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때우는' 예비군 훈련장서 무슨 일이…

부실한 훈련 ‘뭐하러 하나’

[일요시사 사회부] 박호민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사격 훈련을 받던 예비군 최모(23)씨가 다른 예비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자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최 씨를 비롯해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따라 예비군 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향토예비군은 1968년 북한에서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김신조 등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사태와 미군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납북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예비군은 실제 울진 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에서 무장간첩들을 제압하며 활약하기도 했다.
 
[실효성 논란]
 
그러나 현재 예비군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각종 문제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예비군의 실효성 논란이다. 사실 예비군 실효성 논란은 연혁이 길다. 예비군 창설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의원)은 예비군 창설 2개월만에 ‘향군법 폐지안’을 제출했다. 이후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예비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예비군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971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당시 신민당 후보가 ‘예비군 폐지’를 주장하며 유력 후보로 떠올라 박정희 정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예비군 훈련 대상자 사이에서도 실효성을 두고 불만이 많다. 실효성에 비해 생업에 지장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 예비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나 일용근로자의 경우, 예비군 훈련을 가면 그날은 보상받기 힘들기 때문에 반발이 거세다.
 

생업에 지장을 크게 받는 예비역의 일부는 아예 훈련을 불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관할경찰서로부터 고발당해 전과자가 된다. 실제 2001년 이후 2012년까지 매년 3만명 이상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하는 등 많은 전과자가 양산됐다. 이 때문에 ‘향토예비군설치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과자를 많이 양산해 내는 법률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충격적인 총기난사 사건 발생…3명 사망
‘기강해이’ 반복되는 사고 “대책이 없다”
 
항토예비군 설치법에 따르면(2015년 현재 기준) 정당한 사유 없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 불참의 ‘정당한 사유’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예비군법 전과자 양산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예비군이 받는 훈련 프로그램도 실효성 논란이 있다. 예비군 훈련 프로그램이 너무 형식적이지 않냐는 것. 예비역들 대다수는 훈련이나 안보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잠을 자는 등 적당히 시간만 때우자는 태도가 많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군 당국도 이를 의식해서 ‘예비군 정예화’를 목표로 예비군 훈련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일례로 올해부터 개선된 향방기본훈련은 원래 8시간으로 오전 9시부터 시작해 오후 5시에 끝나지만 훈련에 성실히 임한 예비역에 한해 조기퇴소를 시키기로 했다. 훈련 참여의식을 높여 예비군 정예화를 이루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훈련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예비역의 훈련의지만 높아진다고 해서 예비군이 정예화 되겠냐는 반론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예비역 1∼4년차가 받는 동원과 5∼6년차가 받는 향방이 훈련기간만 다를 뿐 내용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예비군 정예화의 길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예산 논란]
 
이 같은 논란 속에 예비군과 예비역은 50년 가까이 존속돼 왔지만 정작 처우는 열악하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예비역에게 지급되는 교통비는 5000원이었다. 통상 예비역은 집에서 먼 예비군 훈련장에 가야하는데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지역에 사는 경우 교통비가 5000원을 초과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군 당국이 책정한 교통비가 현실과 맞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부족한 예비군 관련 예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군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 34조원 가운데 예비군 운용비는 1.15%인 1214억원에 불과했다.
 
훈련 과정에서도 예산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예비군 약 290만명 가운데 절반가량은 동원훈련시 6·25전쟁에 사용된 칼빈 소총으로 훈련 받은 경험이 있다. 예산 부적으로 부실한 전투장비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진지구축 작전 및 적의 도발에 대비한 비상훈련 시에도 탄띠와 수통, 소총만 들고 나서거나 아예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영 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간첩을 보내 대테러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는 현역보다는 그 지역에 익숙한 예비군 전력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며 “그런데 현실은 제가 예비군 훈련을 받아봤을 때도 아직도 칼빈 소총을 사용하던데 그나마도 실탄이 안나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가장 시급한 것은 M16소총 정도는 보급하고 개인장구 탄띠 및 탄익대(탄창을 집어넣는 장비) 정도는 줘야하는데 너무 허술하다”고 꼬집었다.
 
민관군병영문화혁신위원회 제2분과장인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뉴스1>과의 통화에서 “첫째는 군내에서 동원병과의 위상이 너무 열악한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의 여건상 미국 수준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예비군 관련 예산이 이게 말이 되느냐”며 “이를 보다 현실화해 예비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도 예비군 처우 문제를 놓고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인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전력 개선은 시급하다”며 “허술한 체계에 대해 국방위에서도 여러차례 지적했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김광진 의원 역시 “예비군 전력은 우선 순위로 예산을 올려야 한다”며 “군 당국 자체에서도 요구가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군 당국자는 한 언론을 통해 “예비군들이 동원훈련이든 하루교육이든 생업을 뒤로하고 참가했을 때는 그에 따른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현재는 1만원 안팎으로 훈련참가비가 주어진다”며 “몇천원 더 올려보려고 해도 국회 국방위 등에서는 협조적이지만 기획재정부 쪽에서 막히는 것 같아 아쉽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전 논란]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비군 안전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난사사건을 일으킨 현역 최 모(23)씨가 과거 관심사병 B급으로 분류된 전력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최 씨는 사격 훈련 과정에서 실탄과 총기를 지급받는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예비군 안전 관리의 허술한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예비군 안전문제를 질타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지난 14일 이와 관련 “안전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군의 당연한 책무”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예비군 운용 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예비군 총기난사 사고에 대해 “이른바 현역 관심 병사들에 대한 관리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비군 관심병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셈”이라며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 곳곳의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는 안타까운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도 예비군 훈련장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예비군 훈련장은 현역병이 아닌 사람들이 총기와 폭발물 등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자칫 사건·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 예비군 사고 중 가장 인명피해 규모가 컸던 것은 1993년 6월 10일 경기도 연천의 포병사격훈련장에서 포 사격 훈련을 하다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다. 당시 155㎜ 고폭탄 장약통 4개에 원인 모를 불이 붙어 옆에 있던 고폭탄 1발과 조명탄 2발이 함께 터졌다.
 
이 사고로 동원예비군 16명과 현역 장병 3명 등 모두 19명이 숨지고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에 대한 책임으로 해당 여단장은 보직해임 되고, 장교 3명이 구속됐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사고 이후 예비군 제도 운영상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해 예비군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예비군훈련 사고는 계속됐다. 바로 이듬해 5월 3일 경기도 미금시(지금의 남양주)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시가지 전투훈련을 받던 대학생이 동료 예비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시가지전투를 하던 예비군들은 모두 공포탄을 지급받았으나 동료 예비군의 소총에는 공포탄과 함께 실탄이 한 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7월에는 대구의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훈련을 하던 대학생이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1999년에도 광주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던 20대 남성이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해 중상을 입었다.
 
[대책 논란]
 
인천에서는 2001년 5월 수류탄 투척 훈련 중 연습용 수류탄이 터져 예비군 1명의 오른손 손가락이 부러졌다. 이 사고는 해당 예비군이 2차 안전핀을 제대로 잡지 않아 일어난 것이지만, 문제의 연습용 수류탄에 규정과 달리 철제 외피가 없어 부상이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4월에는 경기도 양주에서 훈련용 전지 뇌관이 터져 예비군 훈련 참가자 4명이 얼굴과 팔, 다리에 상처를 입는 사고도 있다.
 
<donky@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갑론을박'
 
국방부가 대학생 예비군의 동원훈련 참여를 검토하기로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달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동원훈련에 참여하는 일반 예비군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대학생 예비군도 동원훈련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학 진학률이 1970년대 30%대에서 현재 80% 수준으로 높아져 대학생 예비군 동원훈련 면제는 ‘과도한 혜택’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70년대 400만명에서 최근 290만명으로 감소한 예비군 동원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 대학생 예비군은 현재 55만명 규모다.
 
하지만 대학생 예비군을 동원훈련 대상에 포함시키면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더할 수 있고 대학 학사일정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향후 반발이 거세질 전망이다.
 
대학생 예비군은 1971년부터 학습권 보장 차원에서 동원훈련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예비군은 4년차까지 매년 지정된 부대에서 2박3일간(28∼36시간) 동원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대학생 예비군은 학교 등에서 하루 8시간의 교육으로 동원훈련을 대체하고 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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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