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거침없는 금 질주를 선보였다. 그런데 이 선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22세 이하의 ‘G세대’라는 점이다. 자신감으로 가득한 이들의 모습은 또 다른 G세대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좌절이나 가난, 열등감 없이 자라온 이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G세대들의 모습에서 비관적인 미래를 전망하기도 한다.
1988년 전후 태어난 G세대,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행진 주목
글로벌마인드, 강대국에 지지 않는 자신감으로 연일 신화 창조
지나친 개인주의, 사회성 결여, 문제해결 능력 부족 취약점으로
과거 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눈물 세리모니다. 조국과 메달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메달리스트들은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으레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메달을 걸고 눈물을 흘린 선수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눈물 대신 얼굴 가득 환희와 기쁨이 넘쳤다. 익살맞게 만세를 부르고 시상대에 넙죽 절을 하고 메달을 깨물면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동양인은 안 된다? NO!
열등감 없는 선수들
마치 맡겨둔 금메달을 땄다는 듯 기세등등하게 시상대에 오른 젊은 선수들. 이들은 대부분 만 22세를 넘지 않는 G세대다. G세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로 ‘Global’의 첫 문자에서 알파벳을 따와 만든 신조어다.
G세대들의 저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한 스피드스케이팅 팀이다. 수십년간 한국 선수들이 넘지 못했던 금메달의 벽을 단번에 무너뜨렸던 것. 이승훈(1988년생), 모태범(1989년생), 이상화(1990년생)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저마다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스피드스케이팅은 서양인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동양 선수들이 가진 체력이나 체격 등의 조건이 서양인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보란 듯이 고정관념을 깼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은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내 주 종목은 1000m다. 기대해 달라”고 말하며 끝없는 자신감을 표현했다. 이승훈 선수나 이상화 선수도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결과물을 내 놓고도 덤덤하게 우승을 기뻐했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예전의 국가대표들이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오기와 근성으로 극복했다면 어린 선수들은 애초에 극복할 열등감 같은 건 없다”며 “무엇보다 체력이나 건강상태 등이 강대국의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자신감의 근원이다”고 전했다.
이 같은 G세대 스포츠선수들의 이유 있는 자신감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만 가진 것은 아니다. 과거 한국선수들은 넘볼 수 없었던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선수가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피겨퀸 김연아(1990년생)와 마린보이 박태환(1989년생)이다. 한국 스포츠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피겨스케이팅과 수영. 하지만 이들 세대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설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G세대가 다른 세대와 확연히 다른 것은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것. 그 근원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다. 이들이 태어났을 당시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적 가난에서 벗어났을 때다. 유례없는 풍요로움 속에 태어난 G세대 가운데 많은 이들은 가난으로 인해 꿈이 좌절되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걸 경험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세계의 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보다 어린나이에 쉽게 해외에 나간 경험이 있는 G세대들에게 다른 나라는 두려움이나 경외심의 대상이 아니다. 조기유학이나 해외연수가 보편화된 점도 이런 현상을 만들었다.
영어강사 이모(32)씨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외국인을 겁내지 않는 점이 눈에 띈다고 말한다. 이씨는 “20대 후반 학생들만 해도 외국인 강사와 독대를 할 때면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 그런 모습은 보기 힘들다”며 “외국에 나간 경험도 많고 학창시절부터 원어민강사 등 외국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 그런지 외국인 앞에서 기가 죽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돈을 쓰고 버는 것에도 적극적이다. 절약이나 저축보다는 소비생활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의식이 생성된 시기에 태어난 G세대는 소비의 즐거움을 잘 안다. 또 자신이 쓸 돈은 자신이 벌어 쓴다는 의식도 강하다.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학창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보편화된 세대이기도 하다.
대학생 정모(21)씨는 “어릴 때부터 사고 싶은 게 생길 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돈을 모아 사는 것이 습관화됐다”며 “절약이 미덕이었던 윗세대들의 소비패턴과 내 또래의 패턴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풍요가
자신감 충만으로
외동자녀 비율이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던 시절 태어난 세대란 점도 윗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낳았다. 부모들에게 전폭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자라온 세대이기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도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표출하는데도 거리낌이 없다.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한모(33)씨는 무엇보다 프레젠테이션 능력이나 토론능력이 뛰어난 것이 G세대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발표하길 꺼리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의 대학생들은 발표자료가 부실하거나 과제물이 빈약하더라도 말로 표현해 점수를 따려는 경향이 짙다”며 “이런 특성은 나이가 어릴수록, 학년이 내려갈수록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대학생 진모(20·여)씨도 글로 써서 내는 리포트보다는 말로 풀어 설명하는 과제물이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진씨는 “시간이 걸려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더 자신있다”며 “학창시절부터 수행평가나 토론을 많이 해서인지 내 또래 학생들은 대부분 나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처럼 G세대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글로벌화된 긍정적 태도로 기성세대들에게 놀라움, 또는 희망을 선사하고 있다. 하지만 G세대에도 부정적인 면은 존재한다. 가장 많은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G세대의 취약점은 사회성 부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기주의적이란 의미다.
이는 특히 직장에서 많이 나타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박모(34·여)씨는 함께 일하고 있는 G세대 후배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화가 치민다고 한다.
박씨는 “처음엔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업무에 뛰어드는 태도에 감탄을 했는데 지켜보면 볼수록 사회성이 결여된 모습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박씨가 G세대들의 업무방식에 불만을 가지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일에만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는 무엇보다 조직원들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과 융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박씨. 하지만 후배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도 오로지 자신이 맡은 업무만 소화하는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박씨는 “물론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함께 수행해야 할 일을 맡았을 때는 조율을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팀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랑곳 않고 칼퇴근하기 바쁜 후배들을 보면 기가 막힐 때가 많다”고 말했다.
책임감·사회성 부족
융화 못하는 취약점도
또 한 가지 박씨가 G세대들에게 놀란 것은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물론 평생직장의 개념은 나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조그만 일에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는 건 너무 경솔한 것 아니냐”며 “학창시절 하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것처럼 직장을 그만두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G세대의 또 다른 취약점은 부모의 과보호 속에서 자라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세세한 보살핌 속에 자란 이 세대들은 사회에 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에 부딪혔을 때 지레 겁부터 먹는 경향이 짙다.
시간강사 한씨는 “얼마 전 한 학생의 어머니에게 딸의 시험점수를 높여달라는 전화를 받고 황당했다”며 “성인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 조차도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세대가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갈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한 취업전문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G세대라도 그들의 앞에는 냉혹한 취업난이 기다리고 있다”며 “책임감 결여나 사회성 부족 등의 취약한 부분을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88만원세대 역시 G세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