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마지막 금싸라기 터 잡아라”
한국전력은 전남 나주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국가균형발전위 등의 심의를 거쳐 올해 말쯤 착공에 들어가 오는 2012년까지 완공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7월 한전은 이같은 본사 지방이전계획안을 확정해 정부에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계획안 골자엔 본사 이전 후 서울 사옥 활용안이 빠져있었다. 한전이 머리를 싸맨 대목이다. 일각에선 한전이 이 부지를 팔지 않고 재개발해 임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으나, ‘매각후 이전’이란 정부의 입장은 그대로다. 정부는 한전 뿐만 아니라 이전할 공공기관 터를 매각해 이전비용을 마련하도록 하고, 만약 매각이 안 되면 토공과 주공이 매입하는 기본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전 부지 처리와 관련 최종안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당초 방침대로 매각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한전도 계획안에 부정적인 견해 없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이 부지는 강남 마지막 금싸라기 땅으로 꼽힌다. 규모는 7만9천3백41㎡(약 2만4천평)로, 도곡동 타워팰리스(7만3천㎡)와 삼성동 아이파크(3만2천2백59㎡)보다 넓다. 공시지가가 평당 7천만원에 육박해 시가로 치면 2조원이 넘는다.
부동산업계에선 고급 아파트를 지을 경우 3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란 계산도 나온다. 이 부지는 대로에 붙어 있지만 상업용지를 뺀 나머지 7만5천9백41㎡가 주거용지 용도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개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쯤 되자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들이 한전 터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전 삼성동 본사 부지 개발사업을 놓고 대기업들이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노른자위 땅에 군침을 흘리는 기업들은 한전이 매각 작업에 나선다면 곧바로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복안이다.
삼성동 사옥 부지 놓고 재벌그룹간 물밑 신경전
입찰 대비해 사업성 검토…부동산전담팀 가동도
현재 직·간접적으로 매입 의사를 밝힌 곳은 3∼4개사. 재계에 따르면 A그룹은 대표 계열사를 앞세워 실무적인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 중이며, B그룹은 부지 입찰에 대비해 사업성 검토를 끝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질세라 C그룹은 ‘프로젝트 팀’까지 구성해 자금마련에 나섰으며, D그룹도 그룹 내 부동산전담팀을 가동해 정보를 수집하는 등 극비리에 매입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들 기업은 대규모 주상복합단지 개발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노리고 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역세권 등 활용가치가 높은 한전 부지에 아파트를 세우면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 1조원 이상의 개발이익은 보장된 셈이나 다름없다”며 “2조원가량의 매입비를 감안하면 웬만한 기업은 쳐다보지도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난해 부동산시장의 ‘큰손’인 재벌그룹들은 부동산을 통한 수익창출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계열사 소유의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앞 다퉈 매각한 바 있다. 부동산 매각으로 막대한 차익을 거둔 대기업들이 다시 부동산에 재투자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 재벌그룹 소유의 부동산은 매각과 매입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재계와 한전 측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 정부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며 “매입을 바라는 기업들은 현재로선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전 관계자도 “자체 보유할지, 토공에 넘길지, 기업에 매각할지 등의 부지 처리안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전 내부엔 부지 매각과 관련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을 품에 안을지 주목된다.
한전 부지 인수전 복병
‘제2의 코엑스?’
한국전력의 강남 삼성동 사옥 자리에 군침을 흘리는 대형기관도 있다. 바로 한국무역협회다.
한전과 이웃한 무역협회는 이 부지에 국제적인 컨벤션센터 개발을 희망하고 있다. ‘제2의 코엑스’를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도 “한전 부지 개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협회 측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협회 관계자는 “한전 부지에 컨벤션센터를 세워 코엑스와 연계하면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침이 나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