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기획> 망조 들린 '재벌가 집터'의 비밀

쫄딱 망한 회장님 “다 이유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때 재계를 주름잡던 회장님들의 초라한 말년이 눈길을 끈다. 자금난에 시달리다 자택까지 줄줄이 경매로 넘기는 처지가 된 것. 잘 나가던 집 주인들이 하루아침에 망하자 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터가 안좋다’는 집터 괴담까지 나돌았다. 과연 이들의 파란만장 인생사는 집터와 연관이 있을까. 경매 굴욕을 맛본 회장님들을 한 데 모아봤다.
 

재벌 일가가 소유한 부동산이 속속 경매 법정에 등장하고 있다. 최근 경매업계에 따르면 과거 잘 나가던 회장님들 자택이 경매에 부쳐지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한동안 잊혔던 이름까지 또 다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기구한 운명
‘아 옛날이여’

고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의 장남 양희원 아이씨씨코퍼레이션 대표가 소유한 성북동 단독주택은 오는 2일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고급주택이 밀집한 성북동 부촌 중에서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이 집은 1970년 지어졌다. 대지면적만 1921㎡에 달하고, 지하1층~지상 2층으로 구성된 건물은 777㎡ 규모다. 감정가는 73억 8000여만원. 지금까지 경매시장에 나온 성북동 고급주택 중 규모와 가격 면에서 단연 1위라는 평가다.

국제그룹은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1980년대에는 재계서열 7위까지 한 재벌기업이다. 고무신 생산 업체인 국제고무공장을 전신으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탄생시킨 곳이다. 국제그룹은 이후 중화학, 섬유, 건설 분야 등에 잇따라 진출하고 무려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85년 전두환 정권에 밉보이면서 회사가 1주일 만에 공중분해 당하는 불운을 겪은 바 있다.

국제그룹처럼 이 집 또한 곡절이 많았다. 양 회장이 거주하던 이 집은 1987년 국제상사 명의로 넘어갔고 이후 1998년 11월 양 대표가 다시 되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10년만에 어렵게 되찾은 집은 다시 15년만에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았다 갚지 못한 탓이다.
 


양 대표는 2006∼2011년 이 집을 담보로 푸른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27억여원을 빌렸다. 하지만 원금은커녕 이자까지 갚지 못해 결국 경매당하는 처지가 됐다. 전문가들은 등기부등본상 채무자가 아이씨씨코퍼레이션인 점을 감안해 봤을 때 양 대표가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자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주인 줄줄이 망해 ‘경매 단골’된 빌라도
집터와 오너 궁합 중요 ‘길흉화복 원천지’

경매법정에 이름을 올린 회장 일가는 국제그룹 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일가가 거주하던 고급빌라가 법원경매에 나왔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고급빌라 밀집 지역에 위치한 이 빌라는 3층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면적 185㎡, 건물면적 316㎡에 달한다. 감정가는 15억원이다.

백 회장은 1998년 문 연 서울 강변역 테크노마트 개발 성공을 발판으로 중견그룹을 일군 부동산 개발 사업자의 효시다. 이후 한글과 컴퓨터, 동아건설, 신안 프라임상호저축은행,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기세 좋게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잘 나가던 프라임 그룹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직격탄을 맞았다. 부동산 건설 침체와 유동성 위기로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신안이 2011년 8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고 말았다. 백 회장이 동아건설 등 계열사와 보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줄줄이 파산
나쁜 기운 탓?

백 회장이 내놓은 빌라 역시 기구한 운명은 타고났다. 빌라의 이전 주인은 1980년대 프로야구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을 운영하기도 했던 삼미그룹의 김현철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삼미그룹의 부도 후 이 빌라를 경매에 내놨고, 2003년 11월 백 회장이 11억3351만원에 낙찰받았다. 하지만 백 회장 역시 이 집을 담보로 빌린 대출금액을 갚지 못해 빌라는 또다시 새로운 주인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백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같은 빌라 1층도 빚을 갚지 못해 지난해 8월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채규철 도민저축은행 회장 소유의 주택도 경매에 부쳐져 지난 1월 낙찰됐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채 회장 소유의 빌라 두 채는 각각 12억원, 12억2000만원으로 3번 유찰 끝에 새 주인을 찾게 됐다. 채 회장은 600억원이 넘는 부실대출로 도민저축은행에 막대한 재산상 손실을 입혀 지난 1월 징역 4년을 확정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채 회장이 소유한 초고가 외제차 4대가 한꺼번에 경매에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유종환 성창F&D 대표 소유의 자택이 매물로 나왔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유 대표 소유 집은 감정가 60억6966만원으로 경매에 부쳐졌다. 유 대표는 국내 최초의 대형 패션전문 쇼핑몰인 ‘동대문 밀리오레’ 성공 신화로 한때 주가를 높이던 인물이다.

경매와는 사례가 조금 다르지만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자택도 지난 1월 급매물 시장에 나왔다. 서울 서초동 고급 빌라에 위치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 중 하나로, 시가만 약 100억원대에 달한다.

강 회장은 당시 STX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우리은행 대출금 89억원, 하나은행 30억원 주택담보대출 금액 등을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최후의 방편으로 자신이 거주하던 집을 매각키로 했다. 이 고급빌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나 최재원 SK그룹 부회장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오너들도 소유해 유명해진 곳이다.

부도에 자살
흉흉한 괴담

최근 사례 외에도 회장님 집이 경매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은 비일비재했다. 2012년에는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 자택이 경매 물건으로 나왔다. 박 전 회장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그룹 회장으로 두산그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서울 성북동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박 전 회장의 자택은 대지 310㎡, 건물 240㎡의 복층 주택으로 감정가는 15억원에 달했다.

한 때 대기업 총수를 지냈던 그의 자택이 경매에까지 부쳐지게 된 이유는 사업 실패에 따른 자금난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자택은 박 전 회장의 두 아들인 박경원·중원 형제가 공동소유하고 있었으나, 이미 2008년 12월 제일저축은행 등 11개 저축은행이 60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해놓은 상태였다.

수십억대 ‘회장님들 저택’ 경매 쏟아져
국제그룹 회장 일가·프라임그룹 회장 등

‘비운의 총수’라 불리는 박 전 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2남이다. 두산가(家) ‘형제의 난’을 계기로 그룹에서 밀려난 뒤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노렸지만 경영에 어려움을 겪어오다 2009년 11월 이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전 회장이 불운한 삶을 살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당시 재계 안팎에선 ‘집터 괴담’이 떠돌기도 했다. 터가 안 좋기 때문에 박 전 회장이 망했고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다. 이후 이 집은 장남이 2011년 상속받았으며 채무도 그대로 떠안았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성북동 자택 역시 같은 해 강제경매에 부쳐졌다. 청구액 1억원을 갚지 못해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돈으로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회장이 1억원의 빚 때문에 집을 날릴 위기에 처하자 업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법원이 책정했던 이 집의 감정평가액은 33억1199만이었지만 서울 성북동에서도 손꼽히는 저택에 속하는 거주 여건과 특화성 탓에 감정가격을 뛰어넘는 44억여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이후 신 전 회장 부인 송모씨가 1억1000만원을 법원에 공탁한 뒤 집행정지를 신청하면서 경매는 사실상 취소됐다.

2008년에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신문로 단독주택이, 2007년에는 김중원 전 한일그룹 회장 소유의 서울 역삼동 단독주택, 범양식품 박승주 전 회장 일가의 성북동 단독주택이 각각 경매됐다.
이에 앞서 2003년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살던 서울 방배동 자택이, 2002년에는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의 서울 장충동 자택이 각각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명당 집터가
기업 세운다

과거에는 몰락한 재벌의 집은 소위 ‘망조들린 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경매 시장에 회장 자택이 나와도 제 값에 팔리지 않거나 유찰되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집터의 기운이 기업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이 컸다. 풍수 전문가들 역시 기업 미래는 회장의 집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양만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 교수는 “그룹의 흥망운을 정단할 때 물론 사옥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집터”라며 “집터와 회장의 사주가 잘 맞아야 취와 복의 괘를 가지고 길한 영향을 받게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일종의 ‘경영 나침반’으로 활용되는 집터가 회사의 길흉화복 원천지”라고 거듭 설명하며 “경매에 부쳐진 집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집에서 살면 줄줄이 파산을 면치 못한다 해도 그 터의 사주와 잘 맞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오히려 파산한 재벌들이 살던 집이 경매에서 인기를 끄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정충진 법무법인 열린 변호사는 “그룹 회장이 소유한 주택은 내부 인테리어가 잘 돼 있어 실제 가치가 감정가 이상으로 높은 경우도 종종 있다”며 “최근엔 고급주택의 낙찰가도 낮게 형성돼 저렴하게 고급빌라를 마련하려는 실수요자와 투자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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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갑자기?’ 법률수석 부활 속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10 총선이 범야권의 승리로 끝났다. 집권여당은 참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정부는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게 생겼다.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이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의 다음 행보는 엇일까? 속사정이야 어떻든 숫자만 놓고 봤을 때 이견이 없는 결과가 나왔다. 범야권은 192석을 얻어 ‘반윤 거야’ 전선을 형성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161석,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 14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 등을 모두 합친 수치다.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의석(18석)을 포함해 10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완벽한 참패 식물 대통령 선거를 진두지휘한 각 당 대표의 희비도 엇갈렸다. 사법 리스크를 안고도 선거를 승리로 이끈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실제 선거를 뛴 선수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회 주도권을 야당에 내준 상태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여당의 이탈표를 걱정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면서 권력의 무게추가 당으로 기울어지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거부권을 9차례나 사용한 이력이 민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당은 이번 총선서 ‘정권 심판론’을 정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은 윤석열정부 심판, 국민의힘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 프레임으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국민은 범야권에 의석을 몰아주면서 정부 심판의 손을 들어줬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에 ‘낙제점’을 준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당장 밀어붙이고 있던 정책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메시지를 통해 의료개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지만 추진력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카르텔 타파’라는 국정기조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총선 결과와 관련해 첫 육성 메시지를 내놨다. 총선 참패 후 엿새 만이다. 민정수석실 폐지 대선공약 민심 청취 명분 부활 예고 윤 대통령은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우리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드는 데 모자랐다”며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도 세심한 영역서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윤석열정부서 추진하고 있던 개혁은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과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되, 합리적인 의견을 더 챙기고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국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말했지만 야당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개탄스럽다”며 “오만, 독선, 불통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번 총선서 확인한 민심은 국정기조 전면 전환과 민생경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 달라는 주문”이라며 “윤 대통령은 국정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생경제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질적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총선 패배에 대한 목소리를 내면서 이후 내놓을 쇄신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국무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한 하마평이 나오는 중이다. 지난 17일에는 대통령실서 국무총리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서실장에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단 대통령실에서는 “검토한 바 없다”고 대응한 상태다. 3대 개혁 밀어붙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 비서실장 아래에 있는 공직기강비서관실과 법률비서관실을 관장할 ‘법률수석비서관실(가칭)’이 신설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심 청취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민정수석이 존재할 당시 폐해로 여겨졌던 사정 기능은 제한하고 민심을 읽는 방향의 조직을 만들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도 나오고 있다. 이 과정서 사실상 민정수석실이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앞으로 대통령실 업무서 사정, 정보 조사 기능을 철저히 배제하고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과거 사정기관을 장악한 민정수석실은 합법을 가장해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 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는데 이런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윤석열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실은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5수석(경제·사회·정무·홍보·시민사회) 체제로 개편됐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대통령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윤석열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정책기획수석이 신설되면서 2실6수석 체제가 됐다. 민정수석실서 맡고 있던 공직기강 업무와 인사검증 업무는 법률비서관, 법무부 등으로 이관됐다. 특히 법무부에 공직자 검증 업무를 전담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이 신설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사정 기능 제한한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신설하는 등 대통령실 직제를 3실6수석 체제로 개편했다. 개편 과정서 기존 수석들을 물갈이하면서 대통령실 2기 체제의 출범을 알렸다. 이때도 민정수석실 관련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 대통령실 쇄신안에 법률수석이 거론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심 청취는 표면용일 뿐 결국 윤 대통령이 사정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공약을 파기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야당서 예고한 특검을 방어하려는 선제적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당초 민정수석실은 민심 청취 기능과 무관하게 운영됐다. 오히려 폐지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시민사회수석실이 민심을 듣는 역할을 해왔다. 민정수석은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국정 관련 여론 수렴, 고위공직자 복무 동향 점검, 대통령 친인척 관리, 사정기관과 소통 등의 업무를 주로 했다. 하지만 역대 정부서 가장 부각됐던 기능은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등 5대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 김대중정부서 폐지되기 전까지 이른바 ‘사직동팀’이 청와대 하명수사를 전담했다. 사직동팀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를 일컫는 말이다. 윤 대통령 역시 당선인 시절 대통령 인수위원회 첫 과제로 민정수석실 폐지를 밀어붙이며 “사직동팀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통령실은 법률수석을 신설하더라도 사정 기능은 제한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김건희·채 상병 특검법 대기 신임 수석 검찰 출신 될 듯 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법률수석 신설은 앞으로 들이닥칠 영부인에 대한 특검 등을 방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제 와서 법률수석비서관실을 신설한다는 것은 사법 리스크 방어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서도 여소야대 정국이 유지되면서 민주당 등 범야권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별검사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서도 채 상병 특검법 수용과 관련해 의견이 갈리는 만큼 국회 통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상태다. 192석을 확보한 범야권은 21대 국회서 채 상병 특검법이 좌절된다고 해도 22대 국회서 재추진한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고민정 최고위원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채 상병의 죽음 앞에 정치권이 더는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민주당서도 의지가 충분히 있고 국회서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도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다시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12석을 확보한 조국혁신당은 아예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공언했다. 민주당과 개혁신당 등이 조국혁신당에 동의한다는 뜻을 보인 만큼 추진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국민의힘 내부서도 수용 여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어 향후 상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정기관 잡고 흔드나 범야권이 다수 의석을 무기로 특검 정국을 예고하면서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법률수석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가 ‘방어’로 읽히는 분위기도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지어 총선이 마무리되면서 국민의힘에 대한 윤 대통령의 지배력 역시 작아진 상태라는 점도 법률수석 신설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라는 말도 나온다. 신임 법률수석을 누가 맡게 될지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하마평이 돌고 있다. 검찰 출신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