 한 차례 더 매물로 나왔지만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굴욕을 당하며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유아·게임·완구
닥치는 대로 꿀꺽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기조 변화는 KDB생명 채권단에 호재로 작용했다. KDB생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칸서스 컨소시엄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인수의향을 밝혀오면 당연히 진행할 것”이라며 중국자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KDB생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계 기업은 안방보험과 지난해 KDB생명 매각에 관심을 보였던 푸싱그룹 등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유통업계 2위 홈플러스가 M&A 시장에 나오면서 중국자본이 서서히 입질하는 모양새다.
매각가격은 7조∼10조원 수준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6조3000억원에 홈플러스 인수 제안이 있었으나, 홈플러스 측의 거부하면서 매매가 무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업체가 선뜻 인수에 나서기 부담스럽다는 것이 업계의 보편적인 시각이다. 중견기업이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대기업이 나서기에는 독과점 규제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유력 유통업체인 뱅가드가 홈플러스 매각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지난해 테스코의 중국 지분을 사들인 뱅가드가 내친김에 홈플러스까지 매입하면서 국내 유통업계에 진출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예비입찰이 시작돼 중국자본 진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SMIC는 국내 유일 파운드리 업체인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힘을 주고 있다. SMIC는 인수 협상 과정에서 인수자문사를 새로 고용하는 등 동부하이텍 인수전에 집중하고 있다.
 
SMIC는 세계 5위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생산업체다. 이미 포화상태인 생산설비를 확장하기 위해 세계 9위권인 동부하이텍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팬택
동부하이텍…
 

지난해 국내 유아복 1위 업체 아가방컴퍼니는 중국 기업 랑시에 인수됐다. 랑시코리아는 중국 패션 기업 랑시그룹이 한국에 설립한 의류 도소매 전문 자회사다. 모기업인 랑시그룹은 중국 내 60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인 여성복 패션 전문 기업이다. 랑시그룹은 아가방앤컴퍼니를 인수해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 유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랑시그룹 신동일 회장은 “올해 중국의 신생아 수는 약 2000만명으로 한국 신생아 수 40만명의 약 50배다. 최근 1가구 1자녀 정책 완화로 중국의 신생아 수가 연간 3000만명까지 늘 것으로 예상되어 시장 전망이 더욱 밝아졌다. ‘바링허우(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의 한국 유아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와 선호도가 매우 높아, 35년 역사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아가방앤컴퍼니와의 전략적 제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히트 완구 ‘또봇’을 만든 영실업도 중국계 자본에 넘어갔다. 지난달 업계에 따르면 영실업은 지난 20일 홍콩의 사모펀드 퍼시픽아시아그룹(PAG)이 인수하기로 했다. 영실업 최대주주인 헤드랜드캐피털파트너스로부터 2220억원(2억310만달러)에 보유지분 전부를 사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 외에도 뽀로로를 만든 아이코닉스, 라바를 만든 투바앤 등은 중국 기업들의 인수제의를 받으면서 중국자본의 국내 유아 관련 기업의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시장 나온 굵직한 매물들
‘왕서방’ 싹쓸이 가능성도
 
중국자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기업이 파산 위기에 몰린 예도 있다. 중국자본은 M&A 시장에 나온 팬택을 노렸었다. 그러나 팬택은 M&A 협상이 불발로 끝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0월 법정관리 중인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 인수의향서 접수 마감 결과 중국업체를 포함한 복수 업체가 참여했다.
팬택은 앞서 채권단 실사에서 계속기업가치가 3824억원으로, 청산가치 1895억원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당시 팬택 매각에 중국업체가 참여함에 따라 기술유출 논란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형성됐다.
 

되팔고 먹튀?
한국시장 독식?
 
이같은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 중국자본의 팬택 M&A는 불발로 끝났다. 이후 팬택은 M&A 시장에서 외면 받다가 지난달 법정관리를 포기하면서 청산절차에 들어가야 했다. 팬택은 국내외 등록특허 4985건 등 총 1만4573건의 출원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 도난방지 기술이나 지문인식 기능, 지문인식 모바일 결제 서비스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donky@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중국 자본’ 전 세계 활약상
 
중국 자본은 전세계의 기업 인수합병(M&A)에 힘을 쏟으면서 M&A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지난달 말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기업들의 해외(outbound) 기업 인수합병은 36% 급증한 202억 달러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체결된 인수건은 전년 대비 33% 증가한 77건으로 민간 기업이 M&A 건수의 68%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246건의 M&A가 성사돼 전년보다 32% 늘었으며, 그 가치는 모두 550억 달러에 육박했다. 지난해 중국의 M&A는 주로 미국과 유럽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아시아에서는 세번째로 많은 거래가 이뤄졌다.
 
중국기업의 공격적인 M&A는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아래 가능했다. 실제 올해 3월 중국 당국은 중국이 인수합병(M&A) 자금 대출 상환기한을 연장하기로 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M&A를 장려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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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