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측근 잡을' 특별감찰관 타깃 막전막후

대통령 드디어 '워치독' 풀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비선실세' 파문이 여전하다. 아직 다수 국민은 대통령을 둘러싼 '측근 전횡'이 있다고 믿고 있다. 지난 3일 국회는 2년을 미뤄온 특별감찰관 최종 후보군을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박근혜정부의 대선 공약인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측근 비리 감시가 주된 목적이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특별감찰관. 과연 그는 국민을 위한 '워치독(감시견)'이 될 수 있을까.

'현대판 암행어사'로 불리는 특별감찰관이 베일을 벗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국회가 추천한 후보자들 가운데 이석수 변호사(52·사법연수원 18기)를 특별감찰관으로 지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이 같은 뜻을 밝혔다.

후보자 3인 중
여당 추천 낙점

앞서 국회는 지난 3일 본회의를 열고 이석수·이광수·임수빈 변호사를 초대 특별감찰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석수 특별감찰관 후보자는 검사 출신으로 대검찰청 감찰1·2과장과 춘천·전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여당 추천으로 박 대통령의 선택을 받았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이광수 변호사(54·사법연수원 17기)와 야당이 추천한 임수빈 변호사(54·사법연수원 19기)는 외면당했다. 이 가운데 임 변호사는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검사일 당시 '광우병 사태'와 관련해 MBC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눈 밖에 났다. 현 정권이 임 변호사에게 '칼자루'를 내주는 광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별감찰관은 지난 대선의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권력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민주통합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고, 새누리당은 특별감찰관 및 상설특검 제도를 약속했다. 대선에서 승리한 곳은 새누리당이었다.


특별감찰관과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맥을 같이한다. 다만 예상되는 입법 효과는 다르다. 공수처가 도입되면 검찰권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 사법개혁이 이뤄진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함께 주어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위상에서 검찰과 대등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공수처와 달리 특별감찰관 제도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 대신 원안은 수사권에 준하는 조사권과 고발권을 주기로 설계됐다. 원안을 작성한 인물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 2012년 9월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자격으로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제안했다.

알짜 권한
줄줄이 뺏어

안 전 대법관이 구상한 바에 따르면 원안에는 계좌추적권이 들어 있다. 그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굵직한 비자금 수사를 여럿 지휘해 계좌추적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특별감찰관에게 계좌추적권을 부여해 독립적인 내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정보원 존안자료 열람권을 비롯한 각종 보안자료 접근권도 제공했다. 압수수색권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처였다. 특정인에 대한 강제 동행은 제한했지만 통신거래내역 조회와 같은 조사권은 발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안만 놓고 보면 나름 강력한 권한이 주어졌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안 전 대법관은 특별감찰관이 감찰 대상을 임의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대통령의 배우자, 직계존비속을 포함한 친인척,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감사원장 등 권력기관장은 물론 특별감찰관이 지정한 사람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민간인인 정윤회씨는 공직자가 아니지만 특별감찰관이 '특수관계인'으로 지목하면 감찰이 가능했다.

여당 추천 이석수 특별감찰관 지명
대선 전 원안보다 권한·범위 축소


그런데 이게 바뀌었다.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한 특별감찰관제에 따르면 민간인인 정씨는 조사 대상에 포함될 수 없었다. 관련법이 감찰의 범위를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과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원안에 있던 장관급 이상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은 감찰대상에서 빠졌다. 청와대 밖에 있는 '십상시'는 자연스레 배제됐다. 논란이 된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역시 '비서관급'이란 이유로 감찰을 피해갔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더구나 법안에는 계좌추적, 통신거래내역 조회 등에 관한 강제권이 명시되지 않았다. 특별감찰관과 짝을 이뤘던 상설특검제는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고강도 감찰이 이뤄져도 기소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준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앞서 밝혔듯 여야는 모두 3명의 후보를 추천하는데 이 가운데 1명만이 온전한 야당의 몫이다. 추천을 해도 대통령이 신임할 확률은 희박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3명의 후보 가운데 여당 추천 인사를 골랐다. 누가 됐든 임명권을 쥔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무엇보다 특별감찰관은 감찰 개시와 종료를 대통령에게 그 즉시 보고해야 한다. 감찰 기간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도 대통령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 입장에서 특별감찰관이 누구를 감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높다. 이렇듯 특별감찰관은 기대와 달리 '앙꼬 없는 찐빵' 신세로 전락한 모습이다.

임기는 3년
목표는 3인방

특별감찰관의 이 같은 운명은 예견돼 있었다. 박 대통령은 공약 이행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당도 뜨뜻미지근했다. 대통령 취임 1년이 다 돼서야 특별감찰관의 존립 근거가 담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마저도 당초 약속한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시켰다. 특별감찰관의 의미는 퇴색됐다.

지난해 6월 법안이 발효됐지만 국회 차원의 후보자 인선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뒤늦게 물색한 여러 후보는 인사청문회 등을 이유로 관직을 고사했다. 우물쭈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마침내 '정윤회 문건 파문'이 터졌다. 그제야 여당 일각에서는 특별감찰관의 '숨겨진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청 관계가 소원해진 이유는 인사 때문인데 지도부는 청와대 깊숙한 곳에 직통 채널이 없다"며 "'정윤회 사건' 같은 게 터지면 준비할 시간 없이 당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박지만 (EG) 회장이 조응천(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통해 별도의 채널을 유지했듯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자신들이 추천한 특별감찰관을 통해 청와대 내부 동향을 파악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물론 여당 일부가 의도한 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당사자인 이 후보자가 거래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약 양쪽이 한배를 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래권력 싸움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할 수 있어서다.

가령 특별감찰관이 모은 대통령 측근 비위 사실은 당 지도부로 배달돼 당·청 협상카드로 쓰일 수 있다. 현 정부처럼 폐쇄적인 청와대 운영을 고집할 경우 정보가 가진 파괴력은 배가 된다. 모두가 지켜봤듯 '찌라시'에 불과한 십상시 문건에 휘청댔던 박근혜정부다.

역대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임기 3∼4년차에 권력형 비리로 몸살을 앓았다. 당 지지도가 대통령 지지도를 앞지르는 레임덕이 왔을 때 권력기관들이 반응한 것이다. 레임덕 국면에서 특별감찰관의 역할이 따로 주목되는 이유다. 특별감찰관의 선택에 따라 권력의 추가 급격히 기울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특별감찰관이 대통령에 의해 '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감찰관은 국회의 탄핵이나 해임요구,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면직이 불가능하다. 정해진 임기는 3년인데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같다.

제2의 조응천? 문고리 3인과 충돌?
김무성-이병기-박지만 가교 가능성

인사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문고리 권력이 가진 힘의 근원은 대통령 지근거리라는 점도 있지만 신원 보장에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짐을 쌌지만 3인방은 온갖 지탄에도 살아남았다.

행정부 안에서 3인방 정도로 신분이 안정된 공무원은 특별감찰관이 유일하다. 마음만 먹으면 '양천'(박관천·조응천)처럼 '전면전'도 가능하다. 나아가 그들과 달리 쫓겨나지도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 국무총리인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1월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것이다. 개정된 안에는 안 전 대법관의 초안대로 장관급 공무원, 각 권력기관장을 감찰 대상에 포함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여당의 속내는 따로 읽혔다. '비선 실세'를 잡겠다는 것이다. 여권 복수 관계자는 "감찰 대상을 청와대 일반 비서관이나 행정관 등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3인방을 감찰 대상에 집어넣겠다는 의지와 다름없다.


우병우 수석
또 다른 변수

특별감찰관의 가장 큰 라이벌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수사권이 빠진 특별감찰관은 민정수석과 역할 및 권한이 비슷하다. 당장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관리를 어느 쪽이 해야 하는가가 첨예한 논쟁거리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권력암투설'이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은 대면보고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감찰관은 업무 특성상 대통령과의 '독대'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대면보고를 단언하기 어렵다. 때문에 이병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앞서 김기춘호와 김무성호는 소위 말하는 '케미'가 맞지 않았다. 이를 교훈삼아 새롭게 출발한 이병기호가 특별감찰관을 가교 역할로 쓸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실 특별감찰관은 근본부터 정치적인 자리다. 살아 있는 권력과 미래 권력 중 어느 곳에 줄을 설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국민만 바라보는 '워치독'이 될 수 있을까. 판단은 그의 몫이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청와대로부터 특별감찰관으로 지명된 이석수(52·사법연수원 18기)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공안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98년 일명 '북풍 수사'에 참여해 활약하는 등 검사 시절에는 공안통으로 분류됐으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경력도 있다.

2010년 변호사로 개업했고 이후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 당시 특검보를 지내기도 했다. 이하 약력.

▲서울 ▲상문고·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석사 ▲사시 28회(사법연수원 18기) ▲대구지검 경주지청·인천지검·대구지검·서울지검 검사 ▲서울지검 검사 ▲국방대학원 수료 ▲인천지검 부부장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부산지검 부장검사 ▲중앙지검 부부장검사(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파견) ▲대검찰청 감찰 2·1과장 ▲창원지검 통영지청장 ▲춘천지검·전주지검 차장검사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특검팀 특검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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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