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국정농단 민낯 드러낸 '김무성 수첩' 파문

음종환 뒤에 검은 그림자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민감한 내용을 담은 수첩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되며 불거진 이른바 '수첩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이 집권여당의 대표와 중진의원을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애써 덮은 '십상시 국정농단 의혹'이 재점화되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던 당·청관계에도 치명적 악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윤회)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적힌 수첩을 보는 모습이 한 인터넷 매체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곧바로 K는 김 대표, Y는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이고 이 발언을 한 인사는 음종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음 전 행정관은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에서 십상시 멤버로 거론됐던 인사다. 청와대·검찰이 "정윤회 문건은 허위"라고 공표한 상황에서 일개 행정관이 집권여당의 대표와 중진의원을 저격하려고 했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 내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십상시 행정관
K·Y배후설 주장

우선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된 과정부터 살펴보자. 지난달 18일 음 전 행정관과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이 참석한 술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이다"라고 말한 것을 이 전 비대위원이 지난 6일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비롯한 전·현직 새누리당 의원 12명에게 공개했다.


김 대표는 이 전 비대위원이 전한 얘기가 가볍지 않다고 여겨 'K(김무성)·Y(유승민)' 이니셜로 수첩에 메모해 뒀다. 그리고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대표가 수첩을 뒤적이는 과정에서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관련 메모가 포착됐다.

검찰서 애써 덮은 '십상시' 또 불쑥
일개 행정관이 집권여당 대표 저격?

김 대표는 이 전 비대위원이 전한 얘기를 들었을 당시 크게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함께 있던 인사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것들이 미쳤나" "청와대 애들 가만히 안 놔두겠다" 등의 발언을 내뱉을 정도로 분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김 대표와 유 의원은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을 전해들은 직후 각각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에게 항의 및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불투명하다. 해당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13일까지 청와대는 발언을 직접 듣고 김 대표와 유 의원 등에게 전한 이 전 비대위원에게 사실관계를 단 한 차례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음 전 행정관에 대한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이 전 비대위원으로부터 전해 듣고 메모한 것을 본회의장에서 꺼낸 것이 청와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일부러 본회의장 뒤편에 자리 잡은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유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음해다. 의도적으로 사진 찍히기 위해서 그런 것(수첩을 펼쳐 보인 것)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김 대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수첩 메모가 언론에 포착돼 논란이 커지자 지난 14일 김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당과 청와대는 한몸으로 공동운명체"라며 확전을 자제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청와대가 음 행정관을 면직 처리하며 화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의 술자리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은 '격'이 맞지 않아서이지 속내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가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행정관과 붙으면 모양새가 우습지 않겠느냐"며 "결과적으로 (언론에 알려졌으니) 청와대에 경고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유 의원은 오는 5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앞두고 친박계와 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급한 봉합
"또 터질라"

그러나 음 전 행정관과 그의 발언을 전한 이 전 비대위원 간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당·청이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조만간 상처난 부위가 또 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의 힘이 빠지고, 계파 갈등이 고조되면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겠냐는 것.

김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평적이고 건강한 당·청관계를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진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며 "청와대 사람들이 김 대표를 계속 삐딱하게 쳐다본다면 '참는다, 참는다' 인내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음 전 행정관은 이 전 비대위원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을 언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문건 유출) 배후다. 조 전 비서관은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줄을 대 배지를 달려는 야심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 전 비대위원은 "당시 술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 등은 3~4시간째 술을 마셨다. 나 혼자 제일 늦게 도착해 술에 취하지 않았고 언쟁이 길게 오갈 정도였기 때문에 관련 발언을 오해했다는 것은 잊을 수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메시지 전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실공방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기강 해이 도 넘어
정권 비판인사 불법사찰도?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전 비대위원은 "내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들을 음 전 행정관이 비판하면서 '출연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며 "내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여성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누구누구를 만나고 있지 않으냐'며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이 전 비대위원이 각종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던 터에 나온 이러한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은 청와대의 불법사찰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 전 행정관이 문고리 권력 3인방(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가까운 만큼 이들도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음 전 행정관의 인식이 청와대 비서진의 일반적인 인식이 아니냐는 우려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음 전 행정관이 관련 발언을 한 다음 날 박 대통령이 친박 중진의원들만 따로 불러 만찬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운영
십상시 주도?

이에 대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실제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현 청와대의 민낯을 다 보여줬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김무성 수첩 파문'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핵심관계자는 "음 전 행정관 한 사람 자른다고 덮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십상시의 국정농단이 실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국정정상화를 위해 청와대의 일대쇄신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찰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마당에 일개 행정관이 한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선 특검 밖에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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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