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IMF 폭탄 맞았던 기업 눈부신 ‘경영 회생기’

만신창이 부실기업 열성으로 화려하게 비상하다!


1996년 재계는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며 자축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IMF가 찾아왔고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방만 운영을 해왔던 중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하지만 부실기업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기업 회생을 위해 뼈아픈 인내의 시간을 버텨 온 기업들이 있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한 마음으로 노력해 온 이들 기업은 최근의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탄탄한 성장을 자랑하며 재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IMF 당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재기에 성공, 화려한 부활을 알리고 있는 기업들의 ‘경영 회생기’를 살펴봤다.


화승그룹 계열사 8 → 22개 ‘르까프’ 넘어 종합기업 성장
대한생명 자산규모 7년 만에 29조 → 56조 2배 ‘껑충’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제37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영립 화승그룹 회장은 경영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외환위기 당시 부도났던 기업을 10년여 만에 연매출 3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화승그룹…살벌한 구조조정
6년 만에 ‘매출 3조원’ 성장

고 회장은 기념식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눈앞이 캄캄했던 시절을 떠올리니 더 감격스럽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고 회장의 말처럼 화승그룹은 IMF 이후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98년 그룹 계열사 가운데 화승과 화승상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해외로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었다. 국내 대표 신발 브랜드 ‘르까프’와 재계 22위에 랭크됐던 그룹의 명성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계열사 화승T&C의 대표로 있던 고 회장이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의 부름을 받고 부도난 두 회사의 대표로 임명됐다. 기업 회생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후 화승그룹은 고 회장을 선두로 전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룹은 14개 계열사 중 금융, 레저, 제지 등 비주류 업종을 정리, 8개 계열사로 줄였고 화승과 화승상사는 합병했다. 1200명이던 직원을 300명까지 줄이는 등 살벌한 정리해고도 단행했다.

그룹 재건에 대한 고 회장의 강력한 의지도 보태졌다. 고 회장은 대표로 임명된 뒤 전 재산을 담보로 9억3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마련해 회사 자금에 보탰다. 2005년 피부암과 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직원들과 함께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등 기업 회생 의지를 불태웠다.

노사가 함께한 이 같은 의지에 화승그룹은 부도 이후 불과 6년여 만에 기업정상화를 이뤘고 외환위기 직후 84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약 2조700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현재 화승그룹은 신발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과 정밀 화학제품, 스포츠 패션, 자원 무역을 아우르는 종합기업으로 성장, 국내외에 총 22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고 회장의 금탑산업훈장 수상으로 화승그룹이 박수로 축하하던 지난 17일, 대한생명에서도 감동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대한생명은 이 날 생보업계로는 동양생명 이후로 두 번째, 대형생보사로는 처음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됐다. 대한생명은 상장 첫 날부터 폭발적인 거래량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날 하루 거래량은 6534만2610주로 신규종목 상장 첫날 거래량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1946년 국내 토종 1호 생보사로 문을 연 대한생명은 출발 당시부터 업계를 선도하며 빠르게 사세를 확장해왔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출발했던 기업은 1979년 보유계약액 1조원을 달성했고, 1985년엔 여의도 63빌딩을 준공하기도 했다. 이후 대한생명은 1996년 총자산 10조원을 돌파하며 업계 2위 생보사로서 고속 성장했지만 IMF 당시 발목이 잡혔다.

외환위기로 보험해약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대주주였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자금횡령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 등이 회사를 위태롭게 했다. 결국 1999년 금감원 조사에서 자산 초과 부채 규모가 3조원에 달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됐다. 이후 대한생명에는 3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수혈됐고 3년 뒤 한화그룹에 매각됐다. 당시 대한생명 인수를 두고 업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김승연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에 직접 입찰제한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한생명…한화그룹 매각 후
업계 2번째 코스닥 상장 ‘결실’

이후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한 김 회장은 당시 맡고 있던 한화석유화학 등 타계열사 대표이사직 마저 그만두며 2년여 동안 직접 대한생명을 이끌었다. 그룹 차원의 이 같은 경영정상화 노력에 이후 대한생명은 빠르게 회복세를 보였다. 인수 다음해인 2003년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업계 3위로 밀렸던 시장점유율이 2위로 올라섰으며 2008년 4월엔 인수 당시 2조2906억원에 달했던 누적결손금 전액을 털어냈다.

2002년 29조원에 달했던 자산 규모도 지난해 56조원으로 두 배나 성장했으며 매출도 11조원에서 14조원으로 크게 향상했다. 대한생명은 이번 코스피 상장을 발판으로 앞으로 글로벌 생보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실제 대한생명은 이번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 중 4800억원은 영업조직 구축에, 3000억원은 해외시장 진출과 수익원 다각화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진로…‘참이슬’ 신화의 성공
리바트…‘종업원 지주제’ 해법

올해 창립 86주년을 맞는 진로도 IMF의 높은 파고에 휩쓸렸다가 기사회생한 대표 기업이다. 1924년 ‘진천양조상회’라는 이름의 주류회사는 특유의 두꺼비 심볼을 선보이며 1970년대 국내 소주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진로는 유통, 제약, 건설 분야 등 다방면에 진출하며 덩치를 키웠고, 1997년에는 매출 3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재계 20위권에 진입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부도로 이어졌고 진로는 2003년 1월 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진로의 명성을 한 순간 바닥으로 떨어뜨린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5000억원 규모의 분식 회계 혐의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수장을 잃은 채 2003년 5월 본격적인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로는 오로지 ‘땀’과 ‘몸’으로 기업 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말단사원부터 임원까지 기업 회생을 위해 발로 뛰며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린 것.

당시 직원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마케팅으로 판로를 개척한 제품이 바로 ‘참이슬’ 소주다. 직원들의 이 같은 노력이 힘입어 ‘참이슬’은 생산 기업이 법정관리 중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55.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소주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이후 2005년 3월에는 하이트맥주컨소시엄이 롯데, 두산, CJ 등 막강한 대기업을 물리치고 인수전에서 성공을 거두며 진로는 ‘제 2의 성장기’를 맞았다.

진로는 그해 7월 하이트-진로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알렸고, 2개월 뒤 법정관리를 종료했다. 2007년 4월부터는 경쟁사 오비맥주를 제치고 하이트 맥주를 업계 1위로 올려놓은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이 진로의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옮겨오면서 또 한 번 힘을 실었다. 이후 진로J 등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한 진로는 꾸준히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소주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진로는 지난해 10월에는 상장 폐지 6년여 만에 재상장에 성공해 안정적인 자금 확보의 통로를 마련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한때 만년 적자로 ‘퇴출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 리바트 역시 IMF를 성공적으로 딛고 일어선 기업이다. 33년 동안 가구 생산만을 전문으로 해 온 가구전문기업 리바트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주식 1주당 25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리바트 만성적자 퇴출 10년 만에 역대 최고 매출 달성
진로 상장 폐지 6년 만에 재상장·소주시장 1위 ‘굳건’ 


지난해 영업실적에 따른 배분 조치로 리바트의 2009년 매출액은 3782억원을 기록했다. 리바트 탄생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다. 영업이익도 222억원으로 전년 대비 7.7%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20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1.56%나 증가했다. 하지만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 리바트는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1977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종합목재산업으로 출발한 리바트는 1998년 그룹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룹이 구조조정을 위해 부실계열사인 리바트를 분리하기로 결정한 것. 당시 리바트는 매년 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누적적자만 1000억원을 넘어섰다. 자본금 470억원에 부채가 32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기업의 부실이 심했다. 1998년 그룹의 계열사 분리로 고려산업개발에 합병된 리바트는 임금 15% 삭감 정책과 동시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3000명이던 직원들은 자발적인 이탈로 1000여명이 남았고 이듬해 300여명으로 줄었다. 리바트는 남은 직원들의 퇴직금과 협력업체 및 대리점의 힘을 합쳐 1999년 자본금 50억원의 ‘종업원 지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영업이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다. 리바트는 협력업체에 생산라인을 맡겨 생산을 책임지는 동시에 제조원가를 절감하는 ‘소사장제’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물류배송회사와 협력해 가구를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택배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같은 택배시스템은 리바트가 업계 최초로 시행한 것으로 소비자가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선정하면 회사가 공장에서 제품을 직배송하는 것이다. 리바트의 이 같은 방안들은 원가 인하로 인한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져 매출 증대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리바트는 ‘종업원 지주회사’로 옷을 갈아입은 지 만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한 뒤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해엔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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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