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중단 '수학여행 잔혹사'

추억 만들러 갔다가…돌아오지 못한 학생들 '왜?'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수학여행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교육부는 전국의 초·중·고교 1학기 수학여행을 전면 중지하는 방침을 내렸다. 이와 동시에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한창이다. 수학여행의 운명은 오리무중이다. 그간 단체 이동 중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수학여행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최근 3년간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가 576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실에 따르면 2011∼2013년 각급 학교가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로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보상받은 건수가 576건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학교가 접수하지 않은 사고까지 고려하면 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수학여행 중 일어난 대형 참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죽음 부른
비극적 결말
 
모산 수학여행 참사는 1970년 10월14일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모산역(현 배방역) 부근에서 건널목을 건너던 관광버스가 열차에 부딪혀 일어난 사고다. 당시의 사고 버스는 서울 경서중학교 3학년 학생 77여 명을 태우고 현충사에 소풍갔다 귀경하던 도중이었으며, 모산역 북쪽에 위치한 이내건널목을 지나던 중 서울발 장항행 열차에 버스 왼쪽을 들이받힌 채 약 80여 미터 가량 밀려가면서 연료통이 폭발, 불길에 휩싸였다.
 
사고 원인으로는 여행 분위기에 심취한 학생들이 심한 소란을 피움으로서 운전기사의 주위 집중력을 저하시킨 데에서 야기된 혼란으로 운전기사가 경보기 신호를 무시하고 건넜던 점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승차정원 초과, 안전 지도 책임교사가 단 한 명도 승차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이었다.
 

당시 사고 장소의 건널목은 경보기만 설치되어 있을 뿐 차단기도 없고 안전 책임관도 없는 3등급 철도 건널목이었다. 자동차 운전자가 주의하기에 부족한 문제점이 있었다. 사고 버스 운전기사도 사망 당시 57세의 고혈압 환자로 장거리 운행에 부적합한 상태임이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 사고로 학생 45명과 운전기사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30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2명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사고 버스는 완파 및 전소되었고 기관차도 일부가 화재에 소실되었다. 장항선 열차 상하행선 모두 사고 순간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전면 불통됐다.
 
사고를 당한 경서중학교는 5일 동안 임시 휴학 조치가 내려졌으며, 사고 발생 수 일이 지나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서 전국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전면 금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이 사고로 경서중학교 교장 등 4명의 교직원이 파면되고 8명이 해직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사고를 낸 관광버스 회사에 대해 사업자 면허 취소 처분을 내렸고, 책임을 들어 당시의 서울 교육감의 사표를 수리한 데 이어 서울 철도국장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리하는 등 철도계 내부에서도 인사 조치가 이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부일외고·경남중 안전불감증 사고 터져 
최근 3년간 사건 576건 “남 일 아니다”
 
앞서 언급된 원주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는 1970년 10월17일 삼광터널 안에서 수학여행 학생단을 태운 열차가 맞은 편에서 오던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해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야기한 사고다.
 

당시 사고를 당한 열차는 인창고교 2학년 학생 430명과 보인상고 185명 및 보성여고 110명 등의 서울 시내 3개 고등학교 학생과 교사를 태우고 청량리역을 떠나 제천역으로 가던 6량 단위의 제77호 보통열차였다. 이 열차는 당일 청량리역을 출발해 울산 공업단지 및 경주 수학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인창고 학생들은 1호차에서 3호차를, 보인상고 학생들은 4호차에서 5호차를, 보성여고 학생들은 6호차에 승차하고 있었으며, 충돌을 한 화물열차는 제1508열차로 화차 28량 편성으로 석탄과 목재를 싣고 제천역을 떠나 청량리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원주역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사고 지점인 삼광터널을 지나가게 되었으며, 터널 끝단에서 화물열차와 충돌하면서 발생한 반동으로 기관차 위로 객차가 올라타면서 대파되어 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전면 폐지가 능사?
 
결정적인 사고 원인은 열차 집중 제어장치(CTC)의 조작 착오로 밝혀졌다. 사고를 낸 CTC는 1968년에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9억원의 비용을 들여 설치, 가동하기 시작한 설비이며, 열차를 집중 제어하는 임무를 가진 망우지휘탑 상황판에서 사고 직전 두 열차의 충돌 조짐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관사에게 제대로 통보하지 않아 사고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철도 당국과 원주경찰서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던 CTC 신호 사령장, 조정자 등 2명의 철도 직원을 직무 태만과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긴급 구속했다. 이 참사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수학여행 자체가 금지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한, 사고가 발생하였던 삼광터널은 현재 원주터널로 명칭이 변경되어 있다.
 
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는 2000년 7월14일 경부고속도로 부산방향 추풍령 고갯길에서 부산 부일외국어고등학교 수학여행단을 태운 버스 2대와 고속버스 1대, 5톤 트럭 1대, 승용차 3대 등 8대가 연쇄추돌한 사고다. 이 사고로 총 18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순식간에 8대의 차량이 추돌사고에 휘말리며 좁은 2차선 도로상에 뒤엉켰고, 승용차에서 치솟은 불길이 삽시간에 옮겨붙어 버스 2대와 승용차 3대, 트럭 1대가 전소되는 등의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가 커졌다.
 
당시 사고로 경부고속도로가 2시간 동안 전면 통제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양방향 20km 이상의 정체 행렬이 이어졌다. 이러한 정체 행렬은 경부고속도로 역사상 최초였다. 당초 285명의 학생과 인솔교사 9명 등으로 구성된 부일외고 1학년 수학여행단은 7월11일 7대의 전세버스를 이용해 3박4일 일정으로 설악산과 통일전망대 등 강원도 일대와 용인 에버랜드 등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가던 중 참사를 당했다. 사망자 18명 중 14명이 부일외고 학생들이었으니, 부일외고 참사 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사고 다음 날 부일외고는 임시 휴교령을 내렸고 교내에서 합동영결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침울한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조기 여름방학을 실시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세월호 침몰에 올스톱
 
사고 원인으로는 안전거리 미확보가 꼽혔다. 사고 당일 노면이 미끄러웠던 데다 S자 커브 내리막길 구간에서 차량들이 과속을 일삼았던 것이다. 사고 이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고갯길에서의 과속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또한 예산 확보 문제로 미루어졌던 추풍령 고갯길의 왕복 6차로 확장 및 선형개량 공사가 급속도로 추진됐다. 사고 현장이었던 기존 고갯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불어 전세버스 운행과 관련된 안전 규정도 대폭 강화되어 2대 이상 운행 시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하는 등 대열운행이 전면 금지되고 버스 5대 이상 또는 200명 이상의 단체 이동 시 주최 측에서 요청할 경우 경찰의 호위가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정은 오늘날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전세버스의 대열운행은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먼 곳으로 여행갈 기회가 흔치 않았던 시절, 수학여행은 특별한 의미였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지는 열차를 이용한 경주행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설악산, 제주도 등 여행지가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중국·일본 등 해외 수학여행도 늘었다. 본래 취지가 퇴색되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은 여전히 학생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수학여행 때만큼 진한 추억을 안겨주는 것도 찾기 힘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학여행 사고는 그동안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대부분 안전불감증이 낳은 사고였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는 ‘수학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동시에 수학여행 존폐 논란이 일고 있다. 첨예한 찬반 논쟁이 예상된다.

“가야”vs“말아야”
존폐 논란 한창
 
한편, 수학여행에 대한 정부의 지침을 두고 일각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수학여행 일정 취소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바로 학교와 여행사 간 커넥션 의혹이다. 수학여행 계획 전 학교 측이 여행업체로부터 뇌물을 받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 그래서 일부는 이번에 정부가 내린 수학여행 금지령이 달갑지 않다고 한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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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