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②> 본지 달군 최고의 뉴스메이커 100인

말 많고 탈 많았던 그때 그 사람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1996년 5월 창간한 <일요시사>는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지켜봤고, 6·15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등 역사적인 사건을 두루 경험했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과 미국발 금융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은 <일요시사>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령 1000호를 맞아 본지 지면을 달궜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100인의 면면을 통해 <일요시사>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봤다.

<일요시사>는 지난 4일 편집국 회의를 통해 1996∼2015년까지 신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 연예인, 스포츠스타를 비롯해 범죄자를 항목에 집어넣었다. 각 포털사이트에서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검색어'도 일부 참고했다. 표기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경어를 생략하고 본명 그대로 싣는다.

[편치 않았던]
[정치 20인]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김영삼정부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른바 'IMF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요체다. 물론 대한민국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를 맞게 된 것은 아니다. 김영삼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은 너무 미숙했다.

더구나 김영삼정부는 부패했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YS의 차남 김현철(1)은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장에 불려나왔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김현철은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김대중(2)은 우리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김현철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 김대중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을 남기고 2009년 숨을 거뒀다.


6·15 선언의 또 다른 주역은 김정일(3)이었다. 김정일은 남북협력을 약속하고 일부 영토를 개방했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을 피해 핵개발을 추진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 우리 언론은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악마'라는 평가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교차했다. 독재자로 살았던 김정일은 2011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4)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했다. 왕좌에 오르자 대규모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2014년 초 '김정은 사망설'이 유포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5)은 DJP연합을 통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그는 국회의원에 아홉 번이나 당선(또는 내정)된 실력자였다. 김대중정부와 결별한 뒤로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이회창(6)은 김영삼정부가 낳은 스타였다. 대법관으로 재직했을 당시 '대쪽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한나라당 소속 대선 후보로 대권을 노렸지만 두 번 다 낙선했다. 독자 출마한 17대 대선에서도 큰 표 차로 낙선했다.

노무현(7)은 대통령 당선 전후의 파격 행보로 기대를 모았다. 의회는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했으나 노무현에 대한 기성언론의 공세는 계속됐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후임인 이명박(8)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국밥을 먹는 홍보영상이 크게 히트했다. 임기 중에는 '촛불 수사' '4대강 사업' 등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으로부터 서울시장 자리를 물려받은 오세훈(9)은 한때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박원순(10)은 시민단체 출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에는 재선에까지 성공했다. 그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던 안철수(11)는 18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자진 사퇴했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해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정부의 국무총리였던 고건(12)은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정운찬(13)은 '세종시 수정안'을 설계했으나 계획대로 입안하지 못했다. 충청권 출신인 이인제(14)는 민선 1기 경기도지사를 지내고 대선에 두 차례 나왔으나 모두 낙선했다. 당을 옮겨 다니면서도 국회의원 6선에 성공해 '피닉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통령 대쪽판사 피닉제 등 별명 다양
경영싸움 폭행사건 등 재계 명암 뚜렷

박근혜(15)는 18대 대선에서 51.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에게는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 붙었다. 원세훈(16)은 국정원장 자리에서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을 지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17)은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2013년에야 완납 의사를 밝혔다.

'친박'의 상징이었던 전여옥(18)은 대변인 당시 내뱉은 말들이 화제가 됐다. 비슷한 예로 유시민(19)은 논리정연한 말과 글솜씨로 주목받았다. 허경영(20)은 '화성인'스러운 돌출 행동으로 웃음을 안겼다. "내 눈을 바라봐"와 같은 희대의 유행어도 남겼다.

[신화와 몰락]
[기업 20인]

1998년 6월 남북관계의 물꼬가 터졌다. 정주영(21)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에 당도했다. 이를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까지 유치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편히 눈감지 못했다. 그룹 후계구도를 놓고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발했다.

차남 정몽구(22)와 5남 정몽헌(23)이 대립각을 세웠다. 정몽헌은 2003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정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지는 아내인 현정은(24)이 물려받았다. 정몽구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지만 2007년 횡령·배임 사건 피의자로 법정에 섰다.

이건희(25)는 '삼성 신화'를 대한민국에 아로새겼다. 2009년에는 헌정 이래 최초로 단독 사면을 받았다. 2014년에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장남인 이재용(26)은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지목됐다.

허창수(27)는 지난 2011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됐다. GS그룹 총수 외에도 프로축구 구단 FC서울 구단주를 겸임 중이다. 박용만(28)은 두산그룹 회장이 된 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락했다. 현대가처럼 '왕자의 난'을 겪고 법정에도 섰지만 트위터를 통한 소통 행보로 그룹 이미지를 제고했다.

김승연(29)은 지난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구단 한화에 쏟은 투자가 많은 팬의 칭송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그룹 채용에 배려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에도 열심이다. 최철원(30)은 이른바 '멧값 폭행'으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다. SK그룹 재벌 2세인 그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인이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태수(31)는 한보그룹 사태가 터지자 휠체어에 앉았다. 고액체납자가 된 그는 행방불명 상태다. 김우중(32)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 국내로 귀국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2007년 사면됐다.

강덕수(33)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몰락했다. 현재현(34) 역시 동양그룹 사태로 수많은 서민을 울렸다. 유병언(35)은 세월호 참사로 파생된 수사 과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요란했던 '삼성X파일' 수사의 주인공은 이학수(36)였다.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37)은 2012년 숨질 때까지 여러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문국현(38)은 한때 창조한국당 당수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정권에 밉보인 죄로 정계를 은퇴했다.

대상그룹 장녀인 임세령(39)은 2009년 이재용과 이혼했다. 최근에는 연예인과 열애설에 휩싸였다. 엔씨소프트 김택진(40)은 '리니지'라는 게임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파문의 주인공]
[사회 20인]

밀레니엄 열풍이 불었던 1999년 도올 김용옥(41)은 국내 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 뒤이어 등장한 구성애(42)는 '아우성'이란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강금실(43)은 노무현정부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 됐으며, 호주제를 폐지했다.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44)은 2004년 유명을 달리했다. 다음해에는 이른바 '줄기세포 스캔들'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황우석(45)은 그해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이었다. 2007년에는 신정아(46)라는 이름이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같은 해 심형래(47)는 문제작 <디워>를 내놨다. 문화평론가 진중권(48)은 이 논쟁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장자연(49)의 유서는 연예계의 판도라를 열었다. 불행히도 사건은 흐지부지 됐다. 신영철(50)은 이명박정부의 뇌관인 '촛불재판'에서 외압 논란을 자초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땅에 떨어졌다. 조현오(51)는 잇따른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경찰청장으로 이명박정부를 적극 호위했다.


한국 가톨릭계의 큰 어른인 김수환(52)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앙드레김(53)도 2010년 작고했다. 그를 기리는 각계의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성접대 스폰서 혼외아들 발칵
연쇄·토막살인 아동폭행 경악

언론인 손석희(54)는 MBC를 떠나 JTBC로 옮기면서 화제가 됐다. 아나운서 김주하(55)는 불우한 가정사가 노출됐다. 혼혈인이자 성공한 뮤지컬 음악 감독인 박칼린(56)은 일약 스타가 됐다.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57)는 존경과 모멸을 한 몸에 받았다.

남성연대로 유명세를 치렀던 성재기(58)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검찰총장후보로 거론됐던 김학의(59)는 사상 초유의 성접대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를 밀어낸 채동욱(60)은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했다.

[뜨거나 지거나]
[스타 20인]

1998년 개그맨 김국진(61)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유동근(62)은 사극 <용의 눈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홍석천(63)은 국내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커밍아웃했다. 그룹 GOD(64)의 콘서트장에는 수만명의 팬이 몰렸다.

배용준(65)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등극했다. 유승준(66)은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에서 추방됐다. 개그맨 박준형(67)은 2003년 <개그콘서트>에 출연해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같은 해 이효리(68)는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섹시'의 대명사가 됐다.

이영애(69)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드라마 <대장금>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여배우가 됐으나 결혼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2007년에는 걸그룹 원더걸스(70)가 '텔미'를 유행시켰다. 2008년 최진실(71)의 자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해가 가도 애도 분위기가 이어졌다.

<슈퍼스타K>란 오디션 프로그램은 허각(72)의 인생을 바꿨다. 이듬해 신정환(73)은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되며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가수 싸이(74)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배우 설경구(75)는 재혼을 둘러싼 여러 루머로 몸살을 앓았다.

전지현(76)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구라(77)는 '막말 파문' '억대 보증'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방송가에서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방송인 노홍철(78)은 케이블TV에서 시작해 공중파를 장악했다. 현재는 음주운전 논란으로 자숙 중이다. 유재석(79)은 '유느님'으로 불리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소신 있는 가수였던 신해철(80)은 최근 의료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국민에 힘 준]
[스포츠 15인]

IMF 사태로 온 국민이 시름하고 있던 당시 메이저리거 박찬호(81)와 프로골퍼 박세리(82)의 활약은 큰 힘이 됐다. 박세리와 함께 깜짝 스타가 된 '땅콩' 김미현(83)은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히딩크(84)와 태극전사들의 땀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축구선수 박지성(85)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해외축구 붐을 일으켰다.

농구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김승현(86)은 코트를 휘저었다. '홈런왕' 이승엽(87)은 아시아 홈런기록을 갈아치웠다. '피겨여왕' 김연아(88)는 벤쿠버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연기로 금메달을 따냈다. '마린보이' 박태환(89)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다른 메이저리거 추신수(90)는 초대형 계약으로 잭팟을 터뜨렸다. 쇼트트랙 영웅 안현수(91)는 러시아에 귀화해 선수 생활을 잇고 있다.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92)은 세계를 들어 올렸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93)은 격투기 선수로 변신했다. 배구 여신 김연경(94)은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e스포츠 선수였던 홍진호(95)는 방송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충격과 경악]
[범죄자 5인]

신창원(96)은 1997년 탈옥을 감행해 우리 사법당국을 농락했다. 조두순(97)은 아동 성폭행을 저질러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살인마 유영철(98)은 죄 없는 여성 수십명을 죽였고, 오원춘(99)은 경기 수원에서 끔찍한 토막살인을 저질렀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100)은 출소 이후에도 연예인 협박 사건에 연루되며 체면을 구겼다가 2013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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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4·10 이후···4인 파워게임] 화려한 부활 조국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두 자리 의석수를 확보하면서 원내 3당으로 자리 잡았다. 조국 대표는 비례순번 2번으로 단숨에 여의도행 티켓을 따냈다. 문재인정부 초대 민정수석비서관과 66대 법무부 장관 등 굵직한 이력을 지녔지만 초선인 만큼 처음부터 입지를 다져야 한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과반을 넘기면서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지난 10일, 민주당의 압승에 가까운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국당 지지자들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조국당이 기대하던 ‘10석+알파(α)’가 확실해졌다. 주먹을 쥔 지지자들은 연신 “조국”을 외쳤다. 총선 뒤흔든 조국혁신당 조 대표는 이날 총선 출구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승리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국민께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다”며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퇴행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총선 승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은 이번 총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라. 그리고 그간 수많은 실정과 비리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라”며 “이를 바로잡을 대책을 국민께 보고하라”며 “총선은 끝났지만 조국당이 만들 우리 정치의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개원 즉시 ‘한동훈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례대표 개표 현황에 따르면, 조국당은 12석으로 집계됐다.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18석으로 가장 많은 당선자를 배출했다.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하 민주연합)이 14석을 얻었으며 개혁신당과 진보당은 각각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조국당은 24.2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신생정당이 20%가 넘는 지지율을 거두자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로써 조국당 비례대표 12번까지는 무난히 당선권에 들었다. 차례대로 ▲박은정 ▲조국 ▲이해민 ▲신장식 ▲김선민 ▲김준형 ▲김재원 ▲황운하 ▲정춘생 ▲차규근 ▲강경숙 ▲서왕진 등의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한때 여권서 “조국이 나오면 땡큐”인 ‘조나땡’이란 말까지 나왔지만 이를 상쇄시킬 정도로 조국당의 돌풍은 거셌다. 조 대표가 부산 민주공원서 신당 창당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기세 좋게 제3지대로서의 존재감을 키워가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조국 열풍’ 또한 금세 식을 것이란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조 대표는 지난 2월8일 자녀들의 입시 비리 및 청와대의 감찰무마 혐의 등으로 항소심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총선 한 달 앞두고 등장한 루키 정당 민주당과 정권 심판론 쌍끌이 전략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조국당은 이번 총선서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권 심판론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사건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는 조국당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조국당의 슬로건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암시하는 “3년은 너무 길다”였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중도층 여론을 의식해 탄핵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결국 ‘윤정부 무력화’를 거침없이 외치는 조국당에 심판을 벼르던 강성 유권자들이 동참한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다소 약한 목소리에 갈증을 느끼던 지지층의 표를 흡수한 셈이다. 22대 총선을 통해 조 대표는 완벽한 정치적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형이 나온 만큼 조 대표가 22대 국회를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의 대표이자 간판인 조 대표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다면 사실상 조국당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조 대표가 집어든 여의도 생존 전략은 ‘검찰 탄압 프레임’을 굳히는 것이다. 자신을 여의도로 이끈 ‘검찰 탄압’이라는 명분을 긴 호흡으로 유지하면서 원포인트 전략으로 내세우겠다는 설명이다. 이는 조 대표가 출소 후 여의도로 돌아오기 위한 명분으로도 내세울 수 있다. 국회에 입성한 조 대표는 그동안 강조해온 한동훈 특검법을 띄우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동안 조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원내에 진입하면 한동훈 특별법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동훈 특검법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징계 관련 의혹 ▲검찰 고발사주 의혹 ▲논문 대필 등 자녀 입시 비리 의혹 등을 수사 대상으로 삼는 걸 골자로 한다. 이 밖에도 조 대표는 ‘윤석열정권 관권선거운동 의혹 국정조사’를 실시하거나 ‘검찰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국정조사’를 추진해 윤 대통령을 국회에 출석시키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12석 확보 완벽한 성공 당선권에 진입하자 조 대표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난 11일 조국당은 총선 당선자들과 함께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찾았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김건희를 수사하라”고 외쳤다. 조 대표는 “이번 총선서 확인된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이라는 거대한 민심을 있는 그대로 검찰에 전하려 한다”며 “검찰은 즉각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도 거론했다. 그는 “검찰은 ‘몰카 공작’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에 설득력이 있다고 보느냐”며 “몰카 공작이라면 관련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고 처벌하라. 그것과 별개로 김 여사도 당장 소환하라”고 주장했다. 끝으로 조 대표는 “조국당은 검찰이 국민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22대 국회 개원 즉시 ‘김 여사 종합 특검법’을 민주당과 협의해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김 여사는 특검의 소환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조국당이 검찰만 정조준하는 이유는 조 대표가 ‘정치적 죽임’을 당했다는 여론 때문이다. 따라서 조 대표를 향한 동정론도 조국당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검찰에게 탄압받았다는 이미지를 가진 조 대표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오히려 지지자의 결집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몇 년 동안 조 대표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를 시작으로 조 대표와 그의 일가족이 잘못한 부분은 있지만 죄명에 비해 과도하게 탄압받았다는 동정론이 형성됐다. 동정론은 조국당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강한 무기다. 오래전부터 조 대표를 지지해 왔다는 A씨는 기자회견 현장에서 <일요시사> 취재진과의 만나 “조 대표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온 B씨도 “온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지 않았나.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역경을 딛고 나선 것을 보면 마음이 이쪽(조국당)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VS 조 동상이몽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미 이 대표의 재판에 익숙해져 있기 떄문에 조 대표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희석됐다는 평도 나온다. 조국당이 총선 직전까지 지지율을 견인하자 여권에서는 급하게 견제에 나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은 총선 기간 동안 조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며 “범죄자들에게 미래를, 아이의 미래를 맡길 수 없지 않냐”고 강조했다. 이에 조 대표는 “‘한동훈 특검법’에 동의부터 하라”며 맞불을 놨다. 조국당은 한동훈 특검법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동의할 것이란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중도층을 포섭해야 하는 입장이다. 또한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한 조 대표의 존재가 부담스럽기도 하다. 정치권에서는 여의도 신입인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를 동일선상서 바라보는 모양새다. 총선 다음 날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이번 선거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던 (윤석열)대통령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라고 평가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하루빨리 이재명·조국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1야당 대표인 이 대표뿐만이 아니라 조 대표까지 함께 언급된 만큼 조 대표의 몸값이 크게 뛰었다고 해석했다. 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은 닫아뒀지만 민주당에서는 견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 같은 흐름을 두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현해 “야권의 분열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속도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야권이) 윤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갖고 거대 의석을 이뤘지만 조 대표와 이재명 대표의 시간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녀 입시 비리’ 사법 리스크 여전 대법 판결 정치생명 마침표될 수도 현재 조 대표는 대법원 판결만 남은 만큼 모든 일정을 빠르게 해치워야 한다.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과 견줄 만큼 몸집을 키우거나 진보 진영서 대권을 잡아 스스로의 힘으로 사면해야 한다는 게 이준석 대표의 시나리오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재명 대표는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의 대표기 때문에 서서히 조여 들어가려고 할 것”이라며 “그 속도 차이가 역설적으로 두 세력의 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조 대표의 생존 전략은 조국당의 원동력을 유지하거나 추후 여의도 복귀를 위한 명분을 쌓는 데 그칠 뿐이다. 조국당의 정치 공간을 넓히고 다른 당과 손을 잡기 위해 매력적인 묘수를 꾀어내는 게 조 대표의 숙제로 남아 있다. 조국당 의석은 12석으로 교섭단체를 충족시키는 20석을 채우기 위해서는 8석이 더 필요하다. 1석씩 얻은 새로운 미래와 진보당, 혹은 소수 야당과 손을 잡고 공동 교섭단체를 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이제까지 민주당과 조국당 모두 합당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다. 조국당이 내세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 슬로건에 민주당은 ‘몰빵론’을 내세우기도 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얻은 지금으로서는 조국당이 거대야당에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의외의 성적을 거둔 조국당이 22대 총선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면서 꼬리가 몸통을 흔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민주연합·조국당 등 범야권이 힘을 합치면 의석수가 국회의원 전체의 5분의 3인 180을 넘기게 된다. 이 경우 신속처리안건인 패스트트랙 지정을 통해 법안을 강행할 수 있다. 아울러 패스트트랙에 저항할 수 있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강제 종료시킬 수 있다. 혼자일 때 더 강하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조국 대표가 민주당과 합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후 민주당서 탈당할 의원이나 제3지대 의원이 합류한다면 원내교섭단체인 20석이 충분한 만큼 조 대표가 숙이고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전적으로 조 대표의 판단에 달렸지만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지금과 같은 선명성이 묻히고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잃게 된다”며 “조 대표는 이번 총선의 캐스팅보트다. 살아남는 방법은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급해진 대법원? 대법원이 업무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를 받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상고심 사건의 재판부를 결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주심은 엄상필 대법관으로 2021년 조 대표의 배우자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항소심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이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엄 대법관이 상고심 재판을 맡더라도 형사소송법상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조 대표 사건의 하급심 판결에 엄 대법관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엄 대법관에게 유죄의 심증이 있으므로 조 대표 측은 재판부를 교체해달라는 기피 신청을 낼 수는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