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②> 2009 검찰 수사 총결산‘검풍’ 스친 기업&총수 현주소

변죽만 울린 기축년 스캔들 “구린내만 풍겼다”

검찰은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시작된 검찰발 기업 사정 작업은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올해 중반부터 속도를 냈다. 여기에 새로 부임한 김준규 검찰총장이 강한 기업비리 척결 의지를 보이면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검풍이 매섭게 몰아쳤다. 그 결과는 어떨까.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검찰의 기축년 성적표를 펼쳐봤다.

김준규 총장 취임 직후 전방위 기업비리 수사 속도   
전국서 동시다발 ‘사정폭풍’…윗선·정치권 겨냥


올해 들어 기업 비리에 날 선 칼날을 들이댄 검찰은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지난 상반기까지 ‘권력형 비리’란 꼬리표를 달고 수사선상에 오른 사건은 10여 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 구린내만 풍기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등 ‘소문난 잔치’ 또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로 흐지부지 끝났다.

상반기 깃털만 ‘만지작’
하반기 용두사미로 끝나

그나마 간신히 ‘은팔찌’를 채운 기업인들도 하나같이 무혐의나 집행유예, 보석, 불구속 등 개운치 않은 결과로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올해 처음 검찰에 꼬리가 잡힌 재계 인사는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이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이 회장 등이 2005년 이주성 전 국세청장과 관련 포스코 세무조사 무마 의혹에 연루된 정황을 파헤쳤지만 지난 1월 무슨 이유에선지 수사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 회장은 검찰의 수사 종결 발표 3일 전 돌연 사퇴해 또 다른 의혹을 낳기도 했다. 같은 시기 CJ의 탈세 의혹도 석연치 않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지난 1월 CJ CGV가 2005년 3월부터 2년여 동안 관람객 숫자를 조작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혐의를 포착, CJ CGV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지만 흐지부지됐다.

전 자금관리팀장의 살인청부 혐의 조사 과정에서 수십억원대의 차명계좌가 확인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묻혀진’ 형국이다. 검찰은 당초 이 회장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소환조사 뜻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은 회사 공금 20억원을 빼돌려 청탁 명목으로 설범 대한방직 회장에게 15억원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불과 한 달 만인 지난 1월 보석으로 풀려나 ‘재벌 봐주기’란 비난을 받았다.

채 부회장은 지난 4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도 조용히 일단락됐다. 검찰은 조 부사장이 기업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가 있다는 증권선물위원회의 수사 의뢰에 따라 9개월 동안 수사를 벌였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지만 검찰은 각각 지난 3월과 9월 “범죄가 될 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무혐의 종결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MB정부의 사정기관이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사건을 다룸에 있어 한없이 관대한 ‘봐주기’ ‘감싸기’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명박 정권 1년여 동안 깃털만 만지작거리다 전광석화처럼 덮었거나 굼벵이 수사로 지지부진한 대형 부정부패비리 사건들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했다. 수사 대상 기업들은 변죽만 울린 검찰의 헛발질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지난 5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와 이에 따른 총장 중도사퇴, 새로 지명된 총장 후보자의 낙마 등의 여파로 검찰은 사실상 ‘개점휴업’이었다. 이도 잠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은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 8월 지휘봉을 잡으면서 ‘재계 손보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기업을 향한 검찰의 칼끝이 더 예리해진 것.

인사청문회에서 “특별수사에 일선 지검의 특수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김 총장은 자신의 구상대로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각 지역 검사장들을 잇달아 불러 토착비리와 기업비리 척결을 적극 주문했고, 이후 검찰의 사정 폭풍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매섭게 몰아쳤다. 집권 2년차에 접어든 이 대통령의 강력한 부패 척결 의지도 힘을 보탰다.

그 첫 신호탄이 국내 굴지의 기업인 대한통운과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등이다. 검찰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강압 논란을 빚은 대검 중수부 대신 일선 지검 특수부를 각개전투식으로 선봉에 세워 이들 4개의 기업을 정조준했다. 대한통운, 두산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해양, 현대산업개발 수사를 각각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와 인천지검 특수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울산지검 특수부가 맡은 것.

세 갈래의 수사 방향은 횡령, 비자금 조성, 특혜, 로비 등 고질적인 기업 스캔들과 그룹의 ‘윗선’ 또는 정치권으로 향했다. 검찰은 지난 9월 대한통운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결국 곽영욱 전 사장을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했다. 곽 전 사장이 이 돈을 정·관계 인사에게 건넸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수사는 예상대로 정치권으로 불똥이 튀었다. 곽 전 사장이 2007년 초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한 것. 검찰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출석을 통보했지만 한 전 총리가 이를 거부하면서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검은돈’ 정황 캐내고
‘돈 흐름’ 단서 못잡아

검찰은 지난 7월 임원들의 개인 비리 정황을 포착, 대우조선해양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건설도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10월 계약상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대우조선해양건설 전 대표 김모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회사 측이 납품업체와 짜고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검은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현직 임원들이 정부지원금 79억원을 빼돌린 것. 검찰은 지난 11월 국책연구 과정에서 연구개발비용을 부풀려 정부지원금을 빼돌린 혐의로 두산인프라코어 계열사 사장 김모씨와 전직 임원 박모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임원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두산 측은 이들이 가로챈 79억원을 전액 반환하기로 했지만 그룹 전체로 수사가 확대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검찰은 최근 하청·협력업체들로부터 불법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혐의로 현대산업개발 공사현장 임원을 포함한 전·현직 간부들을 무더기 적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하던 전국 6곳의 공사현장에서 하청·협력업체 6곳으로부터 모두 30억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토착비리 수사는 대형 건설사들을 정조준한 형국이다.

“내사만 질질” 여전히 지지부진 사건도 수두룩
LG 곤지암, 효성 비자금, 태광 큐릭스 인수 등


재계에선 검찰의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조만간 대기업 비리에 대한 대대적 사정작업이 본격화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그 대상에 올라있는 기업은 한진, 두산, OCI(옛 동양제철화학), 신동아건설, 대림산업, SK건설, 금호건설, 롯데건설, 현대건설 등이다. 검찰 관계자는 “광범위한 사정작업은 특정 인물, 특정 기업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이 대통령과 김 총장이 토착비리 등에 대한 척결 의지를 밝힌 이후 기업 비리에 대해서도 축적됐던 첩보를 하나하나 확인해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속도가 여전히 지지부진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이 있든 없든 무수한 기업들이 도마에 오르내리는 실정이다. 의혹과 소문만 키운 채 뜸들이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1조원대의 부동산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진 LG그룹의 곤지암리조트 특혜 의혹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 밝혀진 사실이 전혀 없다.

지난해 12월 개장한 곤지암리조트는 LG그룹이 1995년 착수한 대형 리조트개발사업이다. 문제는 리조트가 들어선 곤지암 일대가 팔당상수원 보호구역인 탓에 그동안 개발이 제한됐는데 참여정부 때인 2004년 갑자기 사업이 재개됐다는 점이다. 검찰은 지난 3월부터 이 부분에 대해 내사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 대통령의 사돈기업인 효성그룹을 둘러싼 의혹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효성그룹 일본 현지법인 수입부품 거래과정에서 납품단가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200∼300억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자 제보에 따라 지난 2월 수사에 착수했지만 별 성과가 없는 상태다. 검찰은 지난 9월 효성그룹 비자금 중 일부가 조석래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의 개인용도로 사용된 단서를 포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 의혹도 답보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검찰은 태광그룹의 티브로드가 올초 편법으로 업계 경쟁사인 큐릭스를 인수하면서 정치권 인사 등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부터 첩보를 수집해 지난 9월 본격 내사에 나섰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2006년 12월 큐릭스의 대주주인 큐릭스 홀딩스의 지분 30%를 군인공제회가 인수한 후 2년 내에 태광그룹 산하 태광관광개발에 옵션을 붙여 되팔 수 있도록 이면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티브로드는 방송통신위윈회가 큐릭스 인수 승인 결정 직전인 지난 3월 유흥업소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접대한 것으로 드러나 로비 의혹을 받았지만 이 역시 용두사미로 끝났다. 최근엔 검찰이 야심차게 덤볐던 SLS조선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이 싱겁게 마무리됐다. 검찰은 기업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허위로 공시한 혐의로 이국철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이 회장으로부터 공사 인·허가 등 행정편의를 봐준 대가로 미화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진의장 통영시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외주 가공업체를 설립해 공사금액을 부풀리는 등의 방법으로 45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로 이 회장의 형인 이여철 SLS조선 대표이사와 계열사 관계자 등 4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그 돈이 로비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미술품 강매 사건과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에 연루된 기업들에 대해서도 검찰이 수사 중이지만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하는 형편이다.

검찰은 지난 8일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을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국장은 C사, L사, S사 등 기업 5곳에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 미술품과 조형물 등 36억원어치를 팔았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 기업 외 굵직한 다른 대기업에 대해선 혐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 넘긴 미스터리들
“뾰족한 수 있을까”

해외부동산 불법 취득 건도 사정은 비슷하다. 검찰은 지난 10월 재벌그룹 오너일가의 해외부동산 불법 조성 매매에 대해 수사에 착수, 부동산 자금 출처와 이동 경로 등을 추적하고 있으나 3개월째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재미교포 안치용씨는 지난 9월 자신의 블로그에 효성그룹, 두산그룹, 애경그룹 등 재벌그룹 일가의 초호화 미국 부동산 거래를 공개해 재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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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채 상병 특검’ 공수처 불편한 속내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채 상병 특검’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야권의 4·10 총선 압승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난감하기만 하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수사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발 빠른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정치권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직이 와해되기 직전인데 수사에 속도가 어떻게 나겠느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이다. 요즘 공수처의 분위기는 참혹하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특별검사(이하 특검)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비교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실 압수수색? 채 상병 사건 특검법 추진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공수처의 분위기는 암흑 상태다. 검찰 제도를 보완해 ‘상설특검’ 명목으로 출범했음에도 ‘늑장·부실’ 수사 논란 속에 결국 사건 기록을 특검에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오는 5월2일,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표결하자는 분위기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총선 이후 여당 일각서도 채 상병 특검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표출되고 있다. 채 상병 특검 법안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뒤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본회의 표결만 하면 언제든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갈래는 크게 두 가지다. 무리한 수색 지시 등 책임자를 가리는 본안 수사가 경북지방경찰청서 진행 중이고,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조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외압 의혹은 공수처가 맡고 있다. 외압 핵심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부임 후 사퇴하는 과정서 대통령과 법무·외교부 장관의 직권남용 의혹도 공수처에 추가로 고발됐다. 야권이 특검을 통해 밝히려는 사안의 실체는 수사 외압에 집중돼있다. 특검이 통과되면 공수처가 내려던 실적이 특검으로 넘어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당은 이 대사 임명 과정서의 추가 의혹도 특검법안을 수정 발의해 포함할 계획이다. 공수처는 수사의 무게를 일부 덜겠지만, 6개월 넘게 진행해온 사건 기록을 외부에 넘긴다는 건 또 다른 비판의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다. 특검 추진 본격화…수사팀 의욕 잃어 “이럴 거면 왜 강조하나” 불만 증폭 공수처 출신 한 변호사는 “인력난 때문에 고전하는 상황이다. 내부 얘기를 들어보면 ‘죽을 맛’이란다. 채 상병 사건 수사는 최선을 다하려 했는데 특검이 언급되면서 수사팀의 의욕이 상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법상 수사 범위와 인원 범위가 지나치게 제한돼있어 실질적인 수사 기능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의 수사 범위를 현직 공직자와 그 가족, 퇴임 3년 이내 전직 고위공직자로 한정하고 있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의 인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수처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와 수사관의 규모는 처·차장 포함 검사 25명, 수사관 40명이다. 공수처법을 추진할 당시 규모는 검사 30~50인, 수사관 50~70인이 제안됐지만 법무부와 국회의 논의를 거치면서 현재 정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총선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인원 확대와 관련해 국회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검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임기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공수처는 최소한의 행정인력이라도 확보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현행법상 행정인원 정원은 20명인데 지난 2022년 공수처는 행정직원 중 국·과장과 직제 파견자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가용인원이 13명에 불과해 수사관을 행정인력에 투입해야 할 상황에 놓인 바 있다. 공수처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특히 공수처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일치시켜 수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상 기소권 없는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수사 대상과 기소 대상의 불일치로 발생하는 구속영장 논란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인력난 가중화 지금까지 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상황을 보면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이 전 장관 등을 출국금지했고, 한 달 후인 지난 1월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이후 포렌식과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지휘부와 해병대 수뇌부 등에 대한 조사는 특검의 몫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등으로 특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수처와 경찰은 특검법 처리 여부를 주시하며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총선 국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공수처는 수사를 신속하게 진행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수처 지휘부 공백 상태가 영향을 줄 여지도 있다. 주요 피의자 소환 및 신병처리 등 주요 의사결정을 처장 대행인 부장검사가 결정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만약 국회서 여야가 특검법 처리에 합의하는 수순을 밟으면 공수처도 새로 출범할 특검에 기록을 인계하기 위한 작업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현재 본회의에 회부된 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지난 3월, 이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된 경위를 수사해야 한다는 별도의 특검안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이 두 법안이 병합되는 안도 거론된다. 본회의 회부 안건은 수사기간을 최장 100일로 정하고 있는데, 잔여 수사를 검찰에 이첩하도록 명시됐다. 경찰과 공수처가 시작한 수사가 특검을 거쳐 검찰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이 3월 발의한 안은 잔여수사 이첩 대상을 검찰과 공수처로 정했다. 단추도 못 끼워 민주당이 특검법 조항 일부를 양보하고 국민의힘이 수사 대상 확대에 동의하는 시나리오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서 본회의 회부 안이 조정될 수도 있다. 이 가운데 이 전 장관은 최근 변호인을 통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장관 측이 공수처에 소환조사를 요청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이 전 장관 측 김재훈 변호사는 최근 공수처에 소환 촉구 의견서를 내고 “이 전 장관은 호주 대사직서도 물러났으나 공수처는 지금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공수처의 이런 수사 방기 탓인지 정치권에서는 특검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에 보낸 의견서에서 “이첩 보류 지시는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국방부 장관은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사건 이첩에 대한 최종 승인권자이므로 인사권자가 인사안 결재 후 이를 취소·변경할 수 있듯이 그 승인을 변경할 수 있다”며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수사 권한이 있다느니, 수사단장에게 민간 수사기관으로의 이첩 권한이 있다느니 하는 것은 법 규정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장관이 보고서를 회수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전화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장관 측은 “이 전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사단장을 빼라는)지시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당시 장관이 군사보좌관과 논의하는 과정서 ‘(초급 간부들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한다면)초급 간부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나눴고 법무관리관실의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해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수사 인원 범위 제한적 법 개정 안되면 도루묵 이어 “재검토한 결과 8월24일 직접적인 혐의가 있는 2명을 경찰에 이첩했고, 해병대수사단 조사기록 원안도 그대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채 상병 특검’도 비판했다. 이 전 장관 측은 “공수처의 1차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무엇이 미흡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아 해소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며 “특검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와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 수장이 석 달째 공석인 점은 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종 후보자 지명을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앞서 국회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2월29일 판사 출신 오동운(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와 검사 출신 이명순(연수원 22기) 변호사를 후보로 추천했다. 김진욱 전 처장과 여운국 전 차장이 임기 만료로 퇴임해 공수처가 ‘대행 체제’에 들어간 건 지난 1월 말부터다. 김선규 수사1부장이 처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지난달 제출한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임시로 대행직을 수행 중이다. 최근 인사위원회서 연임이 불발된 수사1부 소속 김송경 검사(사법연수원 40기) 임기도 만료됐다. 김 대행이 이끄는 수사1부는 공기광 검사만 남게 된다. 별도 조직개편 계획도 없어 수사 부서 1개가 사실상 사라질 위기다.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 후보자를 지명해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임명이 가능하다. 21대 국회 임기는 내달 29일까지다.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원구성에 시일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한 공수처장 공백 해소를 위해선 이달 안으로 후보 지명을 마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장 공백 장기화 우려 법조계에서는 특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는 이 전 장관에 대한 수사권은 있지만 기소 권한이 없다. 수사를 마친 뒤 검찰에 사건을 넘기고 검찰이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다. 공수처 출범 당시 수사·기소권을 모두 줄 경우 일각에선 ‘무소불위 공수처’가 될 거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공수처는 법관, 검사, 고위 경찰공무원에 대해서만 제한적 기소권을 갖게 됐다. 문제는 검찰이 채 상병 사건 기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검찰을 관할하는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공수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 사건 처리의 중립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을 통해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