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본관 건물 보존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26일 오전 본관 3층 회의장인 ‘태평홀’을 허물기 시작하자,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결정에 따라 시청 본관을 사적으로 가(假)지정하며 공사를 강제 중단시켰다.
문화재위원회는 그동안 ‘원형 보존’을 주장한 반면, 서울시는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일부 공간은 철거하는 등 손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울시가 문화재위의 사적 가지정 결정에 법적 대응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혀 양자간의 갈등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지어졌다가 지난 6월 시민도서관 등으로의 리모델링을 위해 폐쇄된 서울시청 본관(서울시 등록문화재 52호)의 보존 방식을 놓고 대립해 오던 문화재위원회와 서울시가 지난달 26일 정면충돌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날 오후 사적 근대분과 긴급회의를 갖고 사적 가지정 방침을 확정한 뒤 “서울시의 철거 강행은 반문화적이고 야만적인 처사”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문화재 훼손 vs 건물 안전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7일 서울시에 본관 원형 보존을 권고했지만, 서울시는 이 권고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서울시는 또 지난달 24일에는 “권고를 최대한 받아들여 시장실과 돔 등은 원형 보존하겠지만, 태평홀 등 일부분은 헐고 다시 짓는 게 불가피하다”며 “문화재청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현재 서울시청 본관은 큰 훼손이 없는 범위에서 건물을 일정 부분 고쳐 쓸 수 있는 ‘서울시 등록문화재(52호)’다. 하지만 이날 사적으로 가지정되는 바람에 당분간 손을 댈 수 없게 됐다. 문화재위원회는 “권고를 일방적으로 무시한 서울시 행위를 계기로 등록문화재 제도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시청 본관이 안전진단에서 D, E등급 판정을 받아 전반적인 대규모 보강 혹은 철거가 시급하다”며 “이곳은 앞으로 도서관으로 바뀌어 서울시민들이 사용하게 될 공간이므로 안전 문제에 대해 어떤 양보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2002년 문화재위원회가 서울시청 본관의 보존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등록문화재 등재를 보류시켰고, 1년 뒤 재심사를 거쳐 등록문화재로 등재했다”며 “6년 전에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았던 문화재위가 이번에 사적으로 가지정한 기준을 수긍할 수 없고, 결정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2001년 한국시설안전공단과 1996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구조안전 진단에서 시청 본관은 전체적으로 양호한 수준인 C등급을 받았다”며 “몇 년 사이에 철거가 필요한 정도로 안전도가 나빠졌다는 서울시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 청장은 “2002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도입됐으므로 소유자에 대한 제한이 많은 사적 대신 등록문화재로 결정해 공공기관인 서울시가 잘 보존하고 사용하도록 한 것”이라며 “2002년 조사 때도 ‘역사적 건축물로서 가치가 있으나, 철거된 총독부 건물의 사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와 논의를 위해 등재가 늦어졌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여기에 이른 데에는 문화재위원회의 미지근한 태도도 한몫을 했다. 서울시는 2006년부터 새 시청을 짓기 위해 태평홀 등 시청 본관의 상당 부분을 헐겠다고 공언해왔고, 실제 설계에도 이를 반영해왔다. 그러나 문화재위는 시청 본관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적 지정을 검토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철거를 시작한 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충분히 사적이 될 만한 건물”이라고 말했으나, 그런 가치에 걸맞은 대접을 해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중요한 근대 건축 문화재의 관리를 소유자의 선의에 맡기는 등록문화재 제도의 전면 재검토도 필요하다. 황평우 문화재 전문위원은 “가치 있는 건축물들은 등록문화재가 아니라 반드시 지정문화재로 보호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시민들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진보단체인 문화연대는 서울시 발표에 대해 반박논평을 내고 “서울시 주장대로라면 근대건축인 덕수궁 석조전과 한국은행, 서울역,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도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보단체의 한 간사는 “오 시장이 들어서고 한강 르네상스와 뉴타운 사업, 동대문운동장 철거 등 무리한 건설 사업에 주력하는 것은 결국 시정의 역점을 자신의 재선을 중심으로 놓고 있기 때문 아니냐”며 “이명박 대통령의 그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건설 사업에서 찾은 것 같다. 이 정도면 오 시장은 재선은 커녕 당장 탄핵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경고했다.
반면 라이트코리아와 자유수호국민운동 등 보수단체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청의 조속한 철거를 주장했다.
문화재위의 방심
보수 단체의 한 간사는 “시청 본관 건물은 일제의 잔재다. 대한민국 서울시청 지붕에 일제식 장식을 그냥 방치하는 것이 옳으냐”면서 “또 건물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면 즉각 철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구명석 기자 gms75@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