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비보이 병역비리 <전모>

무대에선 ‘춤꾼’ 의사 앞에선 ‘정신병자’

잊을 만하면 터지는 병역비리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엔 유명 비보이그룹 멤버들이 주인공이다. 멀쩡하게 춤을 추던 비보이들은 정신질환자 행세로 군 면제를 받았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한 달 간 정신병동에 입원을 하는가 하면 2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들의 감쪽같은 연기는 함께 사는 가족들마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수년 만에 낱낱이 드러난 이들의 행각은 그동안의 병역비리를 무색케 할 만큼 대담했다.

비보이그룹 T.I.P 멤버 9명 정신질환자 행세로 병역기피
완벽 정신질환 연기로 판정받은 뒤 입원, 약물치료 불사

2002년 ‘영국 UK 비보이 챔피언십’ 에서 한국 최초로 우승하면서 떠오르는 비보이 팀으로 각광받던 그룹 T.I.P. CF까지 출연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이 그룹의 멤버들에게는 한 가지 이상한 공통점이 있었다. 멤버 가운데 9명이 정신병에 걸렸고 그 것으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점.

엄마까지 동원된 병역비리

이 소문은 비보이들 사이에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경찰의 귀에 들어갔다. 같은 그룹의 멤버들이 같은 병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에서 수상한 기운을 느낀 경찰은 이들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은 밝혀졌다. 9명의 멤버들은 모두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정신병자행세를 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이 방법으로 군 면제를 받은 것은 황모(30)씨. 떠오르는 신예 비보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황씨는 2001년 영장을 받는다. 비보이 선수로서는 황금기인 20대 초반에 군대에 가면 그 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진 황씨. 그때부터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질환이 있는 것처럼 행세 하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황씨는 각종 의학 서적을 구입했다. 정신병자로 보이려면 관련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군 면제에 이용했다. 함께 병원에 가 자신의 증세를 증언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탓이다.

이렇게 철두철미한 준비를 한 황씨는 2001년 8월 어머니와 서울 둔촌동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의사 앞에서 황씨는 멍하니 먼 곳을 응시하는 등 정신질환자 연기를 했다. 황씨의 어머니도 의사에게 “오래 전부터 우울증을 앓던 아들이 요즘 헛것이 보인다며 집에만 있다”고 말했다.

이를 본 의사는 황씨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내렸다. 이후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황씨는 병역처분 변경절차를 거쳐 2003년 11월 징병신체검사 결과 5급 판정을 받아 군 면제자가 됐다. 1998년 신체검사에선 1급 현역 입대 판정을 받았지만 기막힌 황씨의 연기로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황씨의 비결을 전수받은 다음 타자는 박모(29)씨. 박씨 역시 왕성하게 활동하던 지난 2002년 군 복무 통지서를 받았다. 고민하던 박씨는 선배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질환자 연기만 하면 쉽게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결국 박씨도 불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먼저 인터넷에서 정신질환 병역면제 기준을 확인한 박씨는 비교적 연기하기 쉬워 보이는 정신분열증을 선택했다. 그리고 서울의 한 국립병원 정신과에 찾아가 “헛것이 보이고 환청이 들린다”며 거짓증세를 말했다. 의사는 이에 정신분열증 판정을 내렸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황씨가 했던 것처럼 박씨는 한 달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퇴원 후에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병원에 가 약을 받아왔다. 무려 2년 동안 병원에 드나든 박씨는 마침내 결실을 얻었다. 5급 판정으로 군 면제를 받은 것이다.

지난해에는 멤버 이모(25)씨가 선배들의 길을 따라 갔다. 이씨는 지난해 국내 최대 비보이 경연대회를 3개월 앞두고 영장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입대하면 그 동안 연습한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아 두려웠던 이씨. 결국 이씨는 술자리에서 고민거리를 털어놨다. 이때 한 선배가 이씨에게 “정신병자 행세로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며 “나도 그렇게 해서 군대에 안 갔고 팀 안에 그런 사람이 여러 명 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이씨는 선배들이 했던 대로 정신병 관련 지식을 습득하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의 한 정신병원으로 갔다. 이씨의 작전도 성공이었다. 의사는 “아들이 자꾸 환청이 들린다고 한다. ‘젊은 여자가 보인다’며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어머니의 말과 이씨의 이상행동을 토대로 정신분열증 판정을 내렸다. 그 후 이씨는 선배들이 했던 대로 입원치료를 받은 뒤 군 면제를 받았다.

이들의 행각은 다른 멤버들에게도 퍼져나갔고 9명의 멤버가 면제와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정신분열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경계선지능 및 정신지체 등 병명도 다양했다. 범행 후 몇 년이 지나도록 병역비리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이들은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자신했다.

댄스대회까지 출전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결국 들통났다. 멤버 17명 가운데 9명이 정신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이들을 수사했고 모든 범행과정을 밝혀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도 주변의 눈을 피해 외국 댄스경연 대회에 버젓이 출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멤버는 상을 받기도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 3일 이씨 등 3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공소시효 7년이 지나지 않은 이씨 등은 재판에 넘겨져 5년 이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공소시효가 지난 6명은 형사처벌을 피했지만 병무청은 9명 모두 재검을 통해 병역 의무를 이행하게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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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단독] ‘채 상병 사건’ 사단장 수상한 메시지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채 상병 사건’의 핵심 관계자인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을 취한 것으로 파악됐다. 자신의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 한 게 핵심이다. 임 전 사단장과 연락이 닿은 인물들은 대부분 이해관계자다. 자칫하면 회유 정황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채 상병 사건’의 핵심 피의자다. 수사외압 논란의 시발점이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직접 챙긴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사건을 물밑에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다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침묵 지키다…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복수의 해병대 간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는 간부 A씨에게 “(공수처)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서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 연락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은 없었다. 다만 “모두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지만 아들을 잃은 채 상병의 유족 특히 모친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다. 진실을 밝힐 때까지는 고통스러워도 견딜 생각이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임 전 사단장은 A씨에게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하 대령)의 변호인이었던 김경호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것과 관련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연락을 취했다. 김 변호사가 자신을 고발한 게 무고에 해당하는지와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 것이다. 그는 타 간부들에게도 비슷한 도움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연락서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모셨던 사람이긴 한데 임 전 사단장에 대해 개개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사람이 채 상병 사건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전 사단장은 과거 박 대령에게도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바 있다. 자신은 물속 수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수차례 했고 작전통제권이 육군 50사단장으로 넘어간 상황서 자신의 책임과 범위 내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했다며, 이에 대한 박 대령의 기억과 판단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 사건 연루자들에 연락 당시 임 전 사단장은 “상급지휘관(임 전 사단장)에게 작전통제권은 없지만, 부대를 방문해 전술토의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작전이 되도록 유도할 권한은 있다”고 했다. 작전통제권이 없어 안전 책무가 없다면서도, 자신이 현장서 ‘수변을 수색하라’고 지휘한 건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임 전 사단장은 자신의 직권남용 문제를 언급한 해병대수사단의 조사 결과 보고서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시하지 않았다. 수사단은 ‘작전통제권과 상관 없이’ 임 전 사단장을 실질적 수색작전 지휘관으로 보고, 안전지침을 부대에 하달하지 않아 채 상병 순직사고가 일어났다고 판단했다. 임 전 사단장은 김 변호사와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김 변호사가 SNS에 게시한 글 중 허위 사실이 포함된 내용이 있다는 게 임 전 사단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 변호사에게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한계 속에서 해석과 이해를 거쳐 어떤 주장을 하는 것에 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악의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병대 수사단 자료의 문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발견됐고, 제가 사안의 진상을 밝히면서 그걸 뒷받침하는 자료를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위가 여론을 조작하고 진실을 가리는 불의한 상황을 시정하기 위해 나 자신의 안위는 돌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을 공수처에 세 번째로 고발했다. 이번 혐의는 군형법 제79조 무단이탈죄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임 전 사단장은 지난 1월 말 서울 노원구에 있는 화랑대연구소가 아닌 영등포구에 위치한 해군 관사 ‘바다마을아파트’에 거주하며 인접한 해군 재경근무지원대대 사무실로 출근 중이다. 마음 급해졌나…어떤 의도? 갑자기? 특검 압박 느꼈나 이 사실은 그가 여러 곳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취지의 문서를 내용증명, 등기우편 등으로 보내면서 드러났다. 등기 봉투의 발신지는 화랑대연구소였으나 배송 조회 결과 실제 발신지는 서울 신길7동 우편취급국이었다. 임 전 사단장이 거주 중인 서울 관사 인근이다. 발송 시간도 대부분 일과시간 직전이나 일과 중이었다. 임 전 사단장은 언론을 통해 “연수 초기에 육사에서 주로 근무했으나 장거리 출퇴근 비효율적이라서 최근엔 해군재경대대서 근무 중이다. 근무 장소 중 하나가 해군 재경대대”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정책 연수의 일시와 출퇴근 시간 및 장소가 명령으로 특정된다. 인사명령의 지정된 장소서 지정된 출퇴근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사명령이나 상급기관의 지휘관에게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주 번호를 변경하는 임 전 사단장의 핸드폰을 압수수색해 무단이탈한 장소와 상급지휘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정식으로 사전에 허가를 받았는지에 관한 진실을 밝혀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취지”라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임 전 사단장이 해병대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이 증거인멸 시도로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메시지를 보내며 같이 책임을 면하자는 회유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수처는 지난 1월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결과와 경찰 이첩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에 대해 강제수사를 착수해 왔다. 박 대령에게 사실확인요청서를 보낸 것에서 임 전 사단장이 적극적인 책임 회피에 나섰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서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자 조용했던 임 전 사단장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적절한 처신 한 해병대 간부는 “전우의 죽음 이후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석연치 않은 윗선의 처리는 진상규명 문제를 떠나 정치권 개입을 불렀다”며 “도의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일부 작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해병대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임 전 사단장은 <일요시사>가 사건 관계인에 연락한 이유에 관해 묻자 "사건 관계인에게 연락한 것은 사실 확인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