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제2의 전두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판검사도 굽실굽실…‘광주대통령’으로 불렸다

[일요시사=사회팀]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벌금형 노역이 중단됐다. 검찰은 허 회장의 재산을 찾아내 벌금을 거두기로 했다. 허 회장은 광주교도소 노역장을 나와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와중에 그는 ‘돈이 없다’며 시간을 끌고 있는 상태다. 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허 회장은 도대체 누구일까.

지난 26일 검찰이 일당 5억원 ‘황제 노역’ 논란을 일으킨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해 벌금형 노역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국민 법 감정에 맞는 조치라고 보고 있다. 노역 중단 결정이 내려진 뒤 허 회장은 검찰을 나와 광주교도소 노역장에서 짐을 챙기고 가족이 몰고 온 차로 귀가했다. 노역장에서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 허 회장은 검찰에게 “지금은 돈이 없다”며 미납 벌금 224억원은 지인에게 빌려 1∼2년 내에 갚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역 중단
“돈 없다”

허 회장은 조세포탈과 횡령 혐의로 기소돼 2010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판결은 2011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나 허 회장은 벌금을 내지 않고 뉴질랜드로 도피했다가 지난달 22일 귀국했다. 귀국 뒤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벌금을 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당 5억원’ 노역 중이었지만 검찰의 이번 결정으로 노역장에 들어간 지 닷새 만에 형집행정지로 노역을 중단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노동을 한 시간은 기껏해야 10시간 안팎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제대로 된 노동을 했을 리 만무하다. 수사 과정에서 체포됐던 1일도 노역장 유치 기간에 포함돼 254억원의 벌금 가운데 지금까지 모두 30억원이 탕감돼 이제 224억원이 남았다.

검찰은 허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요청을 하는 한편, 국내외 은닉 재산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은 허 회장의 딸 집에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미술품 115점, 골동품 26점에 대한 감정을 의뢰했다.


지난해 아내가 사망하면서 수십억원대 부동산을 상속받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또한 허 회장이 수년동안 매월 1000만원의 건물임대료를 차명 계좌를 통해 받아 관리해왔던 것도 드러났다. 허 회장이 소유 재산으로 밀린 국세와 지방세를 모두 납부한 뒤에야 벌금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재산을 파악해야만 벌금 완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그동안 국세청이 파악한 허 회장의 해외재산에 대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체납 세금 징수를 위해 허 회장이 도피했던 뉴질랜드 현지 조사를 벌여 은닉 재산 일부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자료를 토대로 본격적인 재산 추적에 나설 방침이다.

현재 국세청은 충분한 조사를 통해 숨긴 재산을 모두 확보해 놓은 상태다. 지방세 중 14억원은 허 회장이 소유했던 대주건설 부동산을 압류해 확보했다. 또한 허 회장이 황제노역과 함께, 출소까지 황제대접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반 교도소 수감자의 경우 약 200여m에 달하는 교도소 안쪽 길을 걸어 나와 정문경비초소를 통과해 출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허 회장은 개인차량을 안으로까지 들여 자연스럽게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교도소 측은 허 전 회장이 사라진 지 10분여가 지난 뒤 뒤늦게 “허재호 수감자가 출소했다”고 밝혔다.

잘나가던 건설재벌이 돈 없어 노역
5일 25억 탕감…비난 빗발치자 중단

출소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27일 오전 광주 남구 월산동 허 전 회장 부인 소유인 것으로 알려진 주택 주변에는 이른 아침부터 허 회장의 행방을 찾는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허 회장이 머무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당 주택은 약 3000여평의 고급주택으로 알려졌다. 문이 굳게 닫힌 채 주택 내부에 설치된 CCTV만이 오가는 사람을 관찰하고 있다. 허 회장은 전 대주그룹 측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에 대한 특혜 이면에는 그를 둘러싼 화려한 인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검찰, 법원, 언론 등을 꽉 잡고 있었던 것이다. 허 회장의 아버지 허진명씨는 광주·전남 지역에서 37년간 판사로 일했던 향판이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장과 목포지원장을 지냈다. 허 회장의 매제는 광주지검의 ‘넘버2’ 자리인 차장검사를 지냈다.


사위는 현재 광주지법 형사단독 판사로 재직 중이다. 남동생은 2000년대 법조비리의 상징으로 지목된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 ‘법구회’의 스폰서로 알려졌다. 여동생은 지난해 법무부 산하 교정중앙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첫 여성회장이었다.

재소자들을 위해 일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에는 법무부장관상을, 2010년에는 국민훈장을 받기도 했다. 허 회장이 광주지역 유력 일간지를 거느린 점도 주목된다. 해당 일간지는 2003년 11월 대주그룹의 ‘가족’이 됐다.

허 회장 재산
전방위 파악

‘일당 5억원의 사나이’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허 회장은 1942년 전남 광양에서 현직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공업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20대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전남 광주 지역 경제 ‘호남 맹주’ 대주그룹의 수장이 됐다.

대주그룹은 7개 사업분야와 함께 15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재계순위 50위권까지 올랐었다. 대주그룹의 모태는 1981년 설립한 대주종합건설이다. 1988년 주택사업에 뛰어들면서 본격적인 외형 확장에 나섰다. 대주콘도, 동양상호신용금고, 두림제철산업 등도 이 당시 설립했거나 인수했다.

미디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4년에는 광주방송을 설립했고 2003년에는 <광주일보>와 케이블 채널 <리빙TV>를 인수하기도 했다. 다이너스티 골프장 등 레저분야에도 진출했다. 2000년대 들어 대주건설은 브랜드 ‘피오레’를 앞세워 전국으로 진출하면서 성장가도를 달렸다.

대주그룹 매출은 2000년 3000억원에서 2002년 1조3000억원, 2006년 2조원으로 늘었다. 특히 2007년 분양한 용인 공세지구 사업이 성공을 거두는 등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내 건설업계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2004년 98위에서 2007년 52위까지 뛰어올랐다. 메이저기업인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잘나가던 대주그룹에 무너지기 시작한 시점은 2007년 국세청과 검찰이 작정하면서부터다. 국세청은 2007년 6월부터 3개월간 대주그룹 2개 계열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했다. 2005~2006년 대주그룹이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520억원을 탈세한 사실을 밝혀내고 검찰에 고발했다.

당시 재계는 대주그룹의 조세포탈사건을 두고 배임 또는 횡령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중처벌 소지를 줄이겠다’는 국세청의 당시 방침에 따라 국세청은 단순 조세포탈사건의 경우 검찰 고발을 자제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대주주 또는 대표 등 회사 고위관계자들의 횡령·배임·비자금 조성의혹이 짙을 땐 제한적으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조세포탈사건을 수사하던 광주지검은 2007년 11월11일 허 회장에게 소환장을 발송했고 같은 달 14일 허 회장은 검찰에 자진 출두해 집중 조사를 받았다. 이틀 뒤 검찰은 허 회장에 대해 500억원대 탈세에 개입한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당시 허 회장은 대주건설과 대주주택 탈세에 개입한 혐의와 함께 부산 남구 용호동의 한 아파트 공사 시행과정에서 거액의 회사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화려한 법조계 인맥
사업마다 특혜 시비


그러나 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기각 이유였다. 이에 광주지검은 허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허 회장 지시에 따라 탈세를 실행한 대주건설 전 사장 이모씨와 이 회사 전무 정모씨도 불구속 기소하고 국세청으로부터 고발된 대주건설과 대주주택 등 2개 법인에 대해서도 함께 기소했다.

허 회장은 2008년 12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 받았다. 광주지법은 판결문에서 “조세정의나 조세형평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데다 포탈과 횡령 금액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등 죄질이 좋지 않지만 조세포탈을 통해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득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점, 법인세 탈루부분에 대해 추징금으로 납부한 점 등을 참작해 형의 집행은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어 2010년 1월 진행된 항소심에서 허 회장은 벌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관용성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법은 허 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다.

광주고법의 이 같은 결정은 2011년 12월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됐다. 검찰은 대법원 확정 판결 후인 2012년 3월 벌금수배를 내리고 그해 6월 토지 등 13건의 재산 압류·인터폴 청색수배 등의 조치를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법조계·언론계
거느리고 특혜

허 회장이 뉴질랜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는 2002년이다. 호주 오클랜드에 대주하우징이란 법인을 설립하며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65층 규모의 엘리어트 타워 개발사업을 진행하며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조선을 비롯해 해운, 금융 등 15개 계열사로 영역을 확대하던 대주그룹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이 크게 떨어졌다. 대한조선의 조선소 건립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고 부산 정관지구, 광주 수완지구 등 미분양 사업장이 늘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알짜 회사인 대한화재를 3500억원에 롯데그룹에 넘기고 청라지구 등 13개 주택사업장을 매각하는 강수를 뒀지만 그룹을 다시 세우기에는 이미 늦었다.

게다가 허 회장이 500억원대 세금을 포탈하고 회사돈 10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룹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허 회장은 현재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검찰에 납부 연기를 요청했지만, 뉴질랜드에만 14개에 달하는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회사로는 아들이 지분 100%를 가진 KNC 건설을 비롯해 허 회장과 부인이 지분을 각각 46%와 30%를 가진 KNC 건설엔지니어링, 아들이 85% 지분을 가진 KNC 글로벌 매니지먼트 CO. 등이 있다. 이외 허 회장이 지분을 100% 가진 가나다 개발 오클랜드, 투자 코리아 CO.와 부인이 100% 지분을 가진 HH 개발 CO.와 크리스티 부동산 홀딩스가 있다.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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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