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독설이 부상하면서 북한 정권의 후계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안팎에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 대북기관, 대북전문가, 언론마다 각기 다른 의견과 분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김 위원장은 공식적으로 3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배다른 자식을 포함해서다. 이들을 중심으로 후계구도가 가시화될 전망인 가운데 이 과정에서 출현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돌발 변수를 분석해 봤다.
“위독하다.”
“문제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꼭 참석해야 할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기념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불거진 건강이상설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그의 병세가 어떻든 이번 일을 계기로 북한의 후계구도가 눈앞의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3대 세습’ 가나
올해 66세인 김 위원장의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후계자를 지명해야 할 시기가 임박했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인 고 김일성 주석(1994년 7월 사망)이 62세이던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후계구도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은 김 위원장의 아들과 친인척, 그리고 군부체제 등 3가지 시나리오로 압축된다.
현재로선 북한체제의 특성상 ‘포스트 김’은 그의 아들 가운데 한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3대 세습론’이다. 김 위원장의 가족관계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정보기관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김옥 등 지금까지 모두 4명의 여성을 부인으로 맞았다. 그는 이들과 사이에서 두 딸(설송·일순)을 제외하고 3명의 아들을 두고 있다. 장남 정남, 차남 정철, 3남 정운 등이 그들이다.
이중 후계자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은 정남이다. 올해 37세인 정남은 김 위원장과 배우 성혜림의 사이에서 태어난 실질적인 장남. 그는 한때 후계자 1순위였다. 정남은 어린 시절 김 위원장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외국 유학을 통해 서방세계 사정에 밝다.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이복동생들이 아직 어리다는 점도 힘을 보탠다.
그러나 유학 중 방탕한 생활로 그는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났다. 또 친모 성혜림의 사망과 외가의 서방 탈출로 정남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특히 2001년 가짜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하려다 적발, 김 위원장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후 정남은 ‘국제 떠돌이’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행적은 한마디로 ‘신출귀몰’이다. 마카오를 근거지로 일본, 중국, 유럽 등지를 전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김정남이 북한 정권에서 버림받았다’,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탈락했다’등의 소문을 뒷받침한다. 일각에선 본인 스스로 후계문제를 외면한다는 얘기도 있다.
이에 따라 정남의 이복동생인 정철과 정운이 유력 후계자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김 위원장과 2004년 사망한 고영희 사이에서 출생한 두 형제가 후계자로 부상한 것은 2002년부터다. 그 무렵 북한 군부는 이들의 생모인 고영희를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표현한 자료를 발표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추대됐던 과정과 흡사하다. 김 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에 대한 우상화도 후계자 추대 이후 진행됐다. 따라서 북한 군부의 ‘고영희 우상화’는 김 위원장이 고영희의 아들 중 한명을 이미 후계자로 낙점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철은 27세, 정운 24세다.
김 위원장의 자녀가 아닌 제3의 인물이 후계자가 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그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주인공이다. ‘북한 2인자’장성택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가 2004년 정남을 지원한 문제로 실각했지만, 2006년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신설된 당 행정부장으로 임명되면서 권력의 중심에 부활했다.
지금도 그는 권력 핵심부에서 정남을 지원사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철은 장성택과 라이벌로 비춰지는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지지를 받고 있다.
후계자가 군부에서 나올 가능성과 군부 중심의 집단지도체제 전환도 북한의 후계구도 시나리오 중 하나다. 장성택 행정부장과 김영춘 국방위 부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이 주도하는 비상체제가 가동되는 방안이다.
항간에선 김 위원장이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처럼 아예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거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처럼 노환·질병 등으로 통치가 불가능한 시기에서나 후계자를 내정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후계자 선정이 계속 미뤄질 경우 권력승계를 둘러싼 당·군 내부 암투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의 후계자는 김 위원장의 아들과 친인척, 그리고 군부 등에서 나오는 3가지 시나리오로 진행될 수 있다”며 “그러나 김 위원장이 만약 급작스러운 유고 상황이 발생하거나 병이 호전되더라도 자식들을 중심으로 후계권력 쟁탈전이 가시화되고 심할 경우 유혈 군사충돌 사태까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혈 군사충돌 우려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누가 될지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의 관심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후계자 내정을 위한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물론 공식 확인된 사실도 없다. 정부 당국자도 “현재까지 후계자 내정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과연 북한의 다음 최고권력자가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