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민원 급증 속사정

“섹스동영상 삭제해 주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애인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유출됐다며 ‘야동(음란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보통 ‘XX녀’란 이름으로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다 뒤늦게 화면 속 여성이나 그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해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삭제된 야동은 지난해 무려 14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 개방 풍조 확산과 디지털기기 관리 미숙으로 인해 벌어지는 풍경이다.

  
‘일반인’ ‘XX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성관계 동영상은 대부분 커플들이 셀카로 찍은 것들이다.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보관을 목적으로 동의를 얻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4일 나왔다. 상대 동의하에 촬영했고 외부로 유포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생활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보복성 유출
혹은 실수
 
그렇다면 동영상 속 커플이 헤어진 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 촬영 시점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유포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공개하면 가중처벌이다. 연인시절에 동영상 한번 잘못 찍었다가 자신의 알몸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해 “내가 나오는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달라”는 민원이 1404건이었다. 하루 약 4명 꼴로 ‘야동 민원’을 넣었다. 동영상 속 주인공들은 영상이 유포된 사실조차 몰랐거나,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이 같은 민원은 한 해 수천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야동 유출에 따른 고민을 토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직장인 여성 A씨는 3년 전 소개팅을 통해 남성 B씨를 만났다. A씨는 잘생긴 외모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주말 데이트의 종착점은 언제나 모텔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B씨는 A씨에게 ‘섹스 모니터링’을 제안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성관계 모습을 촬영해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A씨는 정색을 하며 거부했다. 그러나 B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A씨와 B씨는 스마트폰을 삼각대로 고정시킨 채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지 않아 이별을 맞이했다.
 
문제는 헤어지고 3년 뒤에 터졌다. A씨는 단짝 이성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야동을 검색하던 중 A씨로 의심되는 야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즉시 그 야동을 재생했고 동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됐다. A씨는 ‘멘붕’에 빠졌다. 야동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유출된 상태였다. A씨는 B씨의 휴대폰 번호를 급하게 찾았지만 알 수 없었다.
 
신고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남자친구가 알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컸다. A씨의 야동은 여전히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루 3.8건 요청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의 유출은 최근 증가 추세다. 방심위에 따르면 ‘본인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2013년에는 1166건이 제기됐다. 2013년과 2014년 1년 사이 20%가 증가했다. 방심위에 제기되는 개인 초상권 침해 관련 전체 시정요구 중에서 이런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2013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가 1964건 접수돼, 본인 성관계 동영상(1166건)의 비중이 59%였다. 2014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 1679건 가운데 개인 성행위 영상이 1404건으로 83%를 차지했다.
 

유출된 동영상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다. 유포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별한 뒤 보복성으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주요 유출 경로다. 이들에 의해 유포된 동영상의 제목은 보통 피해 여성의 특징을 짧게 묘사한 ‘XX녀’ 혹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XX대학교 12학번XX녀’ 등이다.
 
 
방심위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영상 유출이나 삭제 민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을 찍으려면 전용 촬영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져서 무선 인터넷 속도도 점점 빨라져 신속한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영상을 찍는 것도 쉽지만 그만큼 유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SNS에 퍼져
지인들 볼까 두려워…고민하다 고해성사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인터넷으로 받는다.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곳의 인터넷 주소(URL)는 필수 입력 사항이다. 피해자 본인이 삭제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민원이 제기되면 방심위에서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차단 조치한다. 영상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우 해당 게시판 운영자나 포털사이트 등에 요청해 삭제한다.
 
해외로 퍼져나가면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망 사업자(SKT·KT·LG유플러스)에 요청해 국내에서 해당 정보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보가 무한 복제되는 인터넷 특성상 영상이 한번 유포되면 사실상 100% 차단 및 삭제는 어렵다.
 
방심위 관계자는 “좋은 감정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유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유출에 조심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 찍지 않은 게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개인 성관계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할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방심위는 개인 성관계 동영상 민원이 제기되면 삭제 조치와 함께 민원인에게 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나온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해외 음란사이트로 퍼지는 순간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출된 성관계 동영상을 지우는 대행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성관계 동영상 유출본 상당수는 보복성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기기 분실로 인한 유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마트폰, 컴퓨터 수리기사 등이 기기를 다루면서 고객 신상정보와 고객의 기기 속 영상을 합쳐 유포한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전 남친 섹스동영상
현 남친 볼까 두려워
 
과거에는 ‘일반인’을 검색하면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출한 ‘몰카’ 야동 일색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상 속 자막 또는 파일 이름에 개인 신상정보가 들어 있는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 천지다. ‘일반인’ ‘XX녀’ 등 자연스러운 야동이 인기다. 그런데 야동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양 XX동 XXX’ ‘광주 XX여상 3학년 XXX’ 등 구체적인 주소나 소속, 이름 등이 적혀 있는 영상과 전혀 상관없는 신상정보를 담은 야동들이 나돌고 있는 것은 ‘생생함’을 추구하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 이름을 빌려와 영상 제목을 지어 호기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본다. 
 
이 같은 행위는 영상 속 인물과 신상정보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된다. 최근 들어 S넷 B닷컴 등 음란물 사이트 또는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일본AV(Adult Video) 등 연출 제작된 야동보다는 ‘실제상황’을 다룬 몰카 및 셀카 음란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온다. 일반인 야동에 불을 지핀 건 과거 ‘가수 백양’ ‘탤런트 오양’ 등 연예인들의 음란물 영향이 컸다. 
  
문제는 이 같은 야동 유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법한 ‘선배녀’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선배녀로 불리는 동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야동이 수년 간 인터넷을 떠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자살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색하면 ‘XX녀’시리즈 넘쳐
삭제 안 돼…수치심에 자살 결심
 
‘딱풀녀’라는 이름의 야동도 마찬가지다. 인천 모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이모양은 자신의 얼굴이 나온 야동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학교 인근 아파트 28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의실녀’라는 이름의 야동 속 여성도 자살했다는 글들이 나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모 대기업에서 계약직 비서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루머지만 ‘XX녀’ 자살설은 여전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모텔 몰카도 여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텔에 미리 투숙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원격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당사자를 협박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모텔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조종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고 협박한 혐의로 30대 이모씨를 구속했다.

몰카 촬영하고
금품 협박까지

이씨는 지난 2월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 미리 투숙한 후 객실 내 화장대 아래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신의 집에서 원격조종하는 방식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28일 첫 번째 동영상에 찍힌 투숙객의 신원을 알아내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돈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영상 촬영 사실과 협박 등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게 요구한 돈의 액수나 연락처를 알아낸 방법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전자기기에 해당 영상 말고도 여러 건의 영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의 영장실질검사를 담당한 서울 동부지법 양재호 판사는 “이씨가 자료를 삭제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디지털 유산 상속 논란
죽어도 그대로 ‘어찌하리오’
 
페이스북이 구글에 이어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을 내놨다. 사망한 사용자의 계정을 지정된 사람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이용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열람만 가능했다.
페이스북은 제도 도입 배경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에 의해 이를 상속받은 이용자는 고인 계정에 접속,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추모에 관한 알림 글 등을 개제할 수 있게 된다. 단 고인의 프로필에는 ‘추모(Remembering)’라는 머릿글을 달아 악용을 방지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사용자와 상속자 간 소통을 가능케 했다.
 
다만 고인의 개인적 메시지와 같은 개인 정보는 상속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생전에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경우 사망 후 계정이 폐쇄되도록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구글은 ‘휴면계정관리자’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 계정에 대해 만일 사태에 대비해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의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미리 보내도록 설정할 수 있게 한 기능이다. 이용자는 휴면 계정이 되기 위한 미접속일을 미리 설정하고 데이터를 보낼 지인을 10명까지 지정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잊혀질 권리’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자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디지털 상속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에서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어 디지털 자산을 상속자에게 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주요 포탈 업체들은 이용자 사망 시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계정 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속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도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 사망자의 공개된 게시물에 대한 백업 정도를 지원하고 민법상 재산권으로 보장되는 사이버머니나 뮤직, 전자책 등 웹콘텐츠 사용권만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계정을 해제하거나 탈퇴하려면 별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사망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규정 마련 여부는 검토단계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16년까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화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도 지난해 5월이 돼서야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 디지털 유산 관련 소송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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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