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뭐가 뭔지∼’ 정신없는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메르스 시국'서 멍∼때리다 골든타임 놓쳤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메르스 사태 원인은 초기 대응 실패다. 안일한 정부의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화살은 보건복지부로 향했다. 수장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화살이 집중포화 됐다. 그런데도 문 장관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매뉴얼’ 탓만 했다. ‘내 탓 아니오’라고 일관하는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형표 장관은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문 장관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과 서울고 27회 문과 동기이기도 하다.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이후 1998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사회복지 행정관으로 일했다. 2002년에는 미국 UC버클리대학의 객원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부적절한 인사
처음부터 논란
 
문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KDI에서 주로 한국의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와 경제 위기에 따른 분배구조의 변화와 시사점, 공적연금의 재정적 고찰 및 개선과제 등을 연구했다. 또 복지지출 수준의 평가와 전망 등 주로 공공경제학을 연구했다. 
 
문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4년 기초연금으로 맺었다. 당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를 맡은 박 대통령이 연금 전문가들로 꾸린 특별 태스크포스에 합류해 주요 멤버로 참여했다. 이 때문에 장관으로 임명됐을 당시 ‘수첩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문 장관은 진 영 전 장관이 전격적으로 사퇴하자 공석이던 자리를 맡았다. 진 전 장관은 청와대가 대선 당시 내세웠던 ‘65세 이상 고령자 모두에게 월 20만원 기초연금 지급’ 약속을 깨고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기초연금안’을 제시하자 “양심에 위배된다”며 사퇴했다. 
 
문 장관은 박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발탁될 때부터 기초연금을 처리하기 위한 구원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수첩인사가 매번 그랬듯이 문 장관도 자질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나설 당시 문 장관의 과거 발언이나 이력이 속속 드러나면서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을 샀다.
 
문 장관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KDI에 재직하면서 부인과 아들의 생일에 법인카드를 사용해 저녁식사를 하는 등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윤 장관이 2008년부터 지난해 최근 5년간 아들 생일과 배우자 생일에 총 8번에 걸쳐 KDI법인카드로 고급 호텔과 일식집 등에서 식사했다며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공개했다. 
 
문 장관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그러자 이 의원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부인과 아들 생일 저녁에 같이 밥 한 끼 안 먹고 계속 남들과 일하면서 먹었다는 소리냐”며 “배우자와 아들 생일이 일 년에 여러 번 있는 것도 아닌데 밥을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문 장관이 2008년부터 지난 5년 간 KDI 재직 시 사용했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분석한 결과 기재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집행 지침을 위반한 사례가 500여건, 7000만원이 넘었다. 개인휴가 때 법인카드를 사용한 건수는 총 5건(54만원)이며 공휴일 및 토·일요일에 사용한 것이 총 70건(609만원), 관외지역 사용이 총 455건(6384만원)이었다.
 
 

이 의원은 “KDI가 있는 종로구, 동대문구 성북구 등 관내 지역을 벗어나 주로 문 후보자의 주거지인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의 식당에서 집중적으로 결재된 건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증거 아니냐”며 추궁했다.
이에 대해 문 장관은 “주말에도 근무하는 날이 많아 회사에 나가 직원들과 식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한 기록은 모두 제출된 것으로 안다. 시간을 주시면 더 파악해서 사후에라도 보고를 드리겠다”며 진땀을 뺐다. 
 
경제학자에 국민 보건을 맡겨놨으니…
메르스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
 
문 장관은 KDI 연구원 시절 공적연금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별적 복지를 강조했다. 기초연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용역보고서를 통해 청와대 안이었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 방식’도 “시기상조”라며 반대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그는 “개인 학자적 입장에서 말하자면 원칙적으로 필요한 분에게 집중적 지원을 하는 제도가 우선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면서도 “재정적 여건이 허락한다면 (보편적 복지) 공약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을 바꿔 소신이나 실력도 없는 인사라며 비판을 받았다. 
 
문 장관은 명실공히 연금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인정받는 경제학자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연금과 복지 분야의 이해가 깊은 것과 달리 보건과 의료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인 문 장관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적합한 인물이 아니라며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전국으로 퍼지고 격리자가 1800여명을 넘어서면서 국민의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정부와 보건당국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아졌다. 문 장관의 책임론 또한 빗발쳤으며 언행불일치로 뭇매를 맞기도 했다. 
 
무능·무책임
사퇴요구 빗발
 
지난 5월29일 문 장관은 직접 주재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회의 모두 발언에서 “개미 한 마리라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자세로 하나하나 철저하게 대응해서 국민이 정부 대응체계를 신뢰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장관의 발언을 지켜보던 관계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물학을 전공한 그는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방역문제에 대해 ‘개미 한 마리’라는 표현은 절대 못 쓴다”며 “매우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한 표현으로 전혀 신뢰가 안 간다”며 지적했다.
 
 

지난 3일 메르스 확진자 중 2명이 사망한 가운데 환자 수는 30명으로 늘어났다. 더욱이 3차 감염자도 나온 상황이라 긴장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 장관은 메르스 관련 지역과 병원의 비공개 원칙을 고수, 국민의 불안감과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문 장관은 태평했다. 그는 “메르스는 밀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어떤 환자가 해당 병원에 있었다고 해서 그 병원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며 병원명 비공개 원칙을 밝혔다. 
 
이 같은 문 장관의 발언은 병원 경영을 위해 주민의 안전을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루머와 일명 ‘찌라시’가 확산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은 그 여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문 장관은 경제학자이고 차관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경제관료에게 복지 행정의 수장을 맡기고 차관조차 보건에 대한 아무런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맡길 정도로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정책을 경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 장관은 이른바 ‘마스크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지난 2일 문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메르스 관련 관계부처 장관회의 결과 및 향후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메르스 마스크에 관한 언급을 했다. 문 장관은 메르스가 공기 중 감염이 아니므로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방문한 환자 등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느냐는 질문에 “마스크 착용하는 것들은 메르스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위생을 위해서 장려한다. 굳이 메르스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기대응 실패…뒤늦게 ‘허둥지둥’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비판 일색
 

네티즌들은 문 장관이 지난달 23일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메르스 확산방지를 위해 카타르 도하발 항공기의 특별 검역상황을 점검할 당시 마스크를 착용한 사진을 거론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누리꾼들은 이번 발언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당 사진들을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공간에 확산시켰다. 네티즌들은 “보여주기식 복장과 발언은 국민의 불안감만 키울 것”이라며 문 장관을 비판했다.
 
문 장관은 지난 8일 메르스 확산 관련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부실 대응에 대해 사과는 했지만, 정부의 ‘실패’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경직된 매뉴얼에 책임을 돌렸다. 청와대 책임 지적에는 답변을 얼버무렸다.
 
문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메르스 관련 긴급현안질문에 출석해 “초동대응에서 좀 더 면밀하게 대응했으면 지금보다 더 빨리 메르스 사태를 종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의원과 정의당 정진후 의원 등이 ‘정부가 실패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묻자 “실패라기보다는 충분치 못했다”고 말했다. 또 “복지부 전체 정책 방향이 실패라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문 장관은 초기 단계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침이 기존에 경직돼 있어 모니터링 망을 짜면서 상당히 협소하게 짰다”고 말했다. 사실상 ‘경직된 매뉴얼(지침)’ 탓을 한 것이다.
 
그는 “메르스 지침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그 지침이 상당히 경직적으로 돼 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메르스라는 질환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았는데 일선 현장에서 담당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마치 딱 맞게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경직적으로 운용하다 보니 상당히 많은 누락이 발생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야당은 문 장관이 매뉴얼 탓도 모자라 책임을 일선 현장의 직원들에게 돌리는 게 아니냐며 비판했다.
 
 
문 장관은 “완벽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매뉴얼대로 해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어서 놓치는 사람(환자)도 있고, 본인들이 감추고 숨기면 찾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던 점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 장관의 발언에 야당은 “왜 실패라는 말을 쓰기를 그렇게 두려워하느냐”며 “1차 유입 방지 실패, 2차 초기대응 실패, 3차 감염자 확산 실패, 실패의 연속이었지 않나”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문 장관은 “실패라는 단어에 집착되기보다는…”이라며 실패에 대한 시인을 주저했다.
 
이랬다 저랬다
말바꾸기 뭇매
 
문 장관은 청와대 책임 부분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정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6월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환자의 기본적인 숫자조차도 잘못 말했다”고 지적하자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확진 환자 숫자를 18명이라고 발표했으나, 불과 몇 시간 뒤에 열린 청와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5명이라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가 정상적으로 이번 사태를 보고받고 파악하고 있는지 여부에 의구심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 장관은 “보고가 잘못된 건가, 청와대에 문제가 있는 건가”라는 정 의원의 추궁에 “거기에 대해서는 과정을 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말씀드리기는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이어 “보고는 제대로 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알고 있다”고 문 장관은 답했다. 이어 “그러면 청와대가 문제 아니냐”는 거듭된 지적에 “잘 모르겠다”고 즉답을 회피했다. 그러면서 “보고한 시간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살펴보겠다”라고 덧붙였다.
 
야당은 문 장관에게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문 장관은 “5월26일 국무회의에서 첫 보고를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공식 회의 이외에 대면보고를 했는지에 대해선 "유선상과 통화로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고 에둘러 답변했다.
 
문 장관은 정부 발표에서 병원 정보가 틀린 데 대해선 “정말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그는 “실수였고 저희 직원들이 24시간 대기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오타가 아니라 명백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정말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이라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병원 명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질병관리본부가 어떻게 메르스를 제대로 관리하겠나”라고 질타했다.
 
이번 사태로 문 장관의 사퇴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야당은 비상사태의 진원지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무개념의 총체적 결과물이라며 문 장관이 말하면 반대로 된다고 해서 ‘문형표의 저주’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며 문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는 ‘펠레의 저주’에서 비롯됐다. 축구선수 펠레가 예측하면 결과는 항상 정반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문 장관이 지금까지 메르스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예측하고 안일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해지자 펠레의 저주는 문형표의 저주로 탈바꿈됐다.   
 
새누리당조차도 문 장관이 사퇴해야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내각에 위기관리를 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며 “리더십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이 친박계 맏형으로서 그 동안 청와대 국정운영을 뒷받침했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이는 문 장관 등의 사퇴를 돌려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태 진정돼도
사퇴 불가피
 
문 장관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쪽은 정치권만이 아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의사들도 문 장관의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모임인 ‘미래를 생각하는 소아청소년과의사 모임’은 최근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없어 메르스 사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라며 문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해당 환자를 진료한 병원과 의료진에게만 물리는 문 장관의 행태에 장관 자격은 이미 바닥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문 장관은 본인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 “사태 조기 안정에 노력하겠다”며 밝힐 뿐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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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