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배우들만 캐스팅해 드라마를 제작한다면 얼마나 신날까?
최근 한 누리꾼이 인터넷에 올린 ‘역대 최고의 드라마 가상 캐스팅’이 화제다.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질투와 증오의 화신이란 화신은 죄다 모아놨다.
이 가상드라마의 큰 틀은 한 부부가 주인공인 복수극이다. 이 누리꾼은 드라마 <겨울새>에서 전대미문의 마마보이 역을 한 윤상현을 남편 역으로 캐스팅했다. 그의 아내는 <인어아가씨>의 아리영역 장서희다. 윤상현을 유혹해 부부의 갈등을 이끌어내는 역은 MBC 드라마 <그래도 좋아>의 고은미가 맡았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반효정과 드라마 <겨울새>에서 악역연기의 방점을 찍은 박원숙이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첫째 고모는 드라마 <깍두기>의 최란이, 둘째 고모에는 드라마 <불새>의 김부선이 포진한다. 그리고 윤상현 누나로는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를 통해 ‘국민언니’로 올라선 하유미가 발탁됐다. 윤상현의 동생은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의 ‘미칠이’ 최정원이 캐스팅됐다. 캐스팅만 봐도 속이 시끄럽다.
이에 맞서는 친정집도 만만치 않다. 먼저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반효정과 반목을 벌였던 정혜선이 친정할머니 역을 맡았다. 그 밑으로 친정어머니 역에 <천국의 계단>의 이휘향이 등장한다. 이휘향은 최근 SBS 드라마 <행복합니다>에서도 도도한 재벌집 안방마님으로 출연했다. 최란, 김부선 등 고모들에 못지않은 이모들의 면모도 대단하다. 큰이모 역은 최근 MBC 드라마 <천하일색 박정금>에서 사여사 역을 맡은 이혜숙이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자기주장이 분명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박해미가 둘째이모다. 그리고 장서희의 동생으로 KBS 드라마 <미우나고우나>에서 시청자의 미움을 한몸에 받았던 유인영이 출연한다.
이 누리꾼의 가상 캐스팅에 대한 다른 누리꾼들의 호응 또한 대단하다. 한 누리꾼은 “시청률 50%보장!”이란 댓글로 이 가상 드라마가 미칠 파장(?)을 단언했다. 다른 누리꾼은 “저들 사이에 낀 윤상현이 불쌍하다”며 극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이 가상 캐스팅은 복수가 복수를 낳고 필연적으로 악역을 끼워넣는 우리 드라마의 치부를 유쾌하게 비틀어 누리꾼의 호응을 받고 있다.
제작비, 배우의 출연 의사 등과는 상관없이 원하는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는 방법이 ‘가상 캐스팅’ 놀이다.
최근 인기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나 일본 드라마(일드)의 국내 제작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 지면서 가상 캐스팅은 하나의 놀이이자 문화로 자리잡았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즐겨봤던 외화가 국내 제작될 때 어떤 배우가 어떤 캐릭터에 어울릴지 고심하는 ‘가상 캐스팅’을 즐긴다. 이미 작품이며, 캐릭터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가상 캐스팅’을 마치고 자신의 결과물에 희열을 느낀다.
제작비나 배우들의 개인 스케줄 등 다양한 문제로 한 작품에 절대 만날 수 없는 배우들을 한데 모아놓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캐릭터에 상관없이 항상 언급되는 장동건, 현빈, 조인성, 정일우, 조한선 등 절대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스타’들을 한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가상 캐스팅 붐을 탔던 국내 최초의 드라마는 <궁>이다. 박소희 작가의 인기 만화 <궁>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팬들은 당대 최고 청춘스타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기분좋은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윤은혜, 주지훈, 김정훈, 송지효 등이 최종 캐스팅됐을 때 실망하는 사람도 많았다.
일본의 인기 만화 <꽃보다 남자>는 대만과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아시아권에서 크게 히트했다. 국내에서도 <꽃보다 남자>가 기획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많은 팬들이 가상 캐스팅을 즐기고 있다. 특히 1명의 여자주인공 주변의 각기 다른 성격의 꽃미남 4명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꽃보다 남자> 한국판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배우들을 꼽자면 강동원, 조인성, 조한선, 이민기, 공유, 장근석, 이연희, 박신혜, 윤은혜 등이며 경기 경험없는 인기 아이돌 가수들까지 포함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섹스&시티>, <누님 아네고>, <가십걸>, <아름다운 그대에게>, <허니와 클로버>, <프리즌 브레이크>,
이제 팬들은 드라마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컨텐츠를 재생산하거나 각자의 의견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즐거움을 증대시킨다. 가상 캐스팅을 통해 그 작품을 다시 곱씹어 보고 여러 배우들을 놓고 씨름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다. ‘가상 캐스팅’은 능동적인 시청자들의 새로운 취향에 맞는 놀이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