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르포> 난교클럽에선 무슨 일이…

평일엔 스와핑, 주말엔 집단성교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늦은 밤, 술집이 즐비한 번화가를 걷다보면 간혹 ‘Membership Club’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호기심이 발동해 업소로 입장할라치면 굳게 닫혀 있거나 사장으로부터 출입을 제지당하곤 한다. 말 그대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업소이므로 누구에게나 출입을 허용하지는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멤버십 클럽은 성 소수자들을 상대로 운영되는 게이바로 알려져 있으나 독특한 성적 취향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한 멤버십 클럽에서 부부, 커플, 싱글들이 독특한 성 교류 모임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가 직접 방문해봤다.

  
부부, 커플, 싱글들의 독특한 성 교류 모임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해당 모임의 인터넷 카페 가입이었다. 이미 1만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이 카페의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카페가 요구하는 질문에 답해야만 했다. 가장 먼저 물어본 질문은 부부인지, 커플인지였다. 싱글이라고 적은 후 기자의 신체 사이즈와 나이, 그리고 직업, 성격, 가입경로에 대해 대답했다.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댓글 5, 게시글 1, 방문 2회 이상을 이수해야 했다. 일주일이 넘도록 정회원은 승낙되지 않아 대부분의 게시글 확인이 불가했다. 게시글의 제목만 보며 추적한 끝에 그들만의 모임 장소인 한 클럽의 이름을 알아냈다. 인터넷포털사이트인 다음과 네이버에 그 클럽을 검색해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글을 검색해 보니 클럽 관련 글 몇 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클럽 사장의 연락처를 알아낸 후 지난 23일 클럽 방문 예약을 문의했다. “매일 저녁 9시에 오픈하지만 금일은 예약 팀이 없으므로 내일 방문하시길 권한다는 운영자의 답장을 받을 수 있었다.
 
맘놓고 프리타임
주말마다 북새통
 

24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1팀에 전화를 걸었다. 클럽 방문 전에 법적 처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성매매업소가 아니고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가 이뤄지는 업소이다보니 어떠한 법적 근거로도 처벌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날 밤 1030분 경기도 부천의 석촌로 184번길을 찾았다. 사장에게 전화를 걸자 한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카페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을 만큼 철통보안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사장이 기자를 마중 나왔다. 안내를 받고 클럽으로 들어섰지만 어두운 조명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입구 통로에는 1m 높이의 행거에 수많은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 옷들은 대부분 야동에서나 볼법한 세일러교복, 가죽의상 등의 코스프레 의상이었으며, 벽면 가득 멋스러운 마스크도 걸려 있었다. 기자의 신분을 속이고 방문했기에 홈바에 자리를 잡은 후 사장과 마주했다. 카운터에서는 클럽 외부에 설치된 4개의 CCTV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저한 멤버십 클럽 운영을 위해 설치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사전 방문 예약 없이는 그 어떤 손님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사장은 클럽 방문 경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카페 가입 후 호기심이 발동해 오게 됐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사장은 미소를 보이며 상냥한 말투로 기자를 상대했다. 사장은 회원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기자의 회원 자격을 우수회원으로 변경해줬다.
 
중앙에 대형 침대…뒤엉켜 그룹섹스
커플 바꿔 관계…파트너 빌려주기도
 
은은한 조명만이 간신히 클럽을 비추고 있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클럽 양 벽면으로 테이블이 5개씩 총 10개의 테이블이 있었으며, 클럽의 정중앙에는 대형 침대가 놓여 있었다. 족히 20명은 누울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빨간색 가죽침대였다. 홈바 우측편 복층과 테이블 끝 부분에도 침대가 2개씩 놓여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 인테리어용 침대는 아니었다.
 
사장은 휴대전화를 꺼내어 외국인들이 한 공간에서 그룹성교를 갖는 사진을 보여줬다. 주말이면 이 사진 속 장면이 클럽에서 재현된다고 설명해줬다. 평일에는 소수의 팀들만이 클럽을 방문하므로 주로 부부나 커플 간 상대를 바꾸어 관계를 갖거나 남자 측에서 싱글 남성에게 아내 또는 여자 친구와의 교감을 허락해주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했다.
 

사장은 기자가 혼자 찾아왔다는 점을 고려해 싱글 남성과 싱글 여성 간의 관계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로 평일에는 3~4, 주말에는 15~20팀이 클럽을 방문하며, 방문 팀의 예약 현황은 카페 또는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팀은 부부나 커플이 80%, 싱글이 20%를 차지하며 주 고객층은 3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이라고 했다. 20대 커플과 50대 부부는 각 25% 정도씩 차지한다고 했다. 메뉴판을 살펴보자 가장 저렴한 메뉴는 1인 기준 맥주 10병과 과일안주 세트가 20만원이었으며 12년산 양주 가격은 27만원이었다.
 
찾는 부부 많아
자유로운 성관계
 
클럽에는 기자 외에도 6명의 손님이 한 테이블에 앉아 옹기종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30대 초반 커플이 한 팀이었으며 나머지 두 팀은 40대 부부인 것으로 보였다. 음악 소리에 그들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으나 농도 짙은 대화 내용을 포함한 일상 이야기들이었던 것 같다. 사장은 세 팀의 부부, 커플인데 다들 처음 보는 사이라고 설명해줬다.

 
부부 관계가 소원해진 부부의 출입이 잦다고 한다. 특히 남편의 경우 평소 부인의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뭇 남성들로부터 환대받는 부인을 보면 질투심을 느껴 애정이 더욱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사장은 클럽 방문 이후 관계를 회복한 부부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젊은 커플들은 개방된 성 문화로 인해 자유롭게 상대방을 바꿔 관계를 가짐으로써 지루해진 커플 간의 관계에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단다. 사생활을 억압하는 연인 관계에 대한 회의감에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싱글들 사이에서는 자유로운 성 관계가 가능하므로 인기란다. 불법 성매매 업소 출입으로 성병 위험 노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싱글 남성도 있단다.
 
‘철통보안’ 회원제 멤버십 클럽
독특한 성적 취향 사람들 모여
 
단골손님에 대해 묻자 사장은 자동차딜러로 일하는 31세 미혼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작은 키에 통통한 체형이며 못생긴 얼굴의 소유자라고 했지만 서글서글한 성품과 애무 기술이 좋아 손님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라고 했다. 연회비 400만원을 지불한 그는 매주 술값 부담 없이 마음 놓고 와서 술을 마시며 부부나 커플의 여성을 탐한다고 한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 27세의 여성은 연예인 못지않은 빼어난 외모와 몸매로 남성 손님으로부터 최고의 인기를 누리나 부인 또는 여자 친구들의 시샘 또한 이기기 힘들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방문 예약 시 싱글 남성 5명 이상을 확보해 놓으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으며 싱글 남성 모두와 함께 교감을 나눈다고 한다.
 
30세의 한 남성은 관음증환자로 이성과의 교감은 피하며 성교를 지켜보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그는 야맹증이라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 12시에 진행되는 프리타임(성교타임)에 가장 난감해 한다고 한다. 프리타임에는 최소한의 조명만 켜놓은 채 손님들간의 자유로운 성관계를 유도한단다.
 
클럽은 손님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쌔끈 데이가 운영되는데 말 그대로 정말 화끈하게 놀아야만 한다. 매달 진행되는 고정 이벤트로는 란제리코스듐 파티가 있으며 맘에 드는 사람을 지명해 함께 노는 초이스 미팅, 초보를 위한 초보데이, 무료로 마사지를 제공하는 마사지 이벤트, 패티쉬 파티도 진행한다.
 

원활한 클럽 운영을 위한 몇 가지 금지사항도 있다. 첫째 절대 상대 배우자의 허락 없이는 이성을 탐해서는 안 되며, 둘째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에서 질투심으로 인해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셋째 신상 유출이 염려되므로 사진 촬영을 금하며, 넷째 아무리 친하다고 해서 실명을 거론해선 안 되며 닉네임으로 호칭을 대신한다. 마지막으로 여성 손님에게는 일체 술값을 요구하지 않으며 성매매업소가 아니므로 상대에게 돈을 지불해서는 안 된다.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는 세 부부들은 번갈아가며 홈바 쪽으로 다가와 기자를 살폈다. 이는 낯선 이와의 관계를 위한 하나의 탐색전으로 보였다. 새벽 1시 무렵, 테이블에 앉아 있던 40대 여성이 잘생겼다며 친근감 있는 말투로 기자에게 말을 걸어왔다. 순간 당황해 얼굴이 화끈거리게 달아올랐고 대충 감사를 표했다. 여성은 사장에게 귓속말을 한 후 자리로 돌아갔다.
 
저 테이블의 다른 여성이 손님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데 어떠세요? 이 시간쯤 되면 보통 관계가 이뤄지거든요.” 사장이 기자에게 말했다.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생각을 해보겠다며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대형 침대를 지나다 테이블에서 입맞춤을 하는 한 커플을 목격했으며 여성들의 매서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일반 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샤워시설이 눈에 띄었다.
 
나홀로족도 출입
싱글은 즉석교감
 
언제쯤 볼 수 있어요?” 사장에게 물었다. 이내 사장은 초보 부부 두 팀이나 방문해 관계 관전은 불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했다. 사장이 기자에게 호감을 표시한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재차 묻자 거절 의사를 밝혔고 사장은 더 이상의 요구는 하지 않았다. 이렇듯 상대 이성과의 관계에 있어 강요는 없으며, 반드시 합의하에 이뤄진다는 점도 강조했다.
 

새벽 130분이 돼서야 클럽을 빠져나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박스를 줍고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취재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기자도 남자인지라 호기심이 많았던 터,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기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모습은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되레 우리 사회의 추악하게 변해버린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evernur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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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