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비리 '멘탈갑' 산업은행 대해부

국책은행 맞아? 뒷돈 받는 KDB '사면초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산업은행은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의 중징계 통보에 이어 일부 임직원이 검찰의 수사망에 오르는 등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산업은행은 STX그룹을 상대로 수천억원 규모의 부실대출을 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임직원 금품 수수사건 ▲동부그룹 패키지 매각 실패 ▲은행권 인사개입 의혹 등에 휘말리며 표류 중이다. 위기에 빠진 KDB호, 선장인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은행은 이명박정부 들어 '용광로'가 됐다. 여기서 비유한 용광로는 중의적인 표현이다. '민영화'라는 이슈로 우리 사회를 달궜던 것이 첫째고, 정권 실세와 연결된 '모종의 의혹'이 녹아 없어진 것이 둘째다. 어느 경우든 산업은행은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였다.

산은 임직원
동양 봐줬나

정권이 바뀌고 산업은행에는 새 주인이 들어섰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금껏 무난히 조직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정부 각 기관은 약속이나 한 듯 산업은행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예상치 못한 시점에 궁지에 몰린 산업은행, 홍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먼저 검찰은 산업은행 임직원들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달 26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이선봉)는 산업은행 임직원 3∼4명의 비리 정황을 포착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동양그룹 경영진으로부터 수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동양그룹 측이 카드 매출을 과다계상한 뒤 현금을 되돌려 받는 수법(일명 카드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중 일부 현금을 산업은행 임직원들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은행은 동양그룹 핵심 계열사로 알려진 동양시멘트의 주채권은행으로 확인된다.


검, 임원 동양서 수억 챙긴 의혹 수사 착수
금, STX 부실대출 책임자 10여명 징계 예고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선 산업은행과 동양그룹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불거진 의혹의 핵심은 동양시멘트에 대한 특혜 대출이다. 동양시멘트는 지난 2010∼2012년까지 재무구조개선에 대한 약정을 모두 3차례 불이행했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오히려 약정 조건을 완화해주거나 자금 회수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등 특혜를 줬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또 산업은행의 전·현직 임원진은 동양시멘트의 사외이사나 고문직으로 대거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이 일종의 '관피아'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최근 검찰은 동양그룹 계좌추적 과정에서 의문의 뭉칫돈을 발견했다. 액수는 5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돈의 용처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을 수사망에 올렸다. 앞선 조사에서 동양그룹 관계자는 관련한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실액만 1조원
금감원 징계 예고

수사결과에 따라 산업은행은 금융 신용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STX그룹에 대한 대출 여파로 1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업은행은 국세청의 세무조사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세무전문지 <조세일보>는 지난 7월 국세청이 산업은행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산업은행이 세무조사를 받는 건 4년 만의 일이다. 국세청은 오는 11월7일까지 조사관 5명을 파견해 산업은행을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동양시멘트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진 2010년부터 2012년까지의 회계 기록이 조사 대상으로 알려졌다.


홍 회장의 전임인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재임했던 2011년 산업은행은 1조4124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2012년에도 9469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취임한 2013년 산업은행은 적자로 돌아서 손실규모가 1조4474억원에 이르렀다.

통계만 놓고 보면 홍 회장이 방만 경영을 한 것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다. 홍 회장이 기록한 대부분의 적자는 전임인 '강만수호'의 유산이다. 금융권은 강 전 행장이 STX그룹에 대한 '묻지마' 대출로 적자폭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에 큰 손실을 끼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은 지난 정권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그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차례 수행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강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12년 산업은행으로부터 단기차입금 2300억원을 융통했다. 산업운용자금 1800억원도 확보했다. 다른 민간은행들은 앞다퉈 대출금을 줄이는 추세였는데 산업은행은 유독 '퍼주기'로 STX그룹을 도왔다. 지난 정권 비호설이 나온 배경이다. 실제로 MB의 '경제통'이자 측근으로 불렸던 강 전 행장은 "계열사들이 모두 나서서라도 (STX그룹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KDB대학 부실운영 지적
각종 구설 휘말려 곤욕
홍기택 회장 자질 시험대

결과적으로 STX그룹은 산업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너졌다. 지난 5월 강 전 회장은 2조3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러 9000억원의 사기성 대출을 일으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STX그룹 분식회계 후폭풍은 곧장 산업은행을 덮쳤다. 지난 21일 금감원은 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제재를 사전 통보했다. 징계 명단에는 현직 산업은행 부행장을 비롯해 전·현직 간부 18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STX그룹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지 않았지만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분식회계 우려가 있었음에도 STX조선해양에 대한 대출액을 3000억원으로 늘려줬다"며 "산업은행에게 부실대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징계 이유를 밝혔다.

또 선박건조 현황을 살피지 않고 거액의 선수금을 지급해 돈이 유용된 점도 문제 삼았다. 금감원은 당시 산업은행이 여신심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천문학적인 손실은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STX그룹 구조조정 가운데 생긴 불가피한 손실이란 것이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 자격으로 리스크를 감수했는데 이를 금융당국이 사후 징계하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징계대상자들의 해명자료를 종합해 제재심의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동부 매각 난항
'음모론' 창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건 징계대상에 강 전 행장이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다. 여신 총책임자이자 결정권자인 강 전 행장은 여신심사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현재 부침을 겪고 있는 건 궁극적으로 이명박정부 때 단초가 제공됐다.

세부적으로 산업은행은 2년 전과 비교해 고졸 채용인원이 10분의 1로 줄었다. MB는 임기 중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할 수 있다'는 정책을 들고 나와 금융권에 고졸을 채용하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MB의 아이디어는 없던 일이 됐다.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1년 전체 채용인원(188명)의 절반에 육박했던 고졸 사원(90명)은 2012년 120명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20명으로 급감했고, 올해 역시 15명에 그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 전 행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KDB금융대학교(이하 대학교)의 신입생 수도 감소했다. 사내 고졸사원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의 신입생은 2013년 68명이었다가 2014년 45명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자퇴생은 1명에서 14명으로 늘었다. 덧붙여 김 의원은 "대학교 학생 수가 교육부 설치인가 학생 수 기준(교원 1인당 25명)과 비교해 미달됐다"고 주장했다.

장애인 고용비율도 문제다. 산업은행의 장애인고용비율은 1%대로 국정감사를 받는 모든 금융기관을 통틀어 가장 낮았다. 2010년부터는 장애인 법정 의무고용 비율인 3%를 채우지 못해 관련 법규에 따라 매년 의무고용부담금을 내 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이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산업은행은 2010년 0.8%, 2011년 2.1%, 2012년 1.5%, 2013년 1.3%, 2014년 1.3%의 비율로 장애인을 채용했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고용의무 미이행으로 3억1000만원의 부담금을 납부했으며 4년간 모두 8억4000만원의 부담금을 사용했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 감소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2009년 산업은행의 대출 비중은 대기업 61.0%, 중소기업 39.0%로 나름 균형을 이뤘다. 하지만 5년 새 대출 비중은 대기업 76.2%, 중소기업 23.8%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산업은행은 그간 여러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에 채권단 자격으로 참여했다. 현대·한진그룹을 포함해 지난해엔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에 개입했다. 동부그룹의 금융권 여신은 지난달 기준 6조원 정도로 파악되는데 산업은행은 전체 여신 중 3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그룹의 경영난이 가속화될수록 산업은행 역시 출혈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을 대신해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건설 발전당진을 묶어 매각하려다 실패했다. 때문에 동부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었고, 비금융계열 지주회사격인 동부CNI의 법정관리 가능성이 타진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았다.

당초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의 희망과 달리 경쟁입찰 없는 패키지 인수를 포스코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포스코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구설에 올랐다. 시간만 허비한 채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든 까닭이다.

일각에선 "산업은행이 같은 금융권인 동부화재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방해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내놓고 있다. 산업은행은 강 전 행장 시절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찾다가 민영화를 추진한 전력이 있다.

당시 강 전 행장은 '메가뱅크론'을 주장했다. 우리금융지주와 산은금융지주(산업은행 포함), IBK기업은행을 합병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사실상 민영화로 가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 강했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암초에 부딪히며 실현되지 못했다.

인사 외압설
메가 뱅크론?

흥미로운 것은 박근혜정부 들어 산업은행 민영화가 전면 중단됐다는 점이다. 박근혜정부는 정책금융을 위한 금고로 산업은행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경영자 입장에서 권력에 끌려다니는 등 자율성을 보장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홍 회장은 전임에 비해 뚜렷한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강 전 행장이 풀지 못했던 수익구조 역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홍 회장은 지난주 IBK자산운용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내용을 요약하면 IBK자산운용 대표로 추천된 내부인사가 홍 회장이 추천한 외부인사에 밀려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산업은행이 타은행 경영에 관여했다는 주장이었지만 산업은행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했다.

이후에도 홍 회장과 관련한 소문은 잦아들지 않았다. 계열사인 대우증권 사장 교체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사장 공모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홍 회장이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는 의혹은 복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며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여러 정황상 홍 회장의 지위는 공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계속되는 건 각 사정기관의 과열된 실적경쟁으로 풀이된다. 바꿔 말하면 산업은행만큼 적폐가 많은 곳이 없다는 얘기다. 어느덧 '사면초가'에 몰린 산업은행. 이제 홍 회장은 권력의 눈치를 살펴야 살아남는 처지가 됐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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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