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전과가 있는 염모(42)씨는 보험사기로 돈을 벌었던 달콤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보험사기로 큰돈을 벌어볼 계획을 짰다. 전직 병원 원무과장이었던 그는 보험금 지급과정에 빠삭했고 사기극을 계획하는 것이 수월했던 까닭이다.
염씨는 이에 따라 범행에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보다 철저하고 원만하게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범행 지시조, 환자역할조, 상해 작업조, 목격자조 등으로 역할을 나누기도 했다.
가짜공장 만들어 망치질
그 후 염씨 일당은 수도권지역에 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경기 안산 등에 만든 페이퍼컴퍼니는 20여 곳. 이곳은 가짜환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가짜공장이었다. 가짜일꾼으로 모집한 사람들은 노숙자, 신용불량자, 실직자 등이었다. 이들 일당은 이들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악용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유혹했다.
그것은 고의로 부상을 당한 뒤 보험금과 장애인 수당을 받아내자는 것. 특히 장애연금은 평생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이들을 설득했다. 일당의 말에 혹했던 27명의 신용불량자 등은 한탕을 위해 위험한 도박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부터 사기극은 시작됐다. 먼저 가짜 직원으로 모집한 사람들에게 산재보험 등 4대 보험과 민간 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으로 작전은 시작됐다.
이후 이들 일당 중 ‘상해 작업조’는 망치 등의 둔기로 ‘환자역할조’를 맡은 이들의 팔과 다리 등을 내리찍어 부러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엽기적인 행각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환자역할을 맡은 이의 입에 수건을 물린 뒤 냉장고를 다리 위에 떨어뜨려 상해를 입히기도 하고 탁자에 다리를 걸치게 한 뒤 발로 밟거나 야구방망이로 무릎을 치기도 한 것으로 밝혀진 것.
이 같은 무자비한 방법을 사용해 실제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8월 경기 안산에 만들어둔 가짜공장에서 환자역할을 맡은 이모(53)씨가 이 경우다. 당시 상해작업조였던 김모(33)씨는 이씨의 무릎을 발로 밟아 부러뜨렸고 이씨를 병원에 입원시켜 장애 8급을 진단받게 한 것.
또 이씨가 작업장에서 일을 하다 다친 것으로 꾸민 뒤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장애보험금과 치료비 1억여 원, 보험사로부터 2천4백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방식으로 일당이 지난 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받아낸 돈은 무려 45억원. 이들은 20차례에 걸쳐 엽기행각을 벌인 뒤 각종 보험금을 타 냈다.
1년여에 걸친 이들의 범행행각은 결국 경찰에 꼬리를 밟혔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2일 고의로 상해를 입히고 상해보험금과 장애수당 등을 타온 혐의(사기)로 총책 염씨 등 16명을 구속하고 환자역할을 한 이씨 등 1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염씨 일당은 의심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한번 보험금을 탄 환자는 두 번 다시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20여 곳의 사업장 모두 사업자의 명의를 다르게 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당의 사기극에 가담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할 ‘환자역할조’는 현재 장애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와 근로복지공단 등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강도가 높은 상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반면 염씨 등은 범행 후 얻은 돈으로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호화스러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비교적 쉽게 보험사기가 일어날 수 있는 배경에는 형식적이고 허술한 보험금지급 심사과정이 있다. 특히 산재보험의 경우 형식적인 심사만 거치면 보험금이 지급되고 재심 병원의 경우에도 치료를 한 사실이 없는 환자에게 외표 진단과 문진만을 한 뒤 소견서를 발급해주고 있어 이 같은 범죄가 손쉽게 일어나는 것.
급증하는 보험사기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한 보험사기는 해마다 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무려 2천억 원. 금융감독원이 지난 1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조사실적을 분석한 결과, 적발금액은 2천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9%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험사기 혐의자도 3만9백22명으로 15.6% 증가했다.
사기 적발금액 비율을 보면 자동차보험이 66.4%로 가장 많았고 생명보험의 보장성 보험이 15.2%, 손해보험의 장기보험이 11.4% 순이었다.
사기유형별로 보면 사고의 내용을 조작해 보험금을 타기 위한 허위사고가 24.7%로 가장 많았으며 보험가입 운전자 등을 바꿔 보험금을 타기 위한 바꿔치기가 18.4%를 나타냈다. 뒤를 이어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사고를 유발하는 고의사고가 17.6%, 사고 후 보험가입이 15.7%, 부당한 장기입원 등 피해과장 15.6% 등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기가 급증하고 수법도 점차 지능화되고 있다”며 “보험사기는 단순히 보험사의 손실을 넘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선량한 보험계약자가 부담을 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자해공갈단 보험사기사건을 수사 중인 양천경찰서는 신모(29·무직)씨 등 10명의 행방을 추적 중이고 병원 관계자 등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수현 기자 s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