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두목’ 검거에 부산 조폭 재정비?

이강환 검거로 본 ‘칠성파’ 흥망성쇠

공개수배로 체면을 구겼던 주먹계 대부 이강환이 결국 시민의 신고로 덜미를 잡혔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초라한 두목의 말로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단 석방됐지만 거물급 주먹의 움직임은 큰 파장을 남기고 있다. 부산에서 여전히 세력을 떨치고 있는 칠성파의 두목이 잡히면서 반칠성파 세력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부산 주먹 바닥을 좌지우지했던 칠성파였기에 그 파장은 더욱 크다.

공개수배 칠성파 이강환 34일 만에 시민 신고로 덜미
휠체어 탄 백발노인 모습으로 등장해 보는 이들 충격

지난 6일 백발성성한 한 노인이 경찰서에 잡혀왔다. 휠체어에 몸을 실은 초췌한 모습의 이 노인은 부산 주먹계의 대부인 칠성파 강환(67)이었다. 공개수배 34일 만에 시민 제보로 덜미가 잡힌 ‘늙은 두목’의 말로는 한때 주먹계를 호령했던 인물이라기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씨가 공개수배 전단에 얼굴을 올리고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은 지난 3월2일부터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이날 부산 지역의 모 건설사 대표를 협박, 폭행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 등으로 이씨를 전국에 공개수배했다. 이씨가 조폭생활을 하면서 공개수배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씨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10여 차례 부산 모 건설업체 대표 A씨를 협박해 4억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고 조직원을 동원해 A씨를 납치,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 같은 이씨의 행각은 2007년 말 경찰에 알려졌다. 하지만 보복이 두려웠던 건설업체 대표가 입을 열지 않아 수사는 쉽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2년여 동안 피해자를 설득해 진술을 확보했고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시민신고? 자수?
엇갈리는 검거 과정


그리고 지난 2월22일 연제경찰서는 이씨 검거에 나섰다. 물밑에서 이씨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경찰은 체포영장 발부 직전 형사 20여 명을 부산의 모 호텔 커피숍에 잠복시켰다. 이씨가 나타난 것은 이날 낮 12시20분 쯤.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30여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그런데 이씨 일행은 커피숍에 도착해 전화 한통을 받은 후 화장실 쪽으로 나간 뒤 사라졌다. 호텔 로비에서 소동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이씨를 보자마자 검거하지 않은 경찰의 실수였다.

결국 경찰은 2월28일 체포영장이 만료된 후 물밑접촉을 통해 자수를 권유했으나 이씨가 연락을 끊고 잠적해 공개수배 결정을 내렸다. 신고포상금 1000만원이 이씨의 목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경찰도 잡지 못한 조폭 두목을 공개수배로 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이씨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하기는 힘들 거란 예측도 나왔다.

경찰의 부실수사도 논란이 됐다. 체포영장 발부 직후 이씨가 자취를 감춘 것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 검거 정보가 새 나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검거작전이 허술하단 비난도 터져 나왔다.

이처럼 각종 의혹을 뒤로 한 채 잠적했던 이씨는 결국 지난 6일 덜미를 잡혔다. 이날 오전 9시42분쯤 부산시 부산진구 부산진구청 앞 도로에서 이씨는 청년들의 도움을 받으며 벤츠 승용차에서 내린 뒤 뒤쪽에 있던 체어맨 차량으로 옮겨 탔다. 이 모습을 본 한 시민이 경찰에 “이강환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고 신고했고 긴급 출동한 부산진경찰서 부암지구대 소속 손민호 경위 등에게 붙잡혔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어렵게 검거된 이씨. 하지만 이씨는 검거 이틀 만에 검찰에 의해 석방됐다.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석방의 이유였다. 검찰은 이씨가 조직원을 동원해 건설업체 대표 A씨를 폭행하도록 교사한 부분과 어음 갈취, 이씨의 주택 재개발 사업 투자 여부 등 5가지 사항에 대해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지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서만 활동
호남 조폭과는 다른 길


그런데 검거 이틀 만에 내린 검찰의 결정에 많은 이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공개수배 기간 동안 잠적해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큰 범인인데다 검사가 구속 상태에서 수사해야 할 사안을 근거로 석방 결정을 내린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로한 조폭의 검거에 세간이 떠들썩한 이유는 칠성파의 영향력에 있다. 부산지역에서 수십년 간 건재한 칠성파는 우리나라 조폭계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이 속한 조직이 칠성파로 등장했을 만큼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칠성파가 조직된 것은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직을 구성한 것은 이강환의 손위동서였다. 당시 부산지역의 폭력조직은 6.25 전쟁 직후 부산의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피난지를 중심으로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칠성파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렇게 부산 지역에 태동한 폭력조직은 호남에 있는 조직과는 다른 방식으로 활동했다. 서울 등 더 큰 무대로 진출하지 않고 부산에서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한 것. 이런 집중화 방식은 칠성파를 부산 최대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해상밀수, 슬롯머신 도박업, 히로뽕 밀조, 유흥업소 운영 등으로 돈을 벌어들이면서 명실공히 부산 최고의 폭력조직으로 거듭났다.

그렇게 세를 확장시키던 칠성파가 또 한번 급부상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씨가 조직을 장악하면서부터였다. 80년대 전국 주먹계 ‘3대 패밀리’로 불리던 김태촌(서방파), 조양은(양은이파), 이동재(OB파)보다도 막강했던 주먹계의 전설 이씨가 칠성파를 이끌면서 조직은 한층 더 두터워졌다.

이씨가 조직의 우두머리가 됐을 때도 조직운영방침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가 전국에 영향력을 과시하는 대신 부산 토착세력으로 그 뿌리를 지킨 것. 당시 김태촌과 조양은 등 호남 주먹들은 서울로 진출해 전국 무대를 평정했지만 이씨를 필두로 한 칠성파는 부산 내부에서만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조직의 크기나 영향력은 서방파, 양은이파 등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았다. 한 조폭 전문가는 “이강환이 이끌던 칠성파는 부산지역 방계조직이던 서면파, 영도파 등 6개 조직을 통합하면서 부산지역 최대 폭력조직으로 성장했다”면서 “특히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 국가 최대 폭력조직과 연계를 모색하는 등 전국구 조직과 비교해도 그 규모나 영향력이 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명실공히 최고의 폭력조직으로 도약하던 칠성파는 1980년대 초 첫 번째 위기를 맞는다. 이씨가 히로뽕 밀조 혐의로 구속되면서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처한 것. 그 후 1985년 출소한 이씨는 조직 재결성을 시도하지만 내부 분열로 인해 영도파와 신칠성파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씨는 조직을 또 한번 전성기로 끌어올렸다. 먼저 이씨는 조직재건을 위해 1988년 일본 야쿠자와 의형제 결연식을 맺었다. 그런데 이 결연식 장면이 비디오로 찍혀 일반에 공개되면서 주먹계는 물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전설적인 주먹계 대부로 알려지게 됐다.

또 같은 해 10월 이씨는 경주 서라벌회관에서 ‘전국 전과자 갱생 구국청년회’인 화랑신우회를 결성,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화랑신우회는 부산과 경남지역의 최대 폭력조직이 모두 연합, 300여명을 거느린 사실상 전국구보다도 거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칠성파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이씨가 구속당했고 이로 인해 칠성파에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온 것. 이씨는 화랑신우회 사건으로 1991년 도피 중 붙잡혀 8년 동안 철장신세가 됐다.

두목 구속에 날뛰는 신생조폭
반대파 습격 세력다툼 격화


이런 가운데 부산 바닥에서 칠성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보스급 주먹들이 구속되거나 은퇴하고 신생 조직들이 득세하면서 이권과 세력이 차츰차츰 줄어든 것.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친칠성파와 반칠성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잦아지기도 했다. 이는 영화 ‘친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극중 준석(유오성)이 속했던 조직이 칠성파이고 동수(장동건)가 속했던 조직이 반칠성파인 20세기파였다.

이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피를 부르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이씨가 출소한 2003년을 기점으로 더욱 격화됐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장례식장 난동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2006년 부산 금정구 영락공원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반칠성파인 20세기파, 유태파, 영도파 등 3개 조직이 연합해 칠성파 조직원 4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2008년에는 장례식장 난동사건에 앙심을 품은 칠성파 조직원들이 반칠성파 조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에도 이씨는 여전히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표면상으로는 은퇴한 퇴물조폭이었지만 실상은 중간보스 뒤에서 조직을 관리했던 것이다. 최근의 건설업체 대표 폭행사건만 봐도 이씨가 계속해서 조직의 일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법처리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씨는 사실상 조폭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일단 석방이 됐지만 보완수사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후계구도를 둘러싼 조직 내부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칠성파의 세력이 한 단계 더 약화되면서 부산지역 폭력조직 간 주도권 쟁탈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산에서는 신20세기파, 영도파, 유태파 등 반칠성파 연합세력이 주도권 다툼을 하는 상황인데 이씨가 구속되면서 일인자 자리를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것.


경찰 관계자는 “한 조직의 우두머리가 구속되거나 은퇴를 할 때마다 다른 조직 간 세력다툼이 심해지는 양상을 보였다”며 “이번 이강환 검거 후폭풍에 대비해 조직폭력배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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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