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이완구 ‘63일 천하’ 풀스토리

빈대 한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웠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63일 천하’로 끝났다. 이완구 전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총리 임명 과정 그는 언론 외압 의혹이 불거지면서 갖은 비난을 듣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손짓으로 어렵게 총리가 됐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칼이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 전 총리는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중 가장 빨리 단명한 총리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게 됐다. 

 
이완구 전 총리는 1950년생으로 충청남도 청양 출신이다. 1966년 대전중학교를, 1970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1974년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홍성군청 및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맡아 공직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1981년부터 경찰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31세의 나이로 최연소 홍성경찰서 서장을 역임한다. 뿐만 아니라 40대 초반 최연소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며 각종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대통령 지지로
총대 메고 앞장
 
그의 본격적인 정치 인생은 1995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 청양 홍성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6년 그해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이 전 총리는 충남지역에 출마했다.  
 

한때 이 전 총리는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을 들었다. 충남지역에서 신한국당 의원으로 당선된 후 그는 1997년 김종필 전 총리가 있는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원내총무와 대변인을 역임한다. 그 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이적한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 자금을 받아왔을까. 곧 ‘2억원 이적료 파문’이 불거졌다. 당시 이 전 총리가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지원금 명목으로 2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된다. 의혹이 확산되자 17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다. 그는 2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지만 2007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UCLA대학 교환교수로 활동한다.
 
국내로 돌아온 이 전 총리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충남도지사에 당선된다. 그는 3년 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벌인다. 그는 세종시 원안 통과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지사직을 사퇴한다. 당시 자신과 뜻을 함께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교류를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 배경으로 이 전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총리직으로 부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도지사직을 사퇴한 이 전 총리는 2009년 다발성골수종이라는 혈액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2013년 그는 암을 이겨내고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복귀한다. 당시 이 전 총리는 JP(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 이은 충청권의 대표 주자라는 위상을 얻는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다. 이 전 총리는 15·16·19대에 당선된 3선 국회의원이며 충남지사는 물론 도지사를 역임해 ‘충청권의 맹주’로 불리며 충청권 출신으로 첫 원내대표가 됐다. 
 
어렵게 청문회 통과…의욕적으로 집무
부정부패 척결 공직사회 개혁 선봉장
 

이 전 총리가 원내대표가 된 후 최전선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의 여야 협상을 했다. 당시 국회에서는 이 전 총리가 산적한 현안들을 무난히 처리했다고 평가한다. 이어 올해 1월23일 박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국무총리직에 내정했다. 당시 그가 국무총리직에 내정됐을 때 많은 이들은 무난하게 해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잔혹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으로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원활한 원내대표직 수행으로 여당은 물론 야당의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그의 치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다. 이 전 총리의 장인·장모, 처남 등은 2001년 경기 성남 대장동 일대의 땅을 샀다. 장인·장모가 구입한 땅은 2002년 이 전 총리의 부인에게 2011년에는 다시 이 전 총리의 차남에게 증여됐다. 이후 땅 값이 크게 올랐다.
 
야당은 “이완구 의원이 당시 재경위에서 활동했던 경제통이었다는 점에서 고위공직자로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리인을 내세워 땅 투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아파트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그는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주상복합 아파트인 타워팰리스 매매 과정에서 시세 차익 신고를 누락했고, 장인의 경기도 분당 땅 매입 당시에도 이 전 총리가 관여한 의혹이 제기됐다. 
 
까도 까도…
‘양파 총리’
 
병역면제 의혹도 나왔다. 그는 3차례의 징병 신체검사를 거쳐 1년짜리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이 전 총리는 ‘부주상골’을 사유로 보충역 소집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무청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애초 설명과 달리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홍성군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75년 6월 현역으로 육군에 입영한 것도 알려졌다. 그러나 입영 뒤 재검 대상으로 분류돼 귀향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입대를 하면서 홍성군청에 휴직 신청도 하지 않았다. 야당은 이에 대해 “마치 자신이 입대 뒤 돌아올 것을 예견이나 한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에서 근무했다. 당시 국보위는 ‘불량배 소탕계획’을 입안해 계엄사령부가 약 4만여명을 삼청교육대에 수용하면서,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 총리는 이에 대해 “국보위 자체가 국민들에게 많은 걱정을 끼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좀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수많은 의혹으로 이 전 총리를 두고 ‘의혹 종합 세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는 이 의혹들을 언론사 외압 발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인사청문회 과정 언론을 통해 이 전 총리가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된 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전 총리는 당시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빨리 시간 없어”라며 “(일부 언론사 간부가)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하더라. 내가 보니까 빼더라”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언론사 간부들과 친분을 통해 자신의 의혹과 관련된 내용이 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그는 “윗사람들하고 다 내가 말은 안 꺼냈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돼, 해 안 해? 야 김 부장, 걔 안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과정 여야는 이 전 총리의 언론 외압 논란을 빚은 녹음파일 공개 여부로 인사청문회가 두 차례 정회하는 등 파행까지 했다. 여당은 이 전 총리에게 녹취록의 일부인 “‘언론인들 내가 대학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줬다’라고 말한 기억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전 총리는 “전혀 그런 말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확인을 위해 틀어주면 좋겠다”고 까지 말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은 그날 오후 녹음파일을 일부 공개했다. 이 녹음파일에는 이 전 총리가 언론사 간부에게 외압을 가해 보도를 막았다는 내용를 포함해 “(기자를)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라는 문제성 발언 등이 들어 있었다. 
 
이 전 총리는 “다급한 마음에 말한 것이므로 용서해 달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반어법으로 얘기한 것이다. 이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뒤늦게 말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어 “녹음파일 보도 이후 수일째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여서 정신이 혼미하고 기억이 정확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 파행 이후 회의장에 입장하다가 비틀거렸고, 자리에 앉아 컵에 물을 따를 때 손을 떨기도 했다. 
 
의혹 종합세트 
거짓말로 자멸 
 
이 전 총리는 “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나 공직 후보자로서 경솔했을 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불편함을 드린데 대해 죄송하다”며 “대오각성하는 마음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보다 더 진중한 몸가짐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정중히 구하고자 한다”고 사과했다.
 
지난 1월23일 그는 청문회 과정에서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지만 제43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취임장을 손에 쥐자마자 ‘책임총리’를 공언했다. 이 전 총리가 국무총리 지명 직후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며 무너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국민·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너진 공직기강을 철저하게 점검해 대비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 3월12일 이 전 총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하겠다”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고질적인 적폐와 비리를 조사하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믿고 밀어준 국민들이 바보”
역대 가장 단명한 총리 굴욕
 
그는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공직사회 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서며 한달만에 ‘개혁 총리’라는 이미지로 순항했다. 특히 ‘MB 자원외교’도 예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여론의 긍정적인 반응도 이끌었다. 공직 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그의 국정운영에 거는 기대가 컸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부처 간 업무 조정 능력을 발휘해 박근혜정부 집권 3년 차의 성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부패척결 대상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해외자원개발사업 관련 비리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아오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기 전 남긴 메모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며 부정부패의 당사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성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허태열·김기춘 등 친박 핵심 인물들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와 이 전 총리의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금품수수 의혹이 일자 이 전 총리는 “성 회장을 알기는 하지만 친한 사이가 아니다”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성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2013년 4월4일 오후 4시30분 이완구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3000만원을 비타500 박스에 담아 현금으로 주고 왔다”는 구체적인 폭로와 추가 증언이 곧이어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그는 이어 곧바로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본인의 발언에 대해 “인간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격정적으로 말을 하다가 나온 말로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처음에는 성 회장과 친한 사이도 아니며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지만 1년간 200회가 넘는 통화를 한 사실까지 확인되는 등 이 전 총리의 기존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전 총리에게 ‘거짓말 답변’ 논란에 대해 추궁했다. 이 전 총리는 “거짓말한 적 없다. 표현상의 차이나 기억의 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 속에서 줄기가 변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일관된 거짓해명으로 논란은 더해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그가 현직 총리 신분으로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야당에선 총리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것은 무리라며 총리 해임건의안을 추진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여론을 인식한 듯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되는 등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의혹만으론 물러날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나 지난 16일 박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에 앞서 가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에서 사실상 자진사퇴를 권고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이 전 총리가 큰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전 총리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여권 핵심 지도부는 20일 비공개회의에서 이 전 총리 거취 문제를 박 대통령 귀국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데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대대적 사정
부메랑으로
 
이 전 총리는 지난 20일 늦은 밤 박 대통령에게 총리직 사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전날까지 중남미 순방을 떠난 박 대통령을 대행해 국정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지만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역대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던 총리는 윤보선 대통령 시절 65일간 역임했던 제6대 허 정 총리다. 20일로 취임 63일째를 맞는 이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사의수용 시점에 따라 헌정 사상 최단기 총리로 기록될 수 있지만, 박 대통령은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27일 이후 사의 수용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