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시철도공사(이하 공사)가 고민에 빠졌다. 승객들의 수요 증가를 목적으로 몇 해 전부터 추진 중인 테마역사 조성사업이 성과보다는 잡음이 더 크게 들려오는 탓이다. 기대와 달리 테마역의 수송 증대 효과는 미미한 수준인데다 일부 역사에서는 임대사업자와 공사 직원간의 사전 협의설이 나돌면서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공사가 지하철 6호선 전 역사를 테마역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만 해 공사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승객 수요 증강 위한 대안책…‘테마역’ 조성사업 성과 미미
‘녹사평 발명테마역’ 공사 직원-사업자 사전협약 구설수
서울 지하철 5~8호선을 운영 중인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 2008년부터 일부 역사를 중심으로 테마역 조성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테마역 조성사업은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 비해 이용객이 적은 공사가 각 역사별 승객유입 수요 증강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묘수다.
공사는 테마역 조성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용승객 증가 시 발생되는 운송 수익의 증대를 꾀했다. 이용승객 수에 비례해 가격이 올라가는 역사 내 상가의 임대비용 등 부대수익 창출도 공사가 바라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였다.
“의도는 좋았지만…”
이 같은 목적으로 공사는 지난해까지 스포츠를 테마로 한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과 5호선 오목교역, 곤충박람회를 테마로 한 6호선 신당역, 발명을 테마로 한 6호선 녹사평역 등을 테마역사로 지정, 사업을 확대 추진했다.
그러나 사업이 추진된 지 2년째인 현재 공사의 테마역 조성사업은 초기 대대적인 홍보와 달리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테마역사가 공사의 고객 수송 증가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실제 지난 2008년에 비해 2009년 5~8호선 지하철 전체 일평균 이용고객 수는 오히려 줄었다. 공사의 연별 수송수입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일평균 이용객수는 2008년 323만6489명인데 반해 2009년에는 322만8812명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공사 한 관계자는 “지난해 조성된 신당역 곤충박람회와 녹사평 발명테마역 등은 단체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 관심을 보였다”며 “해당 역사는 기존 고객 이용률이 높지 않은 곳으로 테마역 조성 이후 관람을 목적으로 일부러 고객들이 찾은 만큼 고객 수송에 기여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업계 한 관계자는 “테마역 조성 당시 언론 홍보와 프로모션을 통해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이뤄지긴 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고 귀띔했다.
공사의 이번 테마역 조성사업을 두고 공사가 고민에 빠진 또 다른 이유는 각 역사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는 데에 있다.
지난해 7월부터 8월까지 신당역에서 열린 곤충 파충류 체험 박람회는 고가의 입장료가 논란이 됐다. 1인당 1만원의 입장료는 지하철 이용고객을 위한 문화 공간 조성이라는 공사 본래의 취지와 달리 상업성이 짙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었다.
지난 2008년 6월 공사가 우리 히어로즈 야구단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조성한 오목교 스포츠 테마역은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초 공사는 우리 히어로즈와 스포츠 마케팅을 펼쳐 고객을 유치하자는 데 뜻을 합쳤지만 현재는 구단의 사정상 모든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녹사평 발명테마역을 둘러싼 잡음은 상황이 좀 더 심각했다. 지난해 9월 한 언론보도를 통해 공사 관계자와 발명테마역 임대 사업자간의 사전 협력설이 불거지면서 공사가 한바탕 난리를 치른 것.
당시 언론은 중국 청도이공대 교학처장으로 재직 중인 L교수가 지난해 7월25일 공사의 임대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H본부장에게 공짜로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도록 도왔다고 전했다. 언론은 공사가 이보다 앞선 2008년 12월 L 교수가 회장으로 이끌고 있는 한국대학발명협회와 녹사평역의 임대사업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이에 업계 일각에선 L교수가 발명테마역 임대사업 계약 체결 후 보은의 차원으로 H본부장에게 공짜 학위를 선물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테마역을 둘러싸고 공사 직원과 임대사업자간의 비리의혹으로 치닫게 된 이 사건으로 공사는 내부감사와 서울시 감사, 감사원 감사 등 수차례의 감사를 받으며 곤욕을 치러야 했다.
공사 한 관계자는 “세 차례의 감사 결과 H본부장은 L 교수를 통해 공짜로 학위 수여를 받은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또한 L교수와 H본부장이 2008년 임대사업 계약 체결 당시 서로 알던 사이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돼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두 사람간의 이해관계는 없었다는 것이 당시 감사기관의 조사결과였다”며 “이에 발명협회와의 테마역 사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공사 직원인 H본부장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공사 한 관계자는 “H본부장은 당시 감사 기간 중간 보직변경이 돼 고객센터장으로 전보발령을 받았다”며 “센터장도 기존 본부장과 같이 1급 직급으로 동일한 만큼 질책성 좌천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렇게 기존 테마역사를 중심으로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공사는 최근 6호선 전역에 테마역사를 설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 지난 2009년 12월4일 공사는 테마역사 조성사업 안내문을 공지하고 사업자 모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시행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업자들의 참여는 저조한 수준이다. 전체 32개 역사 중 실제 조성사업에 대한 조율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돌곶이역과 창신역 정도다.
이마저도 공사가 공공성이 인정되는 예술문화 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들에게 무상임대를 조건으로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것.
업계는 공사의 테마역 사업수주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투자 대비 수익 창출의 효과가 미미한 탓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녹사평역엔 ‘찬바람’만
실제 녹사평역의 경우 역사 내 3300㎡(약 1000평)를 보증금 1억원, 연임대료 1000만원에 5년 계약을 맺어 임대해 운영 중이지만 이동승객 저조와 구설수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반년 이상 적자만 기록하고 있다.
임대사업자 한 관계자는 “임대 당시 역사 내 리모델링 비용까지 전액 사업자가 지불한 상태에서 이동승객마저 많지 않아 수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사는 이번 사업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공사 한 관계자는 “테마역 조성사업은 공사의 수익성 강화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이보다는 역사를 찾는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기존 삭막한 역사만 경험했던 고객들이 테마 역사를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점차 재방문 고객들이 늘어난다면 차후 자연히 수익 증대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