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에서 하면 우리도 한다”
미국의 인기드라마 ‘섹스앤더시티’나 ‘프렌즈’를 보면 종종 나오는 장면이 있다. 가족과 친구들끼리 모여 임신이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장면이다. 이들 파티는 베이비샤워, 브라이덜샤워라는 이름의 파티.
여기에서 샤워란 소나기가 오듯 축하의 말과 선물이 쏟아진다는 뜻으로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기용품이나 결혼용품 등을 선물하는 미국의 문화다.
이 문화는 ‘미드열풍’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이 같은 미국문화가 최근 젊은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파티의 규모나 파티에 들어가는 금액은 미국과 차이가 있다. 보다 호화롭고 보다 화려한 파티를 열고 있는 것.
장소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보통 가정집에서 파티를 여는 반면 우리는 호텔이나 값비싼 레스토랑 등을 빌려 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 8개월에 접어든 이모(29·여)씨도 지난달 한 서울의 호텔에서 베이비샤워를 열었다. 친구와 지인 등 30여명을 초대한 이날 파티에서 이씨가 쓴 돈은 무려 6백여만 원. 값비싼 코스요리와 유명한 행사진행요원, 그리고 일부 손님에게는 호텔객실까지 제공한 댓가였다.
이씨는 “하룻밤 행사비로 저렴하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아이를 또 가질 계획이 없는데다 태어날 아기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파티를 계획했다”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젊은 여성들 가운데는 ‘아이는 한명만 낳아 잘 기르자’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 보다 화려한 베이비샤워가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일생에 단 한번 여는 파티인데 돈 아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돈잔치다.
결혼하기 전 신부의 친구들끼리 모여 여는 브라이덜 샤워 역시 호화롭게 열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일부 부유층에서의 이야기다.
지난 5월 결혼한 정모(30·여)씨도 결혼 전 화려한 브라이덜 샤워를 열었다. 정씨는 신용카드까지 긁어가며 친구들과 호화판 처녀파티를 열었다. 먼저 정씨는 파티의상에 수백만원의 돈을 썼다. 유부녀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사는 파티복이란 생각에 명품브랜드의 값비싼 파티복을 장만한 것.
그리고 서울의 한 호텔에 친구들을 초대해 수십만원에 달하는 식사와 비싼 프랑스와인을 대접하며 자신의 결혼을 자축했다. 또 호텔에서 가장 비싼 스위트룸을 빌려 친구들과 화려한 하룻밤을 보냈다.
정씨는 “아직도 결혼 전 쓴 카드빚을 갚고 있지만 한번뿐인 처녀파티라고 생각하면 그리 아깝지는 않다”며 “오래 전부터 미국드라마에서 브라이덜 샤워를 보며 나도 결혼 전에 꼭 해보리라 다짐을 해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젊은층 사이에서 아낌없이 파티에 돈을 쓰자 호텔 등도 앞 다퉈 베이비샤워와 브라이덜 샤워와 관련된 패키지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젊은층에서 미국 각종 파티문화 고급스럽게 변형
호텔 등 값비싼 장소 빌려 호화 돈잔치 벌이기도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출산용품과 파티음식, 산모 프로필 촬영권, 손님이 묵을 객실 등을 제공하는 50만원에 달하는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산모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엄마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하루’라는 이름의 패키지를 선보였다. 이 상품은 임산부에게 호화로운 하룻밤을 제공하는 것으로 파티는 아니지만 임산부를 겨냥한 상품이다.
브라이덜 샤워 상품도 속속 생기고 있다. 한 호텔에서 마련한 ‘브라이덜 샤워 패키지’는 각종 명품 선물들까지 덤으로 주며 예비신부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또 다른 호텔에서는 고급와인과 다음날 조식까지 제공하는 패키지를 만들었다. 호텔관계자는 “꾸준히 이용고객이 늘어나 또 다른 상품을 기획중이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건너온 문화는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사치스런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미국문화가 변질되어 건너온 것은 지금은 어느 정도 대중화된 ‘할로윈파티’도 마찬가지다. 이는 주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에서 열려 조금씩 확산이 된 파티다.
이를 두고 무분별하게 서양의 문화를 들여와 아이들에게 주입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새나오기도 했다. 단순히 재미있는 파티로 즐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할로윈데이의 의미도 모른 채 무조건적으로 미국문화를 모방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미국드라마열풍이 불면서 미국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미국인들의 생활 속 전통들이 속속 노출되면서 그들의 문화를 모방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일부 부유층들이 사치스런 문화로 변모시켜 국적불명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