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고, 깎고, 아끼고….’
추석의 걱정거리는 ‘돈’이다. 직접 가계부를 쓰는 김 과장은 이번 추석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목돈이 들어가는 이유에서다. 부인 대신 가정경제를 쥐고 있는 입장에선 당연한 고민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새어나가는 돈의 가치는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다.
“명절은 돈 쓰는 날이나 다름없죠. 어르신들 선물에 기름값까지, 억지로 지출을 막지도 못하고 한마디로 죽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요즘 같아선 부모님 용돈까지 부담될 지경입니다.”
김 과장은 알뜰한 명절나기를 위해 지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선물, 교통수단, 차례상 등 비용 지출을 추석 보너스에 맞추기 위해서다.
우선 김 과장은 회사에서 나온 ‘떡값’부터 가계부에 기재했다. 그가 받은 추석 보너스는 80만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올 추석 직장인들의 평균 상여금 88만원과 비슷하다. 이는 전년(94만9천원)에 비해 6만9천원이나 감소한 금액. 고유가·환율 불안 등으로 촉발된 경기침체 여파가 기업 추석 상여금에 영향을 미친 탓이다.
평균 보너스 88만원
전년보다 7만원 줄어
그러나 김 과장은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보너스가 평균보다 낮고 지난해에 비해 대폭 줄었지만, 이마저도 못 챙기는 직장인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실제 추석 상여금을 지급하는 기업은 65.9%로 전년(68.1%)에 비해 2.2% 감소했다. 중소기업은 무려 44.3%가 올 추석 상여금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추석 상여금 지급률도 감소세다. 지급률은 전년(80.2%)보다 7.8% 감소한 기본급 기준 72.4%로 나타났다. 지급률은 2004년 96.5%를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 4년간 24.1%나 줄었다.
경총 측은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성과주의형 인사임금체계의 개편이 가시화되면서 명절상여금 등 각종 특별상여금을 기본연봉에 포함시키거나 상여금 지급률 자체를 낮춘 기업이 많다”며 “경기회복이 지연됨에 따라 기업의 지불여력 역시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선물이다. 물론 그 대상은 지인들을 빼고 부모님으로만 한정했다. 김 과장은 잘나가면서도 싸고 알찬, 무엇보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선물을 골랐다. 바로 ‘상품권’이다. 추석선물 선호 설문조사를 보면 현금에 이어 건강식품, 생활용품, 전자·가전제품 등의 순으로 상품권 인기는 그리 높지 않지만, 매년 1위를 놓치지 않는 현금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진 점에서 매력적이다.
김 과장이 예상한 선물비용은 20만원 정도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각각 10만원권 상품권을 드릴 계획이다. 참고로 올 추석 예상되는 선물비용으론 ‘20만∼30만원’이란 응답이 절반이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상품권은 시기만 잘 맞추면 시중에서 액면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다. 재래시장 상품권은 각 시도별로 구입시 2∼5%의 할인 혜택을 받는다.
백화점 상품권의 경우 온라인 또는 상품권매장에서 구매하면 정가의 약 5∼1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현재 온·오프라인 통합 한 상품권 유통업체는 10만원 상품권을 9만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상품권매장에선 최대 1만원까지 싸게 팔기도 한다.
적은 비용으로 생색
‘상품권 어떠세요?’
업계 관계자는 “명절이 다가올수록 상품권 수요가 폭증하기 때문에 가격도 조금씩 더 오른다”며 “최소한 명절 한달 전에 미리 구매해야 제대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향을 방문할 때 들어가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4명의 가족을 둔 김 과장은 중형차(2천㏄급)를 소유하고 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난 7월 리터당 2천원에 육박했던 휘발유값이 1천7백원 안팎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부담이다.
부산이 고향인 김 과장 가족이 승용차를 타고 서울∼부산을 왕복하려면 기름값에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모두 40만원이 넘는다. 올해 추석연휴가 3일로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통 혼잡이 예상돼 길바닥에 버리는 기름값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루해도 싸다면…”
대중교통 이용 ‘정답’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추석 승용차 기준으로 귀성시 서울에서 대전까지 5시간40분, 부산까지 9시간50분, 광주까지는 9시간10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막혀 귀성 때보다 길게는 1시간쯤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김 과장은 항공과 기차, 고속버스 등 각종 대중교통을 놓고 저울질 끝에 결국 고속버스를 선택했다. 그는 4인 기준 고속버스로 서울∼부산 왕복시 일반고속 약 16만원, 우등고속 약 24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계산했다.
4인 가족이 서울∼부산 왕복시 KTX 일반석을 이용하면 운임이 40만원가량 든다. 서울∼부산 KTX 일반실 1인당 요금은 평일엔 4만7천9백원이고, 주말엔 5만1천2백원이다. KTX 4인용 동반석을 이용할 경우 최대 15만원까지 절약할 수 있다. 새마을 등 일반열차는 더 싸다.
항공도 비슷하다. 일반 항공은 4인 기준 서울∼부산 왕복시 60만원대가 예상되지만, 저가항공을 이용하면 40만원대에 편안하고 빠르게 고향을 다녀올 수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편하게 가면서도 비용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고유가 시대에 돌입한데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짧아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할 것으로 보이므로 대중교통 이용이 경제적이고 편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명절에 차례상은 피할 수 없는 필수다. 매번 재래시장에서 제수음식을 구입한 김 과장은 이번에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재래시장을 둘러볼 작정이다. 특히 시중가보다 10∼40% 저렴한 가격으로 성수품을 판매하고 있는 전국 2천여곳의 직거래장터도 김 과장의 타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래시장이 백화점보다 40% 싼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 따르면 서울 시내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 슈퍼마켓, 재래시장 등 1백곳에서 32개 추석 성수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 올해 추석 차례상(4인 가족 기준) 비용은 17만4천원으로 집계됐다.
유통업체별 차례상 비용은 ▲백화점 23만7천2백1원 ▲할인마트 16만7천1백63원 ▲슈퍼마켓 16만2천7백64원 ▲재래시장 14만3천70원 등이었다. 재래시장이 백화점에 비해 39.7%나 저렴한 셈이다.
다른 조사도 마찬가지. 최근 한국물가협회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봐 차례상을 준비하는 데는 13만1천2백원이 들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10∼20%, 많게는 50% 이상 비싼 것으로 확인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와 백화점보다 싼 것은 원가 차이가 아닌 관리비와 인건비 등 부대비용 차이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갈수록 재래시장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은 뜸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차례상
발품 팔면 돈 보인다
김 과장은 싼 맛에 인터넷과 대행서비스 쪽으로 잠시 시선을 돌리기도 했지만, 상품의 원산지와 유통기한 표시 등과 관련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을 접었다. 제사음식 인터넷 판매와 요리 대행서비스의 가격은 시중가보다 20∼30% 저렴하다.
연합회 측은 “제사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인터넷 업체의 원산지 표시와 유통기한 별도 표시 여부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유통기한 및 취급상 주의사항에 대해 전혀 표시를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