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신상사파’두목 신모씨가 쇠고랑을 찼다. ‘산수’에 가까운 나이에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것도 모자라 폭력까지 교사한 혐의다. 한때 대한민국 주먹계를 호령했던 전국구 보스치고 비참한 말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기구한 인생을 되돌아봤다.
전국구 두목 신모씨 투견도박·금품갈취 혐의 입건
‘사보이 사건’이후 조직 와해…구속 등 기구한 인생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12일 수도권 일대에 투견장을 개설해 투견 도박을 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장모씨 등 5명을 구속하고 일당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05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경기와 인천 야산과 고물상 등을 돌며 투견장을 연 다음 18차례에 걸쳐 판돈 500만∼1000만원을 거는 투견도박판을 벌여 자릿세와 운영비 명목으로 1억여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78세 노구 무색
2008년 10월엔 경기 양주군 백석면 야산에서 진돗개끼리 싸우게 하거나 미국산 투견끼리 싸움을 붙이는 투견 도박장을 운영하고 승리한 견주 등에게 배당금을 주지 않고 협박해 400만원을 빼앗았다. 앞서 2005년 7월 인천 서구 백석동 김포매립장 부근 개 사육장에서 투견도박 피해자 이모씨에게 폭력을 휘둘러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또 지난해 4월 경기 양주의 한 개 사육장에서 1주일에 10%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김모씨에게 130만원을 빌려주고 이를 갚지 못하자 100만원을 더 빌려주고 이자를 갚도록 협박하는 등 불법 사채업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은 “수사가 시작되자 달아난 일당 4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며 “앞으로도 서민생활을 침해하는 조직폭력배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사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일당 중 한때 대한민국 주먹계를 호령했던 전국구 보스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내 최대 폭력조직이었던 명동 ‘신상사파’두목 신모씨다. 올해 78세인 신씨는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1950~60년대 폭력조직 ‘신상사파’를 결성한 신씨는 주먹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 ‘신상사파’에 뿌리를 두거나 정신적 지주로 내세우는 현 폭력조직도 있다.
6·25전쟁에 참전해 빨치산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워 훈장까지 탄 신씨는 1953년 육군 상사로 제대한 뒤 ‘명동 사단’두목 이화룡 밑에서 행동대장으로 있다가 100여 명의 폭력배들을 이끌고 1959년 ‘신상사파’를 결성, 서울 중심가를 장악했다. 당시 라이벌이 이정재가 이끌던 ‘동대문 사단’의 유지광이었다.
주먹계 한 원로는 “드라마 등을 통해 일반 사람들에게 유지광이 더 유명해 졌지만 사실은 신씨의 싸움 실력과 세력이 앞섰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여러 신진조직들이 신상사파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무릎을 꿇는 등 10년 넘게 신상사파 천하가 계속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신상사파’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명동 일대를 장악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다 1975년 사보이호텔에서 회칼로 무장한 ‘범호남파’에 의해 습격당한 뒤 사실상 와해됐다. 주류 공급권과 관내 유흥업소 상납금 등이 문제였다. 광주, 전주, 목포, 여수 등이 주활동 무대였던 ‘범호남파’는 조양은이 진두지휘했다.
사보이호텔 기습 사건은 국내 조폭의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우선 정통 ‘주먹세계’의 종말을 예고했다. 이때까지 주먹세계의 불문율이었던 ‘주먹과 주먹의 대결구도’가 깨지고 사시미칼 등의 흉기가 등장한 것이다.
주먹계의 판도도 바꿔놓았다. 김두한, 이정재, 이화룡 등 ‘1세대 주먹’이 저물고 서울 일대를 장악했던 ‘신상사파’에 이어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파’등 ‘호남 3대 패밀리’가 분할 점령하게 됐다.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부산 이강환을 두목으로 한 ‘칠성파’를 비롯해 대전 김옥태의 ‘옥태파’, 대구 오대원의 ‘동성로파’등이 세력을 확장했다. 전국구 조폭 시대가 도래한 셈이었다.
사보이호텔 기습 사건 직후 신씨의 인생도 비참해지기 시작했다. 5공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혹독한 고초를 겪었고, 이른바 ‘나와바리’를 이태원 쪽으로 옮겼지만 노태우 정부 때 범죄와의 전쟁 선포를 계기로 완전히 손을 씻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들어 수입 중고자동차 매매 대리점을 운영하는 등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2004년 자신이 입점해있던 서울 강남구 삼성동 W 상사 부지가 매각돼 이전하게 되자 W상사에 입점한 업자 11명을 대표해 땅 주인으로부터 이사비 4억원을 받은 뒤 다른 업자들에게 줘야 할 1억5000여만원을 주지 않고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신씨가 소환될 당시 검은 양복을 입은 ‘후배’조직원 십수명이 수행해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신씨는 출소 뒤 최근까지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며 주먹계 원로 대접을 받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소 사보이호텔 커피숍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 지인들을 만났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