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과 ‘장애인 문화권’을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장애인 문화공간’ 최재호(43) 대표다. 지체장애 3급인 최 대표는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이하 장실센터)에서 사업팀장으로 활동하다가 2003년 7월 ‘장애인문화공간’의 대표라는 날개를 달고 새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전환 시급하다”
그동안 장애인은 경제적 부담감, 부족한 편의시설, 사회 인식 부족, 접근권 및 이동권 등의 문제로 인해 문화예술 활동에 있어 ‘소외계층’이었다.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있어 문화란 어떤 것이며 장애인이 문화예술 활동에서 받고 있는 차별은 무엇일까. 최 대표는 그동안 ‘장애인문화공간’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장애인 문화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았다.
“영화, 연극, 노래, 영상, 이런 것들을 소위 문화 예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장애인이 문화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신체적 조건이 맞아야 하지요. 하지만 대부분 장애인은 신체적 결함에 의해 문화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문화
“장애인에 대한 인식전환 필요”
실제로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문화가 장애인이 중심이기보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진행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문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 대표는 “장애인이 문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늘 관객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 문화활동에 참여하고 또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문화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 장애인은 항상 객이었다. 문화를 포함하여 장애인 운동을 통해 장애인이 객이 아닌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 대표는 무엇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이 중요하다고 거듭 주장한다.
“장애인계의 노력 끝에 장애인에게 가해지고 있는 차별을 법을 통해 금지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나 ‘활동보조인 제도’가 제정된 것과 아울러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전환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비장애인들이 중증장애인들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어 장애인들이 집안에서 집밖으로 바로 문화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와줘야겠지요.”
장애인계의 오랜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지난 7년간의 지루한 싸움 끝에 2007년 3월6일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제정됐고 이 법은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장차법은 총 6장 49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장애인의 고용, 이동, 정보접근, 문화예술 활동, 모 부성권 성, 복지시설, 장애여성 아동, 교육 등에서 발생하게 되는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장애인들이 늘 부르짖던 시설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 수화 등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문화 활동에 있어서도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의 말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그동안 장애인들이 부르짖어 왔던 장애인 차별금지에 대한 뚜껑이 열리게 됐다. 이 뚜껑이 잘 열려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 법이 시행되는 시점인 1년 뒤에 또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최 대표는 말한다.
최 대표는 장차법이 형식적인 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 문화의 손과 발과 입과 귀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정부, 문화 사업자, 장애인 당사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거듭 강조하지만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사고방식이 얼마나 바뀔 수 있느냐의 문제도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장차법이 올해 시행됐다고 사회 전체가 바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눈에 띌 정도의 변화가 생긴다면 장애인 문화를 비롯해 장애인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진보적 장애인문화운동이라는 기치아래 2004년 6월12일 고려대 학생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본격적인 문화운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최 대표는 장애인문화공간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
문화운동의 첫걸음
‘장애인문화공간’
그 동안 최 대표는 장애인문화공간을 통해 장애인인권영화제, 장애인 노래패 ‘시선’의 공연 등을 이끌어내며 장애인 당사자들의 문화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그냥 흘려버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념과 생각들을 붙잡아두고 싶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대표도 처음에는 손떨림 때문에 사진 찍는 것 자체를 두려워 했었다고 한다. “집회나 행사장을 찾았을 때 남들보다 많이 찍어야 괜찮은 사진 몇 장 건지곤 했지만 자꾸 찍다보니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더군요. 아마 많은 장애인들이 저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환경이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아 어떻게 문화를 즐겨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최 대표는 이러한 장애인들에게 다양한 문화환경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모습을 당사자가 직접 카메라에 담아 영상물을 만들고 편집하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보다 자신이 만든 영상에 대한 고민과 통찰을 유도하고 싶다는 것이 최 대표의 소박한 바람이다.
최 대표가 이끄는 장애인문화공간은 장애인문화학교를 개강하여 운영하면서 장애인당사자들의 문화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통로가 되고 있다.
장애인 문화공간은 올해도 6번째 서울 장애인 인권영화제를 지난 4월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개최했다. 여기에는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만든 영화 24편을 상영했다. 하지만 상영작 공모 결과 장애인의 시각에 맞춰 만들어진 영화보다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영화들이 많았다고 한다.
“2003년도에는 사회전반에 장애인문화라는 컨셉이 없었습니다. 대중들도 관심이 없었지요. 그러나 요즘 들어 사진과 영상이라는 문화를 통해 대중들과의 소통과 연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들어 사회전반에 걸쳐 장애인에 관한 소재는 무궁무진해졌다. 하지만 최 대표에게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있다.
“예전에 비해 장애인에 관한 소재가 많아졌지만 아쉬운 것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역시나 ‘착한 장애인’, ‘눈물을 자극하는 내용’, ‘인간승리’ 들로만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도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글을 써 내려가야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아무래도 작가는 제3자의 입장이다 보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표현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6번째 맞은 ‘장애인 인권영화제’
비협조적인 서울시와 재단
최 대표는 특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자신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 갈 줄 아는 공간을 만들면 얼마든지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정책적인 기반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단체들이 대중들과 소통하고 어울리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발표하면 서울시나 재단의 사업담당자들은 이 사업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전에 예산이 들어가면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영리 단체들은 사업이나 예산 받기가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비해 절반 정도도 사업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장애인문화공간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소속되어 같이 연대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인의 몸으로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투쟁하는 최 대표는 정책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재단이 함께 나서서 관심과 배려를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대하는 기본 에티켓 10가지>
1.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용어는 장애인입니다. 불구자나 장애자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것이 옳다.
2. 뇌성마비로 언어장애가 있고 온몸을 흔든다고 지능이 낮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3. 정신지체를 바보 또는 정신박약이라고 놀리고, 나이에 상관없이 반말을 하는데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4. 아침에 시각장애인을 보면 재수가 없다고 피하는데 그런 낡은 사고 방식은 버려야 한다.
5.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를 몇 단어라도 익히자. 간단한 인사를 하면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다.
6. 청각장애인은 알아듣지 못한다고 함부로 말을 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7. 장애인이 지나가면 발길을 멈추고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선을 장애인들은 고통스러워한다.
8. 장애인과 눈길이 부딪히면 먼저 미소를 띄우자. 호감을 갖고 있다는 표시가 되어 마음이 편해진다.
9. 비가 올 때 장애인들은 곤란을 느낀다. 두 손을 목발에 빼앗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산을 받혀 주는 것은 어떨까.
10.택시를 잡으려고 쩔쩔매는 장애인을 만나게 될 때 택시를 잡아 태워주는 친절이 필요하다.
글 구명석·사진 송원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