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 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국내 라면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롯데라면’의 돌풍이 거세다. 출시하자마자 단숨에 선두인 ‘신라면’이어 2위 자리를 꿰찬 롯데라면은 내친 김에 ‘제2의 신라면 신화’까지 노리고 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라면시장은 약 1조7000억원 규모다. 이중 농심이 1조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사실상 라면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나머지 5000억원 시장을 두고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라면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다. 브랜드별로 보면 1986년 처음 나온 ‘신라면’(농심)이 시장점유율 25%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어 ‘안성탕면’(농심), ‘삼양라면’(삼양식품), ‘짜파게티’(농심), ‘너구리’(농심), ‘진라면’(오뚜기) 등의 순이다.
1조7000억 시장에 도전
20년 신라면 아성 깰까
롯데가 20년 넘게 독주하고 있는 신라면의 아성을 깨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이 롯데라면이다. 롯데마트의 집계 결과 롯데라면은 지난달 30일 첫 시판된 이후 지난 15일까지 롯데마트에서 판매량이 8만7500여개를 기록해 삼양라면(7만6500여개)을 제치고 매출 순위 2위에 올랐다. 출시 보름 만에 국내 라면의 원조인 삼양라면을 앞선 것이다. 같은 기간 신라면은 18만9200여개가 팔려 1위를 지켰다.
롯데마트의 올해 롯데라면 판매 목표는 롯데마트 판매량 기준으로 전체 봉지라면 매출의 15%인 월 13만개(5개 묶음)다. 봉지라면 판매 1위인 신라면의 판매량은 월 27만개(33%), 삼양라면은 월 11만4000여개(14%) 가량이다. 롯데마트 측은 “비록 롯데마트에 한정된 수치지만 짧은 기간 라면업계 2위인 삼양라면을 제친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며 “연내에 롯데마트 뿐 아니라 전체 라면시장에서 신라면에 이어 2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라면이 이처럼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명에 들어간 ‘롯데’란 브랜드의 유명세 덕을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롯데라면은 롯데마트가 지난해 삼양식품과 손잡고 선보인 ‘이맛이라면’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자체브랜드(PB) 상품이다. 롯데가 직접 생산하지 않고 한국야쿠르트에 위탁 생산하고 있지만 제품엔 ‘롯데’상표를 부착해 판매하고 있다. 그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출시 보름 만에 롯데마트 판매량 삼양라면 제쳐
‘롯데’브랜드파워로 승부…전 유통 계열사 동원
롯데라면의 강점이 바로 브랜드 파워다. 8200가지에 달하는 롯데마트 PB 상품 중 ‘롯데’란 이름이 들어간 것은 롯데라면이 유일하다. 롯데는 제품명에 ‘롯데’를 내건 만큼 그룹 내 전 유통 계열사들을 동원해 판매에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69개 점포)는 물론 롯데백화점(26개 점포), 롯데슈퍼(170개 점포), 세븐일레븐(2200개 점포) 등 전국 2400여개 오프라인 매장과 롯데닷컴, 롯데홈쇼핑 등 온라인 판매망이 가동 중이다.
나아가 롯데는 이런 광범위한 유통망을 토대로 해외시장까지 공략할 계획이다. 롯데는 당초 롯데마트에서만 이 라면을 팔 계획이었으나 라면사업에 강한 애정을 드러낸 신격호 회장의 특명에 따라 모든 유통 계열사로 판매처를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롯데라면 보고서가 올라오자 “기왕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형제사’인 농심에 선전포고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신격호 회장과 신춘호 농심 회장은 친형제다. 이들 중 신춘호 회장이 1965년 롯데공업(농심의 전신)을 통해 먼저 라면사업을 시작했다. 롯데공업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원조 롯데라면을 생산했었다. 롯데는 농심이 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그동안 라면을 만들지 않다가 이번에 농심의 옛 제품과 이름이 같은 롯데라면을 들고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는 ‘형제간 라면 전쟁’으로 비춰진 이유다. 두 형제의 라면 대결은 롯데라면 출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롯데라면의 또 다른 경쟁력은 차별화된 맛이다. 가쓰오부시(0.95%), 표고버섯(3.07%), 무(0.12) 등이 첨가된 롯데라면은 쫄깃한 면발과 쇠고기맛에 해물맛을 가미해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맛이 특징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와 다시마, 소고기를 우려낸 진한 국물맛을 그대로 살렸다”며 “임직원 40여명을 대상으로 4회에 걸쳐 다른 라면과 함께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결과 4회 모두 롯데라면이 최고 점수를 받아 가장 맛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형제사’롯데 vs 농심
가격·맛 승자 누구?
롯데라면은 타사 제품에 비해 값도 저렴하다. 롯데라면의 판매가격(개당 120g·5개 묶음)은 2850원으로, 신라면(3000원)보다 싸다. 낱개로 따져도 롯데라면(650원)이 신라면(750원)보다 낮게 책정했다. 하지만 롯데라면은 최근 MSG(L-글루탐산나트륨) 첨가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해 논란에 휩싸였다. 위기를 맞은 것이다. 롯데마트는 자칫 롯데라면 성장세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라면의 스프 성분은 정제염, 설탕, 덱스트린, 가쓰오조미과립, 멸치베이스분말, 다시마엑기스분말, 다시마엑기스분말, 무우즙분말, 표고버섯엑기스분말, 해산물분말, 쇠고기조미분말 등 30여가지에 이른다. 문제는 스프에 MSG도 첨가됐다는 점이다. MSG는 음식물의 감칠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인공화학조미료로,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청의 분류기준상 식품에 사용이 가능한 첨가물이다. 식약청은 별도로 MSG 일일 섭취허용량도 정해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MSG가 식품으로서 안전성이 완벽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다. MSG의 유해성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1908년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발견한 글루탐산나트륨(monosodium glutamate)의 약자인 MSG는 비타민 B6의 결핍을 초래해 무력감, 두통, 발열 등과 심하면 우울증이나 자폐증, 저혈당증 등을 일으킬 수 있다. MSG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메스꺼움과 무력감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학계 보고도 있다.
MSG 첨가 논란 불거져 ‘곤혹’
성장 발목 잡지 않을까 ‘촉각’
MSG가 많이 들어간 중국음식을 먹고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 ‘중국음식점증후군’으로도 불린다. 특히 유아의 신경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선 MSG를 신생아용 음식에 첨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천식, 고혈압, 울혈성 심부전 환자, 알레르기 환자에게도 섭취 제한을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식품업체들은 제품에 MSG를 아예 넣지 않거나 줄이는 추세다. 농심은 2007년 2월 이후 모든 제품에 MSG를 빼고 천연조미료를 사용하고 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도 수년전부터 ‘MSG 무첨가’라면을 내놓고 있다. 반면 롯데라면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야쿠르트의 경우 왕뚜껑, 팔도도시락과 홈플러스 PB 제품인 알뜰라면 등 분말 스프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MSG를 넣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MSG는 천연조미료와 비교해 원가가 저렴하고 입맛을 당기는 효과가 있다”며 “롯데와 한국야쿠르트가 단기간에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귀띔했다. 롯데 측은 정부에서 MSG를 허가한 만큼 큰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식양청이 MSG에 대해 무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식품 첨가를 허용하고 있다”며 “롯데라면에 MSG가 들어갔다해도 아주 극소량에 불과해 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인공 화학조미료 MSG…
무해할수도, 유해할수도”
한국야쿠르트 측은 “MSG 유해성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논란일뿐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며 “과학적·의학적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MSG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두 업체는 다른 식품업체들이 MSG 대신 사용하는 첨가물도 유해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라면업체 대부분 MSG만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 각종 향미증진제(화학첨가물)를 넣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A라면은 향미증진제로 이노신산이나트륨과 구아닐산이나트륨 등을 첨가하고 있다. B라면엔 호박산이나트륨 등의 합성첨가물이 성분에 들어있다.
이기우 전 의원은 2007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MSG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향미증진제엔 이노신산나트륨이나 구아닐산나트륨 등 다른 인공조미료가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다”며 “식품업체에서 가공식품에 사용하고 있는 ‘무MSG’등과 같은 표시는 화학조미료 중에서 L-글루타민산나트륨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인데도 소비자들은 마치 모든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