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①> ‘5000만 대한민국 현주소’ 국민의 4대 의무 대해부 ④근로

일해야 한다고? 있어야 하지!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러시아 대 문호 막심 고리키는 ‘일이 즐겁다면 인생은 극락이다. 괴로움이라면 그것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일은 개인의 인생과 분리 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며, 국민이라면 4대 의무 중 하나인 ‘근로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헌법 탄생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근로의 환경은 역동적으로 변화했다. <일요시사>는 오늘날 대한민국 ‘근로의 의무’의 핵심인 근로 환경의 현주소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등 각종 통계 지표를 기준으로 살펴봤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의무를 가지며, 국가는 근로의 의무의 내용과 조건을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로 정하도록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사회주의국가는 국민의 근로 의무가 특히 강조되며 강력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하지만 자유주의 국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 때문에 근로 의무의 법적 성격에 관해 견해가 갈라진다. 
 
근로의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는 생활 보호를 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의무로 보는 견해와, 국가가 공공의 필요에 의해 근로할 것을 명할 때는 이에 복종해야 할 법적 의무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죽어라 일해도 
간신히 끼니만
 
근로의 의무에는 이를 이행하지 않는 자에 대해 생존권 보장이 당연히 부여되지 않는 ‘전제조건’이 있다. 또 국가가 법률상 부과하는 근로를 제공할 의무로서 측면도 가진다. 그러나 근로의 의무는 헌법상의 다른 원칙, 즉 직업 선택의 자유나 강제 노역의 금지 등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서 근로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라고 말하며,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부는 1953년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근로의욕을 향상시키고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향상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임금, 노동, 시간, 유급 휴가, 안전 위생 및 재해 보상 등에 관한 최저 노동 조건을 정하고 있다. 이는 국민경제 향상과 근로의 의무를 이행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다. 하지만 한국 고용 시장과 근로의 질이 양적·질적인 면에서 모두 악화돼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최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산출한 2015년 기준 월별 표준 생계비를 보면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4인 가구의 한 달 생활비는 527만859원에 달했다. 이 조사는 4년마다 실시하며, 조합원에 대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모형을 만들고 통계청의 물가지수를 반영해 이뤄진다. 500만원이 넘는 생활비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주거비와 의료, 교육비 등이었다. 가구 구성원별로는 1인 가구의 경우 189만441원, 2인 가구는 327만1240원, 3인 가구는 424만9780원 등이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임금은 이 같은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상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315만297원이었다. 임시·일용직을 제외하고 한 달을 정기적으로 일하는 근로자들의 월급도 4인 가구가 한 달에 필요로 하는 금액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임금근로자 상당수가 빚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자만…돈이 돈을 버는 세상
일하지 않고 앉아서 배불리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저임금 근로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월21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2014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자 중 3분의 2미만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25.1%로 파악됐다. 이는 OECD 평균인 16.3%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25.3%를 기록한 미국 다음으로 높다. 이어 아일랜드(21.85%), 캐나다(21.7%), 영국(20.5%) 순이다. 일본은 14.3%, 호주와 독일은 각각 18.9%, 18.3%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기준 300인 미만 중소 제조업체의 평균 월급은 219만3867원이다. 기본급만 보면 158만4688원으로 전체 임시·일용직 월급(136만8000원)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지 않다. 
 
또 OECD 기준 1990∼2013년 임금증가율은 1.69%를 기록해 일본(1.05%), 미국(1.33%), 스위스(1.25%), 호주(1.35%) 등을 웃돌았다. 그러나 시간당 임금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일본이나 이탈리아보다 임금이 낮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고서 발간에 참여한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풀타임 근로자의 연간 총임금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노동시간이 고려되지 않는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며 “노동시간이 긴 한국 근로자의 경우 시간당 임금이 일본 등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한국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심한 차별이 일반화된 가장 큰 이유로는 아직도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지 않고 있는 근로기준법이 꼽힌다. 일례로 현대자동차에서 최근까지도 자동차의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 간 임금은 배 가까이 차이 났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추상적인 규정이어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물가 뛰는데 
월급은 기어
 
이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임금 불평등도 심화됐다. 고용부가 최근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에게 제출한 ‘2009∼2013년 임금현황’ 자료에 의하면 300인 이상 대기업 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5∼299인 기업의 임금보다 배 정도 많았다. 야근은 중소기업 직원들이 더 많이 한다는 설문결과가 있었지만 지난해 11월 고용부 자료를 보면 초과근무 수당은 대기업이 더 많다. 그러나 중소기업 근로자가 받은 월평균 초과근로수당은 5만8837원으로 300인 이상 기업(33만938원)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 교수는 “OECD 평균이 2001년 16.9%에서 2012년 16.3%로, 한국의 임금불평등이 OECD 회원국 중 높은 수준”이라며 “지난 10년간 임금불평등이 다소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임금 10분위 배율은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세번째로 높았다. 2001년 8위(4.09)에서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임금 하위 10% 노동자와 상위 10% 노동자의 임금비율을 나타낸 임금 10분위 배율은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이 4.71%을 기록했다. 국가별로는 미국(5.22%), 이스라엘(4.91%), 한국 순이다.
 
 
OECD의 피용자보수 통계에 따르면 한국 풀타임 근로자의 2013년 구매력 환산 임금(3만6354달러)은 이탈리아(3만4561달러)나 일본(3만5405달러)보다 약간 높고 프랑스(4만242달러)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한국은 성별별 임금 격차가 아주 큰 국가로 분류된다. OECD가 2012년을 기준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남녀 근로자 간 임금 격차는 37%에 달한다. 남자가 1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면 여성 근로자는 63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뜻이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2001년(39%) 이후 10년 넘는 기간 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 OECD 평균(15%)보다 두 배 이상 격차가 크다. OECD 회원국 가운데서는 가장 높다. 물론 직종이나 산업 등을 감안하지 않은 성별 임금 비교라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개선되고 있는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우리가 가진 임금 체계의 문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일본은 34%에서 27%로 격차를 줄였다. 헝가리(11%)와 비교해도 세 배 이상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크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여성들이 유통업이나 사회서비스업과 같은 저임금 업종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며 “업종별 시장임금을 조정하고, 여성 근로자가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력별 임금 차이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은 고졸과 같은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가 중졸 이하의 저학력 근로자에 비해 29%나 임금을 더 받는다. 반면 중간학력을 가진 근로자는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근로자에 비해 47%나 적게 받는다. 이런 격차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각각 8위, 10위에 해당할 정도로 심하다. 문제는 학력에 따른 이런 임금 차이가 20여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저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2012년과 같은 29%였고, 고학력과 중간학력 간 임금 격차는 43%였다. 권 교수는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대부분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와 맞물려 있다”며 “중간학력이나 저학력자는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에 많이 취업해 있는 반면 고학력자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취업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 보니 고교생 대부분이 대학으로 진학하려 하고, 노동시장이 왜곡되는 것”이라며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이중 노동시장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라고 덧붙였다.

넘치는 비정규직
저임금 근로환경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지난해 국내 직장인 8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야근을 일주일 평균 7시간6분 동안 했다. 대기업(6시간18분)이나 외국계 기업(6시간12분)보다 1시간 정도 많다. 야근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장시간 노동 문화 탓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대부분 최소 인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유휴인력이 없다보니 주말이나 대체휴일도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한국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해마다 감소 추세에 있지만 OECD 기준으로는 여전히 ‘장시간근로 국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9년 주44시간제와 2004년 주40시간제(주5일제)가 도입된 결과다. 연간으로 따지면 한국 취업자의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1990년 2677시간에 비해 20년간 500시간 이상 감축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그리스 등과 함께 장시간근로 국가군에 포함됐다. OECD 평균은 1770시간이다.
 
근로시간은 또 고용률과 반비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통해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선 근로시간이 더 줄어들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현재 근로시간이 가장 긴 멕시코의 고용률은 61.0%인 반면,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74.3%다. 이는 고용률 증가는 근로시간 감소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지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607만7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2.4%를 차지한다. 정부는 출범 초 국정과제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전환을 강화,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비정규직은 오히려 증가하면서 600만명을 넘어섰다.
 
하루종일 일해 밥값도 못벌어
일거리 없어 백수·백조 넘쳐 
 
정부와 기업은 정규직 근로자들이 과보호되고 있으며,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고 말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2011∼2013년 3년간 국내 500대 기업 중 3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3년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기간은 10.32년으로 집계됐다. 500대 기업에 입사해도 일하는 기간이 10년 남짓인 셈이다. 30대 그룹 계열 대기업(169개)으로 범위를 좁히면 평균 근속연수는 9.70년으로 더 낮아졌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5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공기업을 제외하면서 평균이 낮아진 것이다.  
 
기업이 노동시장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통계는 또 있다. OECD가 발표하는 고용보호지수(고용보호법제의 수준을 지수화한 것)를 보면 한국은 2.17로 OECD 평균 2.29를 밑돈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지수 역시 OECD 국가 중 22위에 불과하다.  
 
지난해 하반기 출간된 ‘2013년 비정규직 이동성 국가별 비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비정규직 중 근무한 지 1년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11.1%에 불과했다. 3년 후 전환되는 비율도 22.4%에 그쳤다. 회원국 평균 53.8%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OECD는 “유럽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디딤돌’인 것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덫’이 될 위험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수가 계속 느는 원인은 ‘법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만 2년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 사용 사유는 규제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사용해도 제재 받지 않는다. 정부도 이를 모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비정규직은 불가피하게 고용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부분 때문에 허용하는 것인데, 기업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에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하는 규정과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불가피하고 객관적인 사유를 명시하자는 주장은 여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나아졌지만…
아직 갈길 멀다
 
비정규직 차별 금지와 사용 사유 제한 원칙을 법에 명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광표 노동사회연구소장은 “일시적, 간헐적 사유가 있는 일자리까지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이 아니다”면서 “문제는 그 사유 규정이 없어서 마음대로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소장은 이어 “현재 노사정위원회에서도 기간제 기간만 자꾸 논의하는데,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닌 (비정규직) 사용 사유”라고 지적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고용률-실업률 비교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 폭이 7개월 만에 30만명대로 떨어졌다. 특히 고시준비생,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인 11.9%까지 치솟았다. 

1월 고용률(58.7%)은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고, 실업률(3.8%)도 지난해 4월(3.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9.2%로 전체 실업률(3.8%)의 3배에 육박했다. 정부의 고용 목표는 15∼64세를 대상으로 OECD 기준 고용률 70% 달성으로 하고 있다.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의 고용률은 70%가 넘는다.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고용과 소비가 꼬리를 물고 확대돼야 경제가 성장하지만 고용이 악화되면서 결국 정부의 세수(세금 수입)도 부족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세수결손 규모는 10조9000억원에 이르러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용이 양적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실질 가계소득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지난 1월 고용 증감에서 50대 이상 고령자 취업 비중이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50대(19만1000명)와 60대 이상(17만4000명)에 비해 청년층(15∼29세)의 취업자 수 증가 폭이 2만7000명에 그쳤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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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단독] 성수3지구 재개발 조합 복마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내 집 마련’이라는 욕망의 집합체다. 사려는 사람, 팔려는 사람, 그리고 짓는 사람까지 집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있다. 조합은 사방팔방 뻗어있는 이권을 조율하고 사업을 끝까지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지닌다. 문제는 이 과정서 발생하는 유착과 비리 의혹이다. 주택 재개발사업은 권력의 이동에 영향을 받는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2007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성수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53만㎡ 면적의 땅을 4개 지구로 나눠 재개발을 진행하다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사업이 지체됐다. 그러다 오 시장의 취임으로 다시 궤도에 오르는 모양새다. 3조 사업 14년째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압구정 아파트 지구 특별계획구역을 마주 보면서 한강 조망이 가능해 재개발 수혜 단지로 주목받고 있다. 그중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는 성동구 성수동2가 572-7번지 일대로 기존 계획안에 따르면, 부지 11만4193㎡에 1852가구 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제3지구 조합)이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월 조합장이 지위를 상실한 데 이어 각종 의혹이 불거져 복마전이 따로 없는 상황이다. 특히 조합장과 정비사업관리전문업자(이하 정비업체) 간의 유착 의혹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비업체는 정비사업 과정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업자를 말한다. 대통령령이 정한 자본‧기술인력 등의 기준을 갖춰 시·도지사에게 등록한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은 제정 당시부터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정비업체는 ▲조합 설립 및 정비사업의 동의 ▲조합 설립 인가 신청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 시행계획서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 ▲사업 시행 인가 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의 업무를 지원하고 대행한다. 정비사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업무에 관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3지구 조합은 2009년 10월 추진위원회의 승인, 2010년 5월 주민총회를 거쳐 N사를 정비업체로 선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3지구 조합 내부서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14년에 걸쳐 조합 업무를 대행해 온 N사와 역시 10년 넘게 조합서 일한 전 조합장 김모씨의 유착 의혹이다. 뉴타운 후보지 정비구역으로 오세훈 시장 취임에 재시동 김 전 조합장은 2010년 추진위 총무로 선출된 후 2016년 주민총회를 통해 추진위원장으로 뽑혔다. 2018년 창립총회서 조합장으로 선출됐지만 지난해 11월 도정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원이 확정돼 자격을 상실했다. 그사이 재신임 투표, 주민총회 등의 과정이 있었고 수차례에 걸쳐 법정 공방에도 휘말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조합장은 2016년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불사조’에 가까운 면모를 보이며 자리를 지켰다. 김 전 조합장은 창립총회(2018년)와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가 인정돼 2021년 조합장 지위를 상실했다. 제3지구 조합 선거관리 규정은 ‘후보자 등록 시 제출 서류의 허위·변조·위조 등이 발견된 경우 당선을 무효로 한다’고 명시했다. 김 전 조합장은 후보자 등록 신청서에 지방 소재 ‘Y대학 졸업’이라고 기재해 제출했다. 또 Y대학 총장 명의로 된 졸업증명서를 3부 만들어 추진위원장과 조합장 후보 등록 등에 사용했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업무방해죄와 사문서위조죄·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김 전 조합장에 각각 벌금 100만원과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이후 2021년 1심 법원은 해당 약식명령 등을 근거로 ‘조합장 지위 부존재 확인’ 소송서 김 전 조합장이 조합장의 지위에 있지 않다고 판시했다. 서울시가 진행한 조합 실태점검 결과도 조합장 지위에 영향을 미쳤다. 성동구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열흘간 진행한 ‘성수전략정비구역 제3지구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운영실태 시·구 합동 기동점검’서 총 22건의 지적사항이 나왔다. 자금 차입 결국 사임 특히 성동구는 김 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도정법 제45조(총회의 의결) 2항에 따르면 자금의 차입과 그 방법, 이자율과 상환방법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성동구의 실태점검 결과에도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10월 주민총회서 또다시 조합장으로 선출됐다. 하지만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빌린 부분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조합장 자격을 잃었다. 김 전 조합장은 2022년 ▲총회 의결 없이 자금을 차입한 점 ▲자료 공개 거부 등 도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혐의 모두를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서 자료 공개 거부 혐의가 무죄로 바뀌면서 벌금 100만원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돈을 빌려준 주체가 정비업체인 N사였다는 사실이다. N사는 2019년 6월과 8월, 그리고 10월 각각 2000만원, 2000만원, 1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을 제3지구 조합에 무이자로 빌려 줬다. 앞서 김 전 조합장은 2019년 2월에 5000만원, 4월에 3000만원 등 8000만원을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차입한 사실이 확인돼 벌금 7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제3지구 조합이 총회 의결 없이 N사로부터 빌린 돈의 액수는 총 1억3000만원에 이른다. 김 전 조합장의 가족 일가가 제3지구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 등을 구입하는 과정서도 N사의 흔적이 등장한다. 재산 증식 내부 정보? 문제를 제기한 제3지구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아들과 딸, 사위 등이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를 사거나 도로를 증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김 전 조합장의 재산이 늘어나는 과정에 조합의 내부 정보가 사용된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6년 전후로 김 전 조합장을 비롯한 가족 일가의 부동산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조합장이 추진위원장으로 선출된 시기와 맞물린다. 김 전 조합장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7월 성수동의 빌라 한 채를 1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등기부등본상 이씨의 주소는 김 전 조합장의 주소와 같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2019년 1월 이 빌라가 송모씨에게 2억원에 팔렸는데 해당 인물이 정비업체 N사의 관계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송씨는 한 달 뒤 해당 빌라를 2억1000만원에 팔았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5년 1월 제3지구 재개발 지역에 위치한 아파트 한 채를 4억5750만원에 매입했다. 김 전 조합장의 아들은 현재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으로 이름이 올라있다. 김 전 조합장의 딸로 추정되는 이모씨는 2018년 11월 특정 인물로부터 성수동2가의 도로 일부를 증여받았다. 딸 이씨의 남편이자 김 전 조합장의 사위로 추정되는 김모씨는 2017년 1월 성수동2가의 한 상가 1층을 매입했다. 김씨도 제3지구 조합의 대의원 명단에 존재한다. 2018년 해당 건물에 근저당을 설정한 업체는 세입자 조사업 등을 하는 W사였다. W사의 과거 등기부등본상 주소는 제3지구 조합서 업무를 하는 법무사 사무소의 주소와 일치했다. 송사 휘말려도 계속 부활해 가족 일가 부동산 구입 의혹 제3지구 조합의 한 조합원은 “지금 드러난 것은 등기부등본을 뒤져 찾아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총회의 결의 없이 정비업체로부터 금전을 차입해 자신의 급여를 챙기고 가족 일가의 부동산 축재에 사용했다는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며 “김 전 조합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로 사임하면서도 조합원에게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이 뻔뻔함의 극치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직후 김 전 조합장은 “2009년부터 지금까지 14년간 성수3지구를 위해 노력해 왔고 14년간 조합 운영을 투명하고 절약하였기에 조합장 자리서 내려오며 부끄럽지 않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에는 사무실을 얻어 ‘김○○ 사랑방’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주민과 부동산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3지구 조합의 또 다른 조합원은 “김 전 조합장의 나이가 70대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바지사장으로 세우고 뒤에서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말이 내부에 많다”며 “N사는 한남4구역재개발조합서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된 업체”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한남재정비촉진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한남4구역 조합)은 지난해 정기총회서 N사와의 계약 해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합 설립 과정서 발생한 비위, 허위 견적서 제출, 금전 편취 혐의로 사기죄 확정 등이 이유였다. 한남4구역 조합은 2011년 N사와 용역 계약을 맺고 지난해까지 조합 업무를 함께 해 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남4구역 계약 해지 제3지구 조합서 불거진 의혹은 현재 성동세무서, 성동경찰서 등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은 “전 조합장과 N사는 조합을 장악하고 감시 체계가 허술한 틈을 타 끊임없이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며 “이들의 비리는 민생침해 범죄인만큼 철저한 수사로 조합원의 피해를 막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 조합장의 해명 “떳떳하다” 김모 전 조합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울분을 쏟아냈다. 14년간 조합을 위해 일했는데 근거 없는 모함으로 자신을 괴롭히려 든다는 것이다. 김 전 조합장은 자녀를 비롯해 사위 등 가족 일가가 재개발 지역에 아파트나 건물을 산 것은 인정하면서도 결혼을 할 무렵 본인들이 구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비업체 N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비업체는 재개발 사업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조합장이 됐지만 업무에 서툰 부분이 있어 정비업체 대표(송모씨)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도 “정비업체 직원을 따로 만난 적도 없고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없다. 나는 떳떳하다. 떳떳하기에 아직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젊고 똑똑한 사람이 조합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그런 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울 것”이라며 “2010년 조합 총무로 시작해 14년 동안 조합 일을 보면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 판결로 사임하게 됐지만 조합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기사 속 기사> N사 대표의 해명 “우리는 을이다” N사의 송모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비업체는 조합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정비업체가 조합장을 내세워 조합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부의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조합이 갑, 정비업체가 을이라고 강조했다. 송 대표는 총회의 의결 없이 제3지구 조합에 돈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김 전 조합장이) 조합 재정 상태가 너무 열악하다고 간곡히 부탁해서 무이자로 빌려준 것인데 그게 문제가 돼서 조합장님이 지위를 잃게 된 점은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합에 차입한 1억3000만원은 한 푼도 돌려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합장이 사임하는 등 조합 내부가 뒤숭숭한 것 같다는 말에는 “직무대행이 조합 업무를 보고 있고 우리도 정비업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사업은 표류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업체가 맡고있는 재개발 지역이 20여군데 정도다. 한 군데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불법을 저지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남4구역 조합과의 계약 해지에 대해서는 “(한남4구역 조합) 조합장이 내가 불법적인 요구를 했다. 그걸 거절했더니 계약 해지를 한 것”이라며 “현재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 상태다. 법으로 가려질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