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검찰 사정 칼날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의 심기는 불편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갖가지 악재가 연일 겹쳤던 것. 쇠고기 정국, 경제위기론에 이어 사정칼날, 이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까지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최근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이 검찰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게다가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나오고 흘러나오고 있다.
조 부사장은 코스닥 기업인 엔디코프의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이다. 이밖에 지난 2월 국가청렴위원회가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조현범 주가조작 의혹
“수사 진행 지지부진”
문제는 이들에 대한 수사가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 부사장은 차익을 챙기고 지분을 처분해버리는 ‘전문 투자꾼’과는 달리 일부 투자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법적 처벌이 애매하다. 게다가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주식 거래에 이용했더라도 증거를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
또한 조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도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검찰 관계자는 “철저하게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밝혀낼 것”이라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검찰 주변에서는 조 부사장과 조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검찰이 뚜렷한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검찰이 이 대통령의 친인척 수사의 결과에 시선이 쏠려 있다. 이 대통령의 친인척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난무한 가운데 아무런 이득을 챙기지 못한다면 검찰이 야당을 향한 ‘표적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가운데 최대 관심거리는 검찰의 전 정권 비리 의혹 24개 확보설. 그 동안 정치권에 나돌았던 ‘표적 수사’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한 언론사를 통해 “청와대 민정 쪽에서 과거 정권 인사들이 연루된 부정부패 사건 24건을 선정해놓고 수사를 진행 중이고 올해 안에 모두 공개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비리에 연루된 여권인사들도 사정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구 정권과 밀착된 기업·법인을 중심으로 고강도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강원랜드 비자금 의혹, 러시아 유전게이트의 주역인 전대월씨에 대한 재수사가 참여정부 핵심실세들을 겨냥하고 있다. 게다가 비자금 조성, 횡령 및 사업을 부풀리는 과정에서 정치권으로 자금이 유입됐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수사하고 있다.
이 뿐 아니다. 홍경태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이 건설공사 수주 외압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홍 전 행정관이 지난 2005년 군산~장항 호안공사, 2006년 영덕~오산 도로 공사를 SK건설과 대우건설이 각각 수주할 수 있도록 외압을 행사한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표적 수사’ 대상이 되고 있다. 프라임그룹이 검찰 수사의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DJ 정권 시절 대표적인 수혜그룹으로서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후원자로 알려진 상태다. 따라서 검찰은 프라임그룹의 급속한 성장 배경에 정치권의 로비가 개입되었는지 여부를 수사 중이다.
사실상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을 향한 ‘표적 수사’가 될밖에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호재를 만난 셈이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그리고 민주당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는 판단에서다.
先 이명박 친인척
後 야당 비리 수사
민주당 한 의원은 “검찰에서 전·현직 비리를 캐내고 있지만, 막상 실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항간에는 S·L 의원이 각종 비리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검찰은 찰떡궁합”이라며 “친인척 비리 수사를 감행하는 것은 야권에 대한 사정 칼날을 매섭게 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 공안조성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한 방책에 불과하다”며 “야당과의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선 이명박 친인척 비리, 후 야당 비리’ 수사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민주당이 아니다. 싸움을 걸어온다면 싸움닭으로 변모하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사정 칼날이 전·현직 정권으로 ‘정조준’된 만큼 민주당도 이명박 정부를 정조준할 것”이라고 밝혔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를 입증하듯 민주당은 “싸움을 걸어 온 이상 일단 싸워야 하며, 앞만 보고 달리겠다”며 이 대통령을 압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 의혹 목록 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민주당 일부 관계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 은밀히 나온다.
지난 대선 당시 BBK 사건으로 상암동 DMC 특혜 의혹이 묻히면서 이에 대한 의혹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상암동 DMC 특혜 의혹을 파헤칠 경우 이 대통령 측근 뿐아니라 이 대통령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또한 민주당 내에서 상암동 DMC 특혜 의혹과 관련된 자료와 녹취록 등 갖가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파일에 포함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 측근 A의원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또한 인천 공항 민영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친인척 인사들이 상당한 이득을 챙기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어, 상암동 DMC 특혜 의혹과 인천 공항 민영화 둘러싼 의혹들을 모조리 파헤칠 예정이라는 게 민주당 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결국 민주당에서는 국정감사 시점을 계기로 이 자료들을 종합해 이 대통령을 겨냥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야당 반격 시도
“자료 수집 중”
이에 대해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상암동 DMC 특혜 의혹에 이 대통령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자칫 섣불리 칼날을 세웠다가는 오히려 민주당이 ‘역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치권은 서로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검찰 사정을 빌미 삼아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을 압박해 올 경우 민주당은 ‘상암동 DMC 특혜 의혹’, ‘인천공항 민영화를 둘러싼 의혹’들을 파헤쳐 맞불을 놓을 태세다.
검찰이 쏘아올린 핵폭탄은 자칫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 민주당과 이 대통령과의 싸움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 사정을 계기로 정치권에는 극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