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기상악화 이유로 사전동의 없이 ‘고객 따로 짐 따로’
빠진 수화물 이틀 뒤에 도착…여행 단꿈 망친 고객들 분통
아시아나항공이 고객들의 도마에 올랐다. 해외로 떠나는 신혼여행객들의 수화물을 항공사가 싣지 않아 짐을 받지 못한 고객들이 피해를 입은 탓이다. 더구나 항공사는 고객의 불편을 예상하고도 사전에 이 같은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전 동의도 없이 무작위로 행해진 행태에 뿔이 난 일부 고객들은 인천공항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기상상태 악화로 유류 확보를 해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평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망쳤다!”
지난달 20일,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2층 아시아나항공 피해구제접수처를 항의 방문한 고객 10여 명의 한결같은 목소리였다.
이들은 지난달 15일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팔라우로 여행을 간 하나투어 허니문 고객 160여 명 중 일부로 아시아나항공의 수화물 배송 지연을 문제 삼았다. 아시아나항공이 비행기 출발 전 고객의 동의도 없이 임의로 수화물을 남겨두고 떠나 짐을 받지 못한 고객들이 불편을 겪은 만큼 충분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같은 달 15일 밤 11시 출발 예정인 서울발 팔라우행 아시아나항공편이 출발 직전 팔라우 현지의 기상악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발생했다. 기상악화에 따른 경우의 수에 대비해 기내 유류를 보충해야 했던 아시아나항공은 결국 고객의 수화물을 줄인 뒤 유류를 보충했다.
‘뽑기’로 제외된 수화물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은 고객들에게 사전 통보하지도 않은 채 무작위로 60여 개의 짐을 골라냈다. 고객들은 7시간 뒤 팔라우 공항에 도착해서야 이 같은 사실을 통보 받았다. 문제의 수화물은 현지시각으로 17일 저녁에야 도착했고 피해를 입은 고객들은 아시아나항공의 무책임한 행동을 질타했다.
고객 정모씨는 “팔라우 공항에 도착해서야 짐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했다”며 “항의하는 우리들에게 당시 현장 담당자는 짐이 언제 도착할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애초 아시아나항공은 출발 3일 전에야 현지 급유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20kg까지 가능한 수화물 무게를 6kg로 줄이도록 통보했다”며 “결국 여행에 필요한 간단한 옷가지 등 정말 필요한 물품들만 챙겨 짐을 꾸렸는데 이마저 도착을 하지 않아 불편이 컸다”고 덧붙였다.
유모씨 역시 이번 여행을 “정말 끔찍한 신혼여행이었다”고 회상하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녀는 “제 짐과 신랑 짐 모두가 늦게 도착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며 “(짐이 도착하기 전까지) 사진 한 장도 못 찍었다”고 전했다.
여행사인 하나투어도 당시 현장에서 겪은 고객들의 불편이 상당했다고 전했다. 하나투어 한 관계자는 “팔라우에 도착해서야 사실을 파악한 고객들 중 상당수가 간단한 옷가지 등 생필품이 없어 난감해 했다”며 “이에 일부 가이드들이 티셔츠와 수건 등을 급히 제공했는데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고객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당시 현지 공항의 기상 악화로 항공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충분한 유류를 보충해 출발해야 했다”며 “이에 항공사는 먼저 고객들에게 싱가포르를 경유해 가는 경로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고객들이 이를 거부해 어쩔 수 없이 수화물을 줄였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고객들에게 사전공지 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혼란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일부 수화물을 빼놓은 것에 대해 공지하지 못한 것은 이로 인한 고객들 간의 혼란이 야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누구의 짐은 싣고 누구의 짐은 싣지 않는 등의 문제를 놓고 시간이 지체될 경우 비행기 출발 시간도 계속 지연될 수밖에 없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의 이 같은 해명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라며 입을 모은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기상 악화로 인한 유류 보충은 고객 안전 우선에 입각해 당연한 조치인 것은 맞다”며 “하지만 고객들의 짐이 이미 항공사측의 사정상 사전에 6kg으로 상당량 줄어든 상황에 추가로 짐을 뺀다는 것은 고객의 불편을 예상하고도 외면한 대처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항공사 관계자도 “본래 승객의 짐은 승객과 같이 움직인다는 게 원칙”이라며 “기상악화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사전에 고객에게 고지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선행되어져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현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는 아시아나항공은 보상 문제에 있어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규정상 피해 고객 1인당 100달러, 짐 하나당 100달러씩의 보상이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일부 고객들은 아시아나항공이 추가 보상을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씨는 “마지막 날 아시아나항공 관계자가 오더니 짐 하나당 100달러를 현지에서 보상해 주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고객만족팀이 더 보상해 줄 거라고 했다”며 “이후 담당자가 돈을 받았다는 사인을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인데 인천공항에선 그게 합의서라고 말하며 추가 보상은 없다고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일부 고객들은 사전공지가 없어 피해가 컸던 점을 강조하며 1인당 미화 300달러, 짐 하나당 200달러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안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추가 보상 약속 논란에 대해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팔라우 현지에서 추가 보상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고객들이 있는데 이는 말이 안 된다”며 “피해 고객 60여 분 대부분의 보상이 끝난 만큼 나머지 분들에 대한 보상도 규정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 미니인터뷰>
최근 고객의 수화물 배송 지연으로 구설수에 오른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 고객 수화물 왜 빠졌나?
▲ 당시 팔라우의 기상이 급격히 악화돼 안전상의 이유로 유류를 싣고 가는 양이 더 늘어나야 했다. 이에 수화물 무게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 다른 방법 없었나?
▲ 고객들에게 인천에서 싱가포르까지 가서 싱가포르에서 다시 팔라우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유 코스가 어떠냐고 제시했지만 반대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 고객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 짐을 임의로 빼낸 이유가 뭔가?
▲ 당시 상황에서 고객에게 모두 알리면 누구 짐은 싣고 누구는 안 싣고 등을 따지며 혼란이 야기될 것이 우려됐다. 비행기 출발 시간도 마냥 지연시킬 수가 없었다.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할 여유가 없었다.
- 수화물 도착이 늦은 이유는?
▲ 최대한 빨리 보내려 했으나 비행기 루트 탓에 늦어졌다. 현지 공항 급유 문제로 탑재량 제한도 많다보니 계속 지연된 점이 있다. 결국 당일에는 못가고 다음 날 간신히 보냈다.
- 수화물 배송 지연으로 인한 고객들의 불편이 사전에 충분히 예상됐을 텐데.
▲ 최대한 빨리 고객에게 전달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늦어져버렸다. 사전에 처리가 미숙했던 부분은 인정한다.
- 고객 피해 보상은?
▲ 현지에서 추가 보상을 해준다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말이 안 된다. 규정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아직 몇 분 정도 합의 안 된 분이 있다. 계속 연락해서 합의 중이다.