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여중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김길태가 붙잡혔다. 사건발생 보름 만이다. 범인이 범행 이후 사건현장 인근에서 한 순간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긴 시간이다. 이 때문에 사건발생부터 검거 후까지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허점투성이인 경찰의 수사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됐다는 비난도 커지고 있다.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 검거 지체 이유로 허술한 수사 꼽혀
초동수사부터 판단 잘못 번번이 범인 놓쳤다는 비난 받아
부산 사상구 여중생 이모(13)양을 살해한 김길태(33)가 잡힌 것은 지난 10일 오후 3시쯤이다. 무려 2주가 넘도록 도피행각을 벌였던 김길태가 숨어있었던 곳은 사건현장 코앞이었다. 이곳에서 자신을 찾아 다니는 경찰들의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눈앞에 있는 범인을 찾는데 2주의 시간을 허비해 인근 주민들과 국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경찰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초기부터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 비난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사건 당일부터 판단 ‘삐끗’
경찰의 허술한 대응은 이양의 실종 당일인 지난달 24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여러 가지 정황은 이양이 납치됐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력이 나쁜 이양은 안경을 쓰지 않고 나간 데다 휴대전화도 집에 놓고 사라졌다. 또 집 화장실 바닥에서 외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 발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출 등 단순한 실종사건이라고 규정했고 본격적인 수색을 다음날 아침으로 미뤘다.
또 경찰은 어떠한 증거나 근거도 없이 이양이 살아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러다 보니 이양의 시신이 발견됐던 주변 물탱크 등은 수색대상에서 제외했고 빈집이나 폐가, 인근 산 등을 뒤지는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는 김길태의 전화를 두 번이나 받고도 경찰은 범인을 찾지 못했다. 지난달 27일 경찰은 이양 실종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양의 집 부근 빈집에서 성폭행 전과자인 김길태의 발자국과 지문 등을 발견하고 김길태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을 본 김길태가 형사에게 공중전화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전화를 걸었던 것. 그 후에도 김길태는 한번 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경찰은 김길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수많은 인력을 투입하고도 2주 동안이나 범인의 행방을 알 수 없었던 부실한 수색작업도 논란거리다. 수색작업 초기 2만여명의 인력과 헬기, 수색견 등을 동원했지만 김길태를 번번이 놓친 것. 지난 3일 새벽에는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기까지 했다. 이날 경찰이 이양이 살던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빈집에서 숨어 있는 김길태를 발견했지만 손전등 불빛을 본 김길태가 도주한 것. 경찰은 예상 도주로 마저도 봉쇄하지 못해 검거에 실패했다.
공개수사 선언 시점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가 예전 범죄 때는 여성을 해치지 않아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며 공개수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양의 시신이 지난 6일에야 발견된 점으로 미뤄 공개수사 이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용의자로 지목되고 공개수사가 시작된 후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김길태가 그 후 이양을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것.
문제는 이양의 정확한 사망 시점을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7일 이양의 시신을 부검한 양산부산대병원 부설 법의학연구소는 이양의 시신이 오염과 부패가 심해 사망시점을 밝히는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결국 정확한 사망시점을 아는 것은 김길태가 유일하지만 관련된 혐의를 부인하고 진술을 거부하고 있어 이를 파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 도피 당시 김길태의 휴대전화 소지유무를 경찰이 파악하고 있었느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김길태를 검거하기 전 범인이 휴대전화와 인터넷 등을 사용하지 않아 첨단 장비를 통한 디지털 수사가 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거 이후 김길태가 휴대전화를 두 대나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경찰은 한 대는 배터리가 방전됐고 한 대는 분실신고 돼 착발신 기록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범인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히 몰랐던 부실한 수사는 도마에 오를 수 밖에 없다.
또 김길태가 검거된 장소 인근에서 절도와 은신 등의 흔적이 나왔다는 시민의 신고를 경찰이 무시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비난을 사고 있다. 지난 7일 김길태가 마지막으로 머문 장소와 5m 떨어진 미용실에서 현금 27만원이 도난당했다. 미용실 업주는 밤마다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고 돈이 없어진데다 김길태가 어린 시절 근처에 살았다는 것이 생각나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제보를 무시하고 가족의 소행으로 넘겼다는 것. 만약 경찰이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심층적인 수사를 했다면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김길태의 행방을 흔적을 잡았을 수도 있어 비난이 일고 있다.
시민 제보도 무시?
김길태를 검거한 마지막 순간까지도 경찰보다는 시민의 힘이 더욱 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길태를 붙잡는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인근 주민 김용태(50)씨는 “경찰 스스로 김길태를 검거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김길태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검거 당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민제보 등 도움없이 경찰의 자력으로 검거했다”고 밝혀 주민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