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성추행, 몰카, 혼숙 ‘요지경 따로 없네’
고시원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화재 문제다.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게 다름 아닌 고시원 화재다. 지난 2006년 7월에 2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고시원 화재가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경기도 용인시의 또 다른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건 당시 무려 7명이 사망했다.
2명이상 걷기 힘든 구조
‘불나면 다 죽는 거다’
하지만 이 고시원은 이미 소방시설 완비증명까지 받아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또한 소방 당국은 사건 직후 옥내 소화전과 경보시설 역시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고 각 방에 소화기역시 설치되어 있어 기본적인 소방 장비 설비에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소방 시설과 관련해서는 특별한 불법이나 탈법이 없이 정상적인 법절차를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건이 발생된 것이 더욱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렇게 정상적인 소방 시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참사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고시원의 기본적인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복도의 폭이 상당히 좁아 2명 이상이 걸어 다니기도 힘들다. 말 그대로 ‘벌집형 구조’에다 미로 형식을 취하고 있어 아무리 소방 시설이 잘 갖춰지고 있다고 해도 한번 사고가 나면 결국에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시원 총무는 “사실 가끔 신문에서 고시원 화재 소식이 들려 나도 나름대로 우리 고시원을 살펴봤다. 문제는 화재가 일단 발생하면 끝장이라는 것이다. 죽는 사람이 안 나올 수 없다. 60~70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에서 어떻게 안전한 대피가 가능하겠는가. 설사 탈출구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망자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폭로했다.
소방당국이 끊임없이 단속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잘 개선되지 않는다. 최근 전북지역의 98개 고시원에 대한 안전 검검 결과 70%에 육박하는 68곳이 ‘불량 판정’을 받았다.
경기도 8백1개의 고시원은 30%, 충남지역 38개 고시원 중에서도 34%가 마찬가지의 불량 판정을 받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고시원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혼숙, 신음소리
그리고 몰카
그렇다면 이런 고시원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국내에 고시원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198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는 신림동의 고시촌이 ‘원조’였다. 또한 이때만 해도 고시원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고시원이었다.
이후 대학가 근처의 고시학원이나 입시학원이 몰려 있는 곳에 차츰 고시원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이제 고시원은 본격적인 ‘염가형 숙박시설’로 변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97년 IMF 구제 금융 시절에 완전히 대중 속에 뿌리박았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보다 싼 숙박시설’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고시원을 우후죽순으로 생기게 한 계기가 됐던 것이다. 최근에는 기존보다 고급화된 고시원이 생기면서 나름대로의 차별화도 생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시원에는 화재 및 안전상의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혼숙, 성추행, 몰카 등 다양한 성문제와 성범죄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선 혼숙의 문제는 생각보다 타인들에 대한 피해가 심하다. 고시원 자체가 방음 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보니 약간의 신음소리도 바로 옆방으로 ‘직접’ 전달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일용직 노동자들은 값비싼 모텔비를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자신들이 숙박을 하는 고시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피해는 당연히 옆방에 있는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해 고시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한 고시생은 “지방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서울의 고시원 상황이 어떤지 잘 몰랐다. 그저 이름이 고시원이니 말 그대로 진짜 고시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고 보니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옆방에 노가다 아저씨가 살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를 데려와서 잠자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게 어디 조용히 되는 일인가. 여자의 신음소리 때문에 공부에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따지고 보면 나도 혈기 왕성한 청년인데, 그런 식으로 자극을 받으니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결국에는 고시원 주인한테 이야기를 하고 환불을 받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때로는 고시원에서 만나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관계가 지속되면 당연히 성관계도 가지게 마련이고 그 장소는 고시원일 수밖에 없는 것.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고시원의 입장은 어떨까.
남녀공용 고시원
몰카 가동중?
서울 강북 한 고시원 업주 H씨는 “솔직히 말하면 주인인 내가 항상 고시원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상은 잘 모른다. 하지만 정작 그런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딱히 뭐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입주 전에 규칙을 알려주기도 하고, 고시원에 ‘혼숙 금지’라는 말을 써놓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어오기 전에 ‘혼숙하면 나가야 합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혼숙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면 되겠는가.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각자의 예의범절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일들은 일부 그냥 그렇게 묵인되는 경우가 많다. 고시원 총무에게 약간의 돈을 주면서 무마시키기도 하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나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일부 변태 성향을 지닌 남성들의 경우 고시원의 여자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일부 ‘여성 전용’ 고시원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고시원이 남녀공용이란 점에서 몰카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성추행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남성이 여성의 방을 몰래 엿보다 발각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고 심지어 보안이 허술한 틈을 타서 외부인이 고시원으로 들어가 여성을 성추행하고 달아나는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고시원에서 일하는 총무가 여성을 강제 성추행한 경우까지 있었다는 것. 지난 2006년 3월에는 고시원 총무 A씨가 자신의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는 A양을 뒤따라나가 강제로 키스를 하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물론 적절한 사법처리를 받기는 했지만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는 여성들로서는 보통 심각한 정신적 피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시설에 대한 보완
못내 아쉬워
이 같은 성추행 및 몰카 사건이 많이 발생하자 각 고시원에서는 남녀 층을 분리하고 화장실 및 욕실 사용도 철저하게 분리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일단 ‘마음’을 먹는 남자들에게는 그같은 ‘철저한 분리’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딱히 사전 예방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문단속’을 철저히 하는 것 밖에는 다른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고시원은 경제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는 분명 값싼 휴식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값이 싸다는 이유 때문에 목숨을 담보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 불안하게 성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것을 감내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고시원 업주들에게 보다 철저한 안전 점검 및 시설에 대한 보완을 촉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는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