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사라진 김정은 어디서 뭐하나

와병? 풍문의 진위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절뚝거리며 공개석상에 나타났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노동당 제1비서가 종적을 감췄다. 그의 신변과 관련된 추측성 보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북한 당국이 평양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반도 정세의 급변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겸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달 3일 모란봉악단 신작음악회 관람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25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2차 회의에도 불참했다. 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제12기 5차 회의 이후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모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다. 갑자기 종적을 감춘 김 제1비서를 두고 신변이상설 등 갖은 설이 난무하는 상황이다.

각종 설 무성
과연 진실은?
 
지난달 25일 북한 <조선중앙TV>는 ‘불편하신 몸’이라며 김 제1위원장이 현지 시찰 도중 다리를 저는 모습을 내보냈다. 이례적으로 건강이상설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북한 최고 지도자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을 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김 제1위원장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참한 적이 없는 최고인민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리까지 절자 뇌어혈, 발목염좌, 통풍 등 구체적 병명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지난 29일 홍콩 <동방일보>는 김정은이 측근이자 2인자인 황병서에 의해 연금됐다는 소문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제1위원장과 관련된 루머는 국내보다 중국에서 더 활발하게 생산됐다. 중국의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웨이보’ 등에서는 “김정은이 관저에서 친위대의 습격을 받아 구금됐고, 정변은 조명록 총정치국장이 주도했다”는 내용의 추측성 소문이 나돌았다. 하지만 조명록은 지난 2010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신빙성이 부족해 보인다.
 

29일(현지시간)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북아국장은 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에 참석 중 국내 언론과 만나 “한미 일각에서 김정은 정권이 불안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김정은 정권은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제1위원장 신변이상설에 미국 국무부는 ‘노 코멘트’ 입장을 밝혔다. 30일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이 끝난 뒤 국내 언론과 만나 “관련 보도를 보기는 했으나 확인해줄 만한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미 정부당국자들은 불확실한 루머 확산에 따른 특별한 논평을 내지 않았다.
 
같은 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 인터넷판 ‘신화망’은 평양특파원을 인용해 “현재 북한 내부는 모두 정상적이고 평상시와 다른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확인된 루머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언론이 보도한 대로 몸이 불편한 상태라는 점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다고 보고 있다. 리수용 외무상 등 북한 외교라인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군 내부에 특별한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그의 묘연한 행방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난무하던 중, 중국 국경절인 지난 1일, 김 제1위원장이 신중국 건립 65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양국의 친선을 강조하는 표현이 빠져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친중파 장성택 처형 이후 냉랭해진 양국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주석도 지난 9일 올해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을 맞아 김 제1위원장에게 보내는 축전에서 기존에 강조했던 ‘전통계승·미래지향·선린우호·협조강화’라는 표현을 생략했다. 북·중 혈맹관계가 흔들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일 북한전문대체 <NK지식연대>가 현지 통신원을 인용해 김 제1위원장이 집중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기간 중 중요한 보고는 그의 친여동생 김여정이 대신 받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여정은 지난 3월 최초로 북한 매체상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그는 김경옥·황병서와 함께 ‘동지’로 호명돼 남한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부부장을 맡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달 4일에는 북한매체에 리대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보다 먼저 호명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여정이 당 중앙위 부장급 이상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통신원은 김여정의 공식직함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서기실 실장이지만, 사실상 당조직지도부 수장역을 맡고 있으며 당정치국 운영도 관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여정은 본인 주도로 지난달 6일 당정치국 긴급회의를 열어 김정은의 집중 치료를 건의했다고 통신원은 덧붙였다.
 
건강이상설 이어 신변이상설 급부상

온갖 억측 난무…각종 풍문 진위는?
 
당시 결정된 사항은 크게 4가지로, ‘봉화진료소와 만수무강연구소는 김정은의 건강을 빠른 시간 내에 원상 회복시키기 위해 의학적 치유에 필요한 기간동안 집중적인 특별진료를 실시’하고, ‘김정은에게 과중한 업무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모든 간부들과 일꾼들은 김정은의 방침과 지시를 책임적으로 추진하고 혁명적으로 관철해 최고수뇌부의 안녕과 건강을 지키는 데 집중’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다.
 
특히 ‘진료기간 내에 김정은이 마음편히 진료에 임할 수 있도록 군대와 당과 국가활동에 제기되는 중요한 보고나 제의서는 김여정 제1부부장에게 집중’한다는 사항 역시 담겨 있고, ‘당과 군대, 국가활동의 모든 분야에서는 김정은의 집중진료기간을 비상전투시기로 여기고 긴장하게 일하고 혁명적 경각성을 높일 것’이라는 사항도 있다.

‘서한 정치’
요양에 무게
 
김 제1위원장은 이 회의에 참석해, 당정치국 상무위원들의 간청을 듣고 치료 제의를 수락했다고 전해졌다. 통신원은 김정은의 건강에 대해 그가 향정신성약물을 복용해 현지지도나 촬영 때는 건강이 괜찮아 보이지만, 고도비만으로 인한 심혈관질환과 간기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또 지난 8월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북한에서는 경풍(뇌에 이상이 생겨 손과 발, 다리 등을 저는 증상이 수반되는 병)이라 부르는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김정은이 원산과 강동의 가족별장에서 상당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최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요양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또 <포린폴리시>는 김정은이 아픈 것이 아니라면 모든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면서 암살 시도를 우려해 모습을 감췄을 가능성과 가택연금 상태여서 일군의 장성들이 북한을 통치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북한 군부 핵심인사들이 체제 전복을 노리고 김정은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쿠데타설까지 나왔다.
 
갖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정부 당국은 외국 의료진이 김 제1위원장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평양을 찾은 정황을 파악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기는 하지만 통치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그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15년 만의 외무상 유엔총회 파견과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의 유럽 순방 등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실제 김 제1위원장은 서한과 축전을 통해 건재함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열린 청년동맹 초급일꾼대회에 서한을 보냈고 28일에는 리수용 외무상을 통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으로부터 받은 북한 정권 수립 66주년 축전에 대한 답전을 전달했다. 중국 건국 65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정말 건재한 걸까. 오는 10일 열릴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지난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 내용 중 북한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들며 비난공세를 펼친 바 있다.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근혜의 입이야말로 북남관계를 악화시키고 불신과 대결을 조장시키는 첫 번째 화근”이라고 밝혔다. 정책국은 “남조선 땅에 미국상전의 핵탄을 발달시킨 주범이 그 애비이고 유신독재를 그대로 유전받아 미국의 확장된 핵억제 전략 실현에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상전의 핵 타격수단들을 빈번히 끌어들여 우리를 겨냥한 핵전쟁연습에 광분하고 있는 장본인도 다름 아닌 그 애비의 딸인 박근혜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한반도 정세 급변 가능성↑

그가 없다면…다음은 누구?
 
정책국은 또 박 대통령의 핵 포기 요구에 “우리 핵 억제력은 이미 초정밀화·소형화단계에 진입한 상태에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미국 놈들의 본거지와 태평양지역의 크고 작은 미제침략군사기지들을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와 수역에서 타격할 수 있는 항시적인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억세게 틀어쥔 이 핵 보검을 어째보려고 돌아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처사는 없다”고 항변했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통일부를 겨냥해 통일부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뭇매를 대신 맞아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통일부를 애초에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통일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정부의 통일방안에 대해 비난하면서 연방제통일방안 지지를 촉구한 것이다. 1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무성 군축 및 평화연구소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김일성 주석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제시한 지 34돌을 맞이하게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변인은 “6·15공동선언에서 북남쌍방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남측의 연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변인은 “지금 조선반도에서 분열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통일방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조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집권유지를 위하여 각양각색의 통일론을 들고나와 통일문제를 국제화하려는 남조선당국의 흡수통일 책동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드레즈덴선언’ 등을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한반도 통일문제를 독일 통일과 결부시키면서 흡수통일의 야망을 드러내지 말라는 주장이었다. 앞서 북한 김일성 주석은 1980년 10월10일 조선노동당 제6차대회에서 남측에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연방제안)’을 제안했다.
 
지난 2000년 남북은 제1차 정상회담 결과물인 6·15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김 제1위원장의 묘연한 행적까지 겹치면서 한반도 정세는 요지부동이다.
 
김 제1위원장은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두 번째 부인인 고영희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족관계는 친형 김정철, 여동생 김여정이 있고 그밖에 이볶 누나 김혜경, 이복 형 김정남, 이복 누나 김설송, 김춘송 등이 있다. 그의 출생 정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김 제1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지는 1983년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한국 정부는 그의 유학시절 여권 등을 근거로 84년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김 제1위원장은 스위스 김나지움(Gymnasium)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2004년에는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인민군 하전사로 입대해 1년6개월 동안 군복무릏 했다.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초고속 진급했다. 이후 2010년 9월27일,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다음 날, 노동당 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 제1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됐다.

묘연한 행적
향후 정세는?
 
2011년 12월17일,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2012년 4월11일, 4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노동당 제 1비서로 추대됐고, 이틀 후엔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에 추대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며 명실상부 최고 권력자로 부상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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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