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일했던 회사의 사장을 살해한 전 운전기사가 덜미를 잡혔다. 도박에서 진 빚을 갚을 돈을 마련하는 것이 납치와 살인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그 내막에는 복수극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사장 부인과 내연관계였던 사실이 들통 나고 성폭행혐의로 고소를 당한데 대한 분풀이로 살인을 계획했던 것. 여기에 해고를 당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자 끔찍한 복수계획을 짠 것이다.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자.
돈과 복수 위해 중소기업 사장 납치 후 살해한 운전기사
사장 부인과 한때 내연관계로 드러나 공모 가능성 수사
지난달 11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중소기업 사장인 이모(46)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을 하기 위해 이곳에 갔다가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 괴한들의 정체는 주범 김모(42)씨에게 사주를 받은 김모(38)씨와 허모(43)씨다. 이들은 다짜고짜 이씨를 이씨의 에쿠스 승용차에 태웠다.
출근길에 비명횡사
그리고 오후 1시쯤 이들은 경기도 시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합류했다. 일당은 이씨와 함께 준비해 둔 45인승 전세버스로 옮겨 탔다. 승용차와 달리 검문을 당할 가능성이 낮아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쉬울 거란 판단에서였다. 또 버스는 CCTV에 찍힐 우려도 낮아 납치극을 벌이기에는 그만인 이동수단이었다.
그 후 이들은 이씨에게 3억을 내 놓으라고 요구했다.
7명의 괴한에 둘러 싸여 낯선 곳에 납치된 이씨는 결국 회사 자금 담당인 조카에게 “대박 사업이 있는데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해 오라”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주범 김씨의 형이 안산시 고잔동에서 조카를 만나 3억원을 받았다. 돈 거래가 끝난 뒤 풀려나기만을 기다렸던 이씨. 하지만 이들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후 10시쯤 버스 안에서 붕대로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 이어 8kg짜리 아령 2개를 이씨의 몸에 묶은 뒤 12일 자정 무렵 평택호에 시신을 던졌다. 이처럼 출근길에 납치됐다 소리 소문 없이 죽음을 당한 이씨. 그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는 납치 이틀 후인 지난달 13일 풀리기 시작했다. 가족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서 베일이 한 꺼풀씩 벗겨진 것.
그리고 경찰은 지난달 26일 주범 김씨를 비롯한 일당을 검거했다. 이씨의 휴대전화 위치 이동경로와 김씨 형제의 동선이 일치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벌인 끝에 범인을 잡은 것. 이씨의 시신은 지난 6일 오후 평택호에서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주범 김씨는 2006년 이씨의 운전기사로 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5년 10월 우연히 알게 된 이씨 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당시 이씨는 회사 직원을 해고한 뒤 부당해고와 관련된 고소 등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이씨의 부인은 남편에게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채용하라며 김씨를 소개시켰다. 이에 2006년부터 1년 동안 김씨는 이씨의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문제는 이씨의 부인과 김씨가 내연관계였다는 것. 김씨는 내연녀이자 사모님인 이씨의 부인에게 남편의 사생활 등의 정보를 제공하며 돈까지 얻어 쓴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씨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차린 뒤 김씨를 해고한 것. 이뿐만 아니다. 이씨는 자신의 부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부인이 진술을 바꿔 김씨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김씨가 이씨를 무고혐의로 맞고소하는 등의 싸움이 이어졌다. 그 뒤 법정공방은 끝이 났지만 이씨에 대한 김씨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김씨를 괴롭힌 것은 빚이었다.
해고를 당한 뒤 도박빚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던 김씨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려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씨를 납치해 돈을 뜯어낸 뒤 죽이겠다는 것. 이에 김씨는 지난 1월 자신의 형에게 계획을 말했다. 이를 들은 형은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범행을 함께 할 것을 제안했고 치밀한 범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씨가 집과 회사를 오가는 동선을 파악하고 범행 후에는 필리핀으로 도주를 할 계획까지 짜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범행에 성공한 이들 일당은 빼앗은 돈 3억원을 나눠가졌다. 그 중 1억원은 김씨 형제가, 나머지 일당은 2억원을 가져가 채무변제와 유흥비 등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해지한 뒤 도주를 할 날짜만을 기다리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경기 안산상록경찰서는 지난 7일 강도살인 혐의로 김씨와 김씨의 형 등 공범 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또 달아난 공범 허씨를 지명수배했다.
사장 아내도 공모?
이처럼 김씨는 돈과 복수를 위해 한때 자신에게 월급을 줬던 사장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남아 있다. 과연 숨진 이씨의 부인이 이번 사건에 가담을 했느냐는 것. 김씨와 불륜관계 였던데다 김씨가 경찰에서 한 진술 때문이다. 김씨는 경찰에서 “이씨가 있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나를 모함하고, 날 죽이기 위해 1억5000만원을 주고 사람을 고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다 내연녀(이씨 부인)가 남편을 죽여 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기 때문에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이씨의 부인이 이번 사건에 가담했는지의 여부를 수사할 계획이다. 안산경찰서 형사과 관계자는 “곧 이씨의 부인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수사를 시작할 것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